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 그 아이는 살릴 수 있었다...천안 아동학대 사건의 재구성

프로젝트

 

그 아이는 살릴 수 있었다…천안 아동학대 사건의 재구성

 

 

 

[토요판] 커버스토리
아동학대, 현장을 고발한다

병원·경찰·아보전 학대 의심에도
고립된 아이 준호 구출에 소극적
경찰은 현장 출동 없이, 훈계·조사
그사이 상처 아물고 멍 지워져

아보전 “준호는 분리 의사 없었다”
전문가 “피해아동이 늘 구석에서
울고만 있는 것은 아냐” 지적
모호한 격리 척도표 산정으로
아이의 목숨을 구할 기회 잃어

지난 9일 ‘정치하는엄마들’이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 책임자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6월 충남 천안에서 부모의 학대로 숨진 준호(가명)의 비극을 취재하면서 5년 전 취재 자료를 다시 뒤적였다. 당시 한겨레 탐사보도팀은 ‘부끄러운 기록, 아동학대’ 시리즈 기사를 보도했다. 취재를 하면서 준호가 당시 사망 사례로 보도한 연수(가명)의 사례와 매우 닮았단 사실을 알았다. 5년 전 연수의 죽음은 의사, 어린이집 교사 등 어른들의 침묵이 원인이었다. 그때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은 연수가 죽은 뒤에야 학대를 확인했다. 당시 ‘병원이, 교사가 한발만 더 나서줬더라면…’ 하는 생각이 끓어올라 견디기 힘들었다. 이후 의료진, 교사 등 신고의무자 제도는 정비됐다. 아동보호 인력도, 예산도 충분치 않지만 보강됐다. 그런데 준호 사례는 ‘사람’이라는 또 다른 교훈을 남긴다. 연수와 달리 준호를 본 의사는 조금 에두른 방법이었지만 경찰에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움직였다. 준호는 아동보호의 시스템 안에 들어왔다. 원래대로라면 준호는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그 죽음을 막지 못했다.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 문제였다. 그 책임을 묻는다.

글 하어영 기자 [email protected], 최예린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6월 초 충남 천안에서 새엄마가 아홉살짜리 아이를 여행가방에 가둬 숨진 사건이 알려졌다. 여론은 들끓었다. 특히 아이가 다쳐 병원 응급실을 찾은 한달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니 아이를 학대로부터 구출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에도 국회 등에서 제도 보완을 위한 입법을 외쳤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보는 시선은 달랐다. 아동보호를 책임질 어른들이 제 몫을 다했다면 아이는 살 수 있었다. ‘그들’을 고발하기로 한 이유다.

보다 못한 엄마들이 나섰다. 지난 9일 대법원과 대검찰청 등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펼침막을 들었다. “그 아이는 살 수 있었다”는 외침이 담겨 있었다. 지난 6월3일 충남 천안에서 엄마의 학대로 9살 준호(가명)가 세상을 뜬 지 99일 만이었다. 엄마들은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제출할 ‘고발장’도 손에 들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박상돈 천안시장을 직무유기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주진관 충남아동보호전문기관장을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박종혁 충남천안서북경찰서장 및 성명불상인(담당 경찰)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니 이를 조사하여 엄벌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발장은 두달간 엄마들이 머리를 맞댄 고민의 결과였다. 엄마들은 괴로워도 두 눈 부릅뜨고 준호를 죽음으로 이끈 책임자를 찾아내는 것이 애도하는 길이며, 또 다른 준호의 죽음을 막는 길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학대 의혹으로 국가의 ‘보호 시스템’ 안에 들어왔음에도 한달 동안 준호를 방치해 숨지도록 내버려둔 게 누군지를 따지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그리고 그들을 고발해 심판대에 세우기로 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서면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아동인권위원회가 힘을 보탰다. 김영주 변호사는 “천안 사건을 보면서 법률가 단체가 입법에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는 한계를 느끼는 중이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서는 것을 보면서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EXIT)’의 이윤경 활동가도 결합했다. 이윤경 활동가가 전달한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스템을 움직이는 어른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국회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해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따졌다. 곳곳에서 준호를 구출할 수 있었던 순간을 발견했다.

