[심층기획-2024년 긴축 예산 후폭풍] 쪼그라든 청년 일자리·복지 예산… 고용 충격·취약층 부담 증폭 우려
청년 고용률 7개월 연속 감소
저소득층 살림 마이너스 상황
“사회 문제 더 심화” 지적 나와
2024년 청년 취업 지원·고용 1조1000억
2023년 대비 3분의 1가량 줄어드는 셈
전문가 “구직 경쟁 완화 효과 있는데
야금야금 줄여버리면 결국 문제 생겨”
사회서비스원 설립·운영도 대폭 감액
“사각지대 돌봄해소역할 축소 우려 커”
중증 장애인 수령 연금 예산 120억 ↓
“급여 수준 낮은데 삭감은 문제” 지적
“기업 서류 합격률이 15% 정도에 불과한데 인턴 자리도 찾기 어려워 정말 ‘금턴’(금과 인턴의 합성어)이란 말이 실감난다.”
지난해 졸업할 예정이었던 취업준비생 A(25)씨는 취업에 잇달아 실패하자 올해 무늬만이라도 학생으로 남기 위해 수료를 선택했다. A씨는 최근 1년간 취업에 도전했지만 인턴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 서울시 청년 취업 지원사업인 ‘서울형청년인턴직무캠프’를 통해 한 마케팅 기업에 인턴으로 일하며 취업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A씨는 “기업들이 인턴 경험을 필수로 요구하는데, 직무 경험 기회를 제공해 주는 정부 지원사업은 청년 입장에서 실낱 같은 희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실낱 같은’ 기회도 내년부터는 더욱 잡기 어렵게 됐다. 내년도 예산안에 청년 취업 지원·고용 관련 예산이 약 4000억원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청년 고용률이 7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청년 취업시장의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내년에 청년 일자리 관련 예산이 큰 폭으로 축소되면서 고용 충격이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뿐 아니라 노인·아동 돌봄 등 각종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운영되는 사회서비스원 관련 내년도 예산이 100억원 이상 줄고,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민간사회복지자원 육성지원 사업도 30억원 가까이 예산이 삭감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이 2.8%에 그치는 역대급 긴축의 부작용이 예산안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올해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가계살림(처분가능소득-소비지출)이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46만1000원, 21만8000원 적자를 기록하는 등 저소득층의 경제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청년 일자리·복지사업이 축소될 경우 취약계층의 부담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자리창출지원사업 25% 줄어
17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세입세출예산사업별 설명서’를 세계일보가 분석한 결과, 일반회계 기준 내년도 청년 취업 지원 및 고용 관련 예산은 올해 1조5000억원에서 내년 1조1000억원으로 축소됐다. 예산의 3분의 1가량이 줄어드는 셈이다.
이 중에서도 청년일자리창출지원사업(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의 경우 내년 예산안에 편성된 규모는 6490억3400만원으로 올해(8890억7800만원)보다 25% 이상 줄어들었다. 해당 사업은 채용일 기준 6개월 이상 실업 상태인 청년(만 15∼34세)을 정규직으로 채용 후 6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한 종업원 5인 이상 기업 및 미래유망기업 등에 정부가 월 40만∼60만원의 인건비를 2년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은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던 2017년 문재인정부 때 도입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이 2021년 일괄 종료되며 이에 대한 연장 차원에서 추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린 후 청년 고용이 더욱 악화하자 청년 구직 지원을 이어가기 위해 유사한 내용의 새로운 사업을 이어간 것이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은 2019년 8905억원 규모로 시작돼 2020년 1조4269억원, 2021년 1조5166억원으로 사업기간 내내 1조여원 규모를 유지했다. 이를 이어받은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 또한 사업이 시작된 2021년에는 이전 사업과 비슷한 규모인 1조1211억원의 예산이 할당됐으나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2022년 5428억원으로 반 토막 난 후 올해 8890억원으로 올랐다가 다시 649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업 첫해인 2022년에는 청년 14만명을 모집했고, 올해는 가입자 부족 문제로 모집인원을 9만명으로 줄였다가 다시 내년에는 규모를 12만명으로 늘린 것이라 실제로는 사업 확대”라며 “내년에 14만명의 인건비 지원이 없어져서 착시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경제학자는 “정부가 긴축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약한 청년 관련 예산을 건드린다”면서 “청년 관련 사업들이 눈에 확 들어오는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구직 경쟁률을 줄여주는 등 충격을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야금야금 줄여버리면 탈이 날 거고 특히 잠재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이 줄어든 항목은 더 있다. 청년내일채움공제의 내년도 예산은 1489억원으로 전년보다 2805억원, 청년직업정보제공의 경우 199억원으로 전년보다 14억원 줄어들었다. 반면 청년진로 및 취업 지원 예산은 3068억원으로 전년보다 1276억원 증액했다.