 

고발 전 <한겨레>는 정치하는엄마들과 고발을 준비하는 이들을 미리 만났다. 지난 3일 서울 관악구의 엑시트 사무실에서 김정덕·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이윤경 엑시트 활동가와 민변 아동인권위의 김영주·소라미 변호사가 모였다. 기자를 포함한 여섯명의 어른들은 대전지검 천안지청의 공소장, 김상희 의원실에 제출된 아보전 및 경찰의 질의응답 자료 등을 토대로 준호의 학대가 외부에 드러난 5월5일부터 구조를 받지 못하고 숨져간 6월3일까지의 30일을 복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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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의 생사를 가른 응급성 판단

 

 

시작은 5월4일로 거슬러 간다. 그날 아빠와 엄마(새엄마), 누나, 형 등 식구 넷은 준호만 집에 두고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준호가 말을 듣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였다. 준호는 어린이날을 혼자 맞았다. 부모는 9살 소년에게 하룻밤을 홀로 견디도록 벌을 내렸다. 방임은 학대다. 지난해 벌어진 아동학대로 확인된 3만45건 중 방임은 2885건(9.6%)에 이른다.

 

이튿날 오후 가족여행에서 돌아온 엄마 성아무개씨는 몇시간 남지 않은 어린이날조차 준호를 그냥 두지 않았다. 이날도 준호가 돈을 훔쳤다고 의심해 한뼘이나 될까 한 크기의 쇠막대를 들었다. 도망치는 준호를 뒤쫓아 정수리를 때렸다. 찢어진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성씨가 준호를 데리고 천안 순천향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향한 건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엄마는 병원에서 “세수를 하다가 넘어져 생긴 상처”라고 거짓말했다. 아이가 세수하다가 넘어져 정수리를 다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게다가 준호의 손과 발, 엉덩이에 멍의 흔적과 부기가 진료기록에 남아 있어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상태로 판단해 경찰에 곧바로 신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학대 의심으로 병원 사회사업실에 신고를 맡겼다.

 

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만 머리의 상처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뼈아프다. 지난 3월 발표된 논문 ‘아동보호 공적책임 강화를 위한 아동학대 사망 사례연구’를 보면, 미국에서는 의학적으로 머리의 외상을 질식·중독·방치와 함께 재학대로 인한 결과일 확률이 가장 높은 사례로 꼽는다. 성씨는 나중에 검찰 조사에서 23㎝ 길이의 요가링과 옷걸이 등으로 구타했음을 자백했다. 그날 의사가 직접 신고했다면 아보전과 경찰이 곧바로 병원으로 출동했을 것이다. 준호를 구할 수 있었던 첫번째 기회는 이렇게 사라졌다. 순천향대병원이 경찰 112에 신고한 것은 이틀 뒤인 5월7일이었다.

 

“머리를 다쳐서 응급실에 왔는데 손과 엉덩이에 멍자국이 있어 아동학대가 의심되고, 피해아동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아이를 때려 멍이 들었다며 학대 사실을 인정했다. 관련자들은 귀가한 상태이고 상처는 심하지 않으며 학대 때문인지 훈육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112 신고 내용)

 

지각 신고 뒤 경찰은 확인에 들어갔다. 하지만 충남천안서북경찰서는 피해자나 가해자 대면조사가 아닌 신고자를 먼저 접촉했고, 증거를 문의했다. 아동을 사회가 적극 보호하고 (신고된 경우) 잠정적인 피해자로 보는 태도가 경찰 등에 부족했던 것이다. 아동에게 먼저 피해를 물어보는 일종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신고자의 태도는 담당 경찰과의 통화에서 112 신고 때보다 더 모호해졌다. “체벌로 인한 상흔으로 내원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사건 해결에 긴급함을 요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다. 준호가 몸으로 발신한 에스오에스(SOS)는 재차 무시됐다.

 

5월8일 경찰서 내 학대예방경찰관은 엄마인 성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관은 “더 이상의 학대는 없어야 하고, 훈육 목적 체벌 행위도 잘못된 행위임을 경고”했다. 이 “더 이상의 학대”라는 말만으로도 경찰이 이미 학대를 인지하고 상습성을 의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곧바로 수사를 진행하는 대신 성씨에게 “수사 담당자의 연락이 갈 것임을 안내”하는 데 그쳤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누가 경찰에게 학대가 있음을 알면서도 곧바로 조사에 나서지 않고 그저 수사 담당자가 연락을 할 것이라는 등 안이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줬느냐”고 반문했다. 엑시트의 이윤경 활동가는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뒤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되면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제도적으로 신고받은 경찰이 공식적인 수사 개시 없이 학대냐 아니냐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러한 조치를 한 경찰 관계자들을 고발하기로 했다. 대상은 사건을 맡고도 현장에 출동해 준호를 보호하거나 조사하지 않은 성명불상의 사법경찰관과 이를 방치한 박종혁 전 충남천안서북경찰서장이다.

 

9살 아이를 가방에 가둬 숨지게 만든 엄마 성아무개씨가 지난 6월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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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해자 조사도, 현장조사도 없었다

 

 

아보전 담당자가 준호의 집을 찾은 것은 경찰이 성씨에게 훈계를 늘어놓고 아보전에 전화와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을 통해 알린 지 5일 만(5월13일)이었다. 아보전은 경찰이 현장조사에 동행하지 않아 단독으로 현장에 나갔다.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112로 접수되면, 경찰은 ‘응급’의 경우 신고 접수와 동시에 아보전에 동행을 요청한 뒤 관내 학대예방경찰관과 여성청소년수사팀에 통보해 출동을 요청하거나 지구대 현장 경찰관에게 출동 및 (아동)분리조사를 통보한다. 아보전은 주로 현장에 나가 피해아동 및 가족, 아동학대 행위자를 위한 상담 및 관리를 맡는다.(조사 업무는 올 10월부터 지방자치단체 이관) 준호의 경우도 의사가 직접 신고하고 ‘응급’으로 판단했다면 경찰과 아보전이 현장에 출동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응급성에 대한 판단이다. 원래대로라면 머리에 상해를 입은 경우이니 곧바로 현장에 출동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보전은 국회에 낸 자료를 통해 ‘응급 상황이면 병원에서 신고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등을 출동 지연 이유로 설명했다. 경찰은 같은 자료에서 응급 사례로 분류하지 않은 이유로 “현장에 관련자가 없었고, 신고자의 내용 등을 종합했다”고 했다. 결국 아보전, 경찰 모두 병원의 신고만 믿고 따로 조사하지 않은 채 응급성을 판단했다는 것이다. 아보전 담당자는 결국 경찰 없이 13일 준호의 집에 방문해 준호 가족을 면담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음은 해당 보고서 내용이다.

 

“아동과 행위자를 분리해 거실에서 아동을 단독조사할 때 부모가 있는 방을 쳐다보며 경계하거나 말을 머뭇거리는 모습이 없었고, 진술 과정에서 불안한 모습이 관찰되지 않은 점,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고 분리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함.”

 

준호는 이날 아보전 관계자에게 “잘 지내고 있고, 가족과 떨어지지 않고 싶다”고 했다. 아보전은 현장 방문을 토대로 준호를 ‘저위험 사례’로 분류한 뒤 준호를 부모로부터 분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목숨을 구할 결정적 기회를 다시 놓쳤다. 당시 작성된 아동학대위험도 평가척도표를 보면 △신체 손상, 정서적 피해 등이 의심 △2회 이상 학대 △아동 스스로 보호능력 미약 등이 인정됐음에도 위험 문항 1개가 모자라 격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

 

“준호가 원하지 않았다”는 말로 아보전은 책임을 다한 것일까.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는 “학대의 현장에 있는 아이들이 언론에 등장하는 피해아동처럼 인형을 안고 방구석에 앉아 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보통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며 “좀 더 정밀하게 준호를 들여다봤어야 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아보전 등이 인력이나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역량을 쌓아야 하는 전문기관이 언제까지 시스템 보완만 주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고발장에 “법령상 규정된 사실상 보호자로서의 학대 피해아동에 대한 기본적인 보호 의무를 방임한” 주진관 충남아동보호전문기관장과 “피해아동 보호를 위한 조치를 행하여야 할 직무가 있음에도 안전 확보를 위한 보호 조치, 친권 관련 조치, 담당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한 피해아동 보호 등의 업무를 전혀 하지 아니하여 피해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박상돈 천안시장을 포함했다. 이들은 사회적 부모로 세번의 기회를 놓친 책임자들이다.

 

충남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막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섰다. 지난 3일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왼쪽부터), 소라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영주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이윤경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활동가가 카메라 앞에 섰다. 장철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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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만 이뤄졌더라면

 

가정방문 닷새 뒤인 5월18일 아보전은 경찰에 방문 보고서와 함께 “별도의 사건 처리보다는 가족 기능 강화를 위해 (상담 등) 서비스 제공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준호 부모를 소환조사하기로 한다. 문제는 피해자 조사였다. 천안서북서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부모의 혐의 특정을 위해서는) 아이의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면서도 “경찰 쪽에서 접근하지 않고 아보전 조사관들이 나가 조사했고, 그 결과를 갖고 혐의 입증을 위해 부모를 조사했다”고 했다. 피해자 조사를 아보전의 현장방문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보전은 오히려 경찰의 책임으로 돌렸다. 천안 사건을 잘 아는 충남 아보전 관계자는 지난 6월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직후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경찰이 준호를 조사하지 않은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정말 한번도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아보전도 준호가 숨지기까지 경찰의 직접조사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관계자는 “경찰이 대부분 피해아동을 경찰서나 해바라기센터로 불러 피해 정황을 확인하고 진술조사를 한다”며 “경찰 입장에서 학대라고 특정하기 애매모호하더라도 아이를 직접 만나 확인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의견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아동복지법에 의해 광의적인 해석을 하(기 위한 자료를 만드)는 것일 뿐 실제 조사는 경찰의 몫”이라고 했다. 경찰이 준호를 불러 조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할 일을 하지 않아 네번째 기회를 놓친 것만은 분명하다.