◆사회서비스원 125억원 삭감… 복지 예산↓
복지 예산도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정부는 내년에 생계급여를 역대 최대폭(13.2%) 인상하고, 최중증 발달장애인 돌봄체계를 구축하는 등 약자복지를 강화했다고 밝혔지만 올해보다 내년에 예산이 줄어든 복지사업도 상당했다.
대표적으로 내년도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관련 예산은 177억3100만원이 편성돼 올해 예산(302억1900만원)보다 124억8800만원 줄었다. 이 사업 예산은 2019년 59억6800만원, 2020년 120억5300만원, 2021년 147억2300만원, 2022년 246억1000만원으로 4년 연속 증가했지만 올해 처음으로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됐다.
사회서비스원은 영유아 돌봄, 노인요양 등 주요 사회서비스의 민간 의존을 극복하고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기관으로 전국 14개 시도에 설치돼 있다. 지역사회 내 요양, 보육 등을 담당하는 종합 재가센터 및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고, 돌봄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역할도 수행한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초기 대구 사회서비스원은 ‘긴급돌봄지원단’을 모집해 돌봄 공백을 해소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관할인 만큼 중앙정부가 보조할 이유가 없다면서 인건비·운영비 지원액을 전액 삭감하기로 했다. 각 사회서비스원이 맡았던 각종 공공 돌봄사업이 민간에 위탁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이를 두고 돌봄 수요자들은 공공 돌봄에서 국가의 역할이 축소돼 복지 사각지대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사회서비스원은 민간에서 할 수 없는 장애 아동 통합 어린이집 등을 운영하는 등 사각지대 돌봄을 해소해 왔다”면서 “사회서비스원이 공공 돌봄을 수행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장애 아동을 더 책임감 있게 돌봤던 건데 예산 삭감으로 양육자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그간 사립유치원 비리, 불법 리베이트 등 민간위탁의 각종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를 다시 민간 시장에 맡겼을 때 돌봄의 질이 보장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복지사업평가 예산도 올해 61억5000만원에서 내년 6억6300만원으로 약 55억원가량 삭감됐다. 이 중 지역복지사업 평가의 경우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있는 소규모 생활권(동네)이 지역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인데, 평가 인센티브 삭감 등에 따라 35억원가량 예산이 줄어들었다. 정부는 이 사업 역시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해야 될 일이라고 판단해 예산을 삭감했다.
이와 함께 민간사회복지자원 육성지원 사업 예산도 올해 97억2300만원에서 69억5200만원으로 줄었다. 2020년 95억3700만원, 2021년 99억9500만원, 2022년 96억9700만원으로 줄곧 90억원대를 유지하다 내년에 큰 폭으로 예산이 삭감된 것이다. 이 사업은 다양한 민간복지자원의 활성화를 통해 공공복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인데, ‘전주 40대 여성 사망 사건’, ‘수원 세모녀 사건’ 등 복지 사각지대 관련 비극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관련 예산이 줄었다. 정부 관계자는 “지출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됐다”고 말했다.
장애인 지원 부문 역시 예산이 줄거나 그대로인 경우도 많았다. 중증 장애인이 수령하는 장애인연금의 경우 올해 8786억6300만원에서 내년 8662억8700만원으로 120억원가량 예산이 줄었다. 정부는 수급자 수가 감소해 예산이 감소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는데, 대상자가 한정돼 있고 연금 급여 수준이 낮은 특성을 감안하면 예산 규모 자체가 줄어드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중증장애인자립생활 지원 예산도 올해 73억2500만원에서 내년 68억3600만원으로 줄었다. 정부는 올해 포함됐던 편의시설 실태 조사가 내년에 빠진 영향이 반영된 점을 감안하면 내년도 예산 규모가 올해와 같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업에 척수장애인·중도시각장애인 등 중증 장애인을 위한 각종 재활훈련 지원사업 등이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예산이 늘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세계일보 | 이희준 ․ 채명준 기자] 기사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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