 

준호의 죽음 15일 전, 기회는 여전히 있었다. 준호는 ‘학대우려아동’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보전 관계자는 가정방문 일주일 뒤인 5월20일 성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권유했다. 성씨는 가정방문 당시 협조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노력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상담을 거부했다. 부모의 비협조는 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아보전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보전이 감지한 엄마의 비협조는 경찰과 공유되지도 않았다.

 

경찰은 뒤늦게 준호의 부모만 불러 조사했다. 5월21일과 24일 엄마와 아빠를 따로 불러 조사한 과정에서 학대의 심각성도 인지했다. 부모 모두 체벌을 인정했고, 학대가 지난해 10월부터 있어왔다고 했다. 그럼에도 긴급성을 판단하는 경찰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현장조사는 물론이고 준호와 면담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 아동학대 보호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던 준호는 그렇게 방치됐다. 소라미 변호사는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이후로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 하지만 법 안에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를 담을 수는 없다. 그 의지는 현장 당사자, 그리고 현장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변화돼야 단단해질 수 있다”며 “이번 천안 사건에서도 현장의 주체들이 준호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 아마 죽음을 막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어른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이 학대는 계속됐다. 준호가 여행가방에 갇힌 채 사망하기 며칠 전이다. 이즈음 경찰은 부모를 아동학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하고, 아보전은 준호를 다시 한번 직접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곧바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그 틈에 성씨는 “가족들의 칫솔로 욕실 바닥을 닦았다고 여겨 쪼그려 앉아 있는 준호의 등을 발로 차 준호가 넘어지면서 욕조에 눈을 부딪치게 했”다. 또래보다 작은 키(132㎝)에 체구(23㎏)도 작은 준호는 발에 차여 어디로 구른 것일까. 준호가 다친 눈(망막)은 깨진 머리와 함께 아동학대에서 등장하는 대표적 피해 부위다. 제대로 조사돼 제때 격리만 됐다면 일주일 뒤의 참극은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6월1일, 둘째인 형이 자신의 게임기를 준호가 손댔다며 나무랐다. 준호는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여행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무려 7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엄마는 집 밖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고, 바깥의 누나와 형의 저녁밥을 챙겼다. 그사이 가방 안의 준호는 가방에 들어간 지 3시간 만에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이 정말이냐. 거짓말 아니냐’며 추궁했고, 주눅 든 준호는 “거짓말”이라고 답했다. 가방 속 6시간 만에 준호는 “숨”, “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119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진 준호가 세상을 떠난 것은 6월3일이다. 학대가 어른들에게 인지된 지 30일이 되었을 때였다.

 

 

아동보호 시스템 정비 못지않게

 

관계자 적극적인 구조 의지 중요

 

사회적 부모로 국가 역할 찾아야

 

“학대 사건 끝까지 책임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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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있었던 죽음

 

 

대담자들은 내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에 “한이 맺힌다”고 했다.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보면 재학대에 대해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재학대는 최근 5년 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경찰에 신고·접수된 사례 중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가 다시 해당 연도에 신고·접수돼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를 뜻한다. 재학대는 2019년 3431건이다. 전체 학대 행위 3만45건 중 11.4%에 이른다. 3431건 안에 포함된 아이들의 수는 2776명이다. 이 숫자를 내년에 또 봐야 하는 것일까.

 

 

장하나 활동가는 “학대 자체를 100%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준호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재학대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중 50%까지만 막아도 우리는 억울하게 학대당하는 1천명이 넘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활동가도 “고발은 이제 시작”이라며 “학대 사건 하나하나를 끝까지 추적해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그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너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고도 했다.

 

천안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시스템 정비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졌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학대 재발 여부 확인 요청을 거부하거나 방해한 보호자를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아동학대 피해아동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호를 받다가 가정으로 돌아간 이후 재학대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천안 사건 직후인 지난 6월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 상습 범죄자의 신상 공개와 자녀 살인에 대한 처벌 강화, 민법상 자녀 징계권 삭제 및 체벌 금지 등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해결해보자며 모인 이들이 9월3일 대담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으며 뒷얘기를 나누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원문보기: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1866.html#cb%23csidxe020d9acaa0a61382ec64ae54a38583#csidx684a99334921b03adfcd4a3fd7a6f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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