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보육교사 호봉제 도입, 이룰 수 없는 꿈인가요?
보육교사 호봉제 도입, 이룰 수 없는 꿈인가요?
[베이비뉴스/기자 김민주·권현경]
[우리 아이 첫 번째 선생님의 급여명세서] ⑤어린이집 현장 종사자와 전문가들의 목소리
어린이집 보육교사 인건비는 어린이집 유형에 따라 다르다. 국공립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매년 내놓는 ‘보육교직원 인건비 지급기준’ 호봉제를 따르고 있으나 민간·가정어린이집의 경우 인건비 지급 기준은 따로 없고 경력과 관계없이 그해 최저임금을 받는다. 무상보육 시대, 민간·가정어린이집의 호봉제 도입이 필요한 이유와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 의견을 들어봤다. -기자 말
무상보육 시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급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베이비뉴스는 민간·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의 10명 중 9명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는 보육교사 임금 실태조사 결과에 주목하면서, '우리 아이 첫 번째 선생님의 급여명세서'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그동안 특별기획 보도를 진행했다.
‘우리 아이 첫 번째 선생님의 급여명세서’ 기획 1편에서는 보육교사 두 노동조합 대표와 좌담회를 통해 보육교사 급여 실태와 호봉제 도입 필요성을 짚어봤다. 2편에서는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를 만나 경력과 관계없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지자체마다 다른 이름으로 쪼개진 누더기 수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3편에서는 현재 호봉을 받는 국공립어린이집에서도 경력이 많으면 일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4편에서는 주요 선거에서 나타났던 보육교사 임금 관련 공약이 잘 지켜졌는지 살펴봤다.
민간·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호봉제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일까. 이에 대해 어린이집 운영자를 비롯해 전문가, 시민단체의 의견을 골고루 들어봤다.
◇ 원장 “보육교사 호봉제 찬성…그러나 운영비 지원돼야 가능”
(사)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민간분과위원회 소속 인천 지역 회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보육료 현실화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베이비뉴스는 지난 5일부터 3일간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국공립·민간·가정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교사의 호봉제 도입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피력하면서도, 정부의 의지가 없다면 도입이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어린이집 운영자인 원장도 호봉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중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이하 한어총) 회장은 “민간·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돈을 제대로 주면서 보육의 질이 높아지길 바라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호봉제 도입은 찬성한다. 하지만 호봉제를 도입하려면 정부 지원이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중규 회장은 “국공립어린이집은 교직원 인건비가 100% 지원된다고 대부분 생각하지만 영아반은 인건비의 80%, 유아반은 인건비의 30% 지원받는다. 미래지향적으로 보면 보육교사 처우개선이 돼야 하나 운영비가 부족한 실정에서 지원되지 않는 인건비 부분을 채우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원장들이 어린이집에 투자해서 원금은 못 갚아도 이자는 갚을 수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19와 저출생으로 원생이 줄어 어려운 상황에서 질 높은 보육을 하라고 하는 것은 허상”이라고 말했다.
김경숙 한어총 민간분과위원회 위원장은 “민간·가정어린이집 운영비 중 70%가 보육교사 임금이고 나머지는 급식비, 교재·교구비, 기타경비 등이다. 우리도 보육교사들이 책임감 가지고 일을 하려면 호봉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적인 운영상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원미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원장 급여와 보육교사 급여가 함께 보장돼야 한다. 지금의 구조로는 어렵다”고 말했으며, 박명하 한어총 가정분과위원회 위원장 역시 “경력을 인정해서 보육교사에게 호봉제로 임금을 줘야 하지만 현재 구조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 호봉제가 도입되면…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지난 1월 7일 서울시 정동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민간·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 임금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8년 입사한 보육교직원의 2020년 12월분 기본급여는 179만 5310원이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아동·보육 종사자와 전문가, 시민단체에서도 민간·가정 보육교사의 호봉제 도입에 대해 찬성했다. 이들은 호봉제가 도입되면 가치 절하된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이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순미 민주노총 공공연대노동조합 보육교직원노조 위원장은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일이 기저귀 갈고 코 닦아주는 정도의 노동이 아니라 미래를 책임지는 일이다. 돌봄 노동이 중요한 가치임을 노동하는 주체가 인식하도록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최 위원장은 “국공립과 민간·가정은 채용 시 자격기준이 다르거나 별도의 시험을 치는 형태가 아니”라면서 “호봉제를 도입해 경력을 임금에 반영해서 보육교사의 사회적 지위 확보와 자존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육자 단체인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 공동대표도 돌봄의 가치 인식 개선에 힘을 보탰다. 강 공동대표는 “보육교사가 최저임금을 받는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돌봄의 가치가 떨어져 있다는 증거이다. 돌봄 노동은 임금이 낮게 고착화 됐는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돌봄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강 공동대표는 “경력과 상관없이 최저임금을 받는 보육교사의 처우는 분노할 일이다. 결국 돌봄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급여가 개선돼야 하는데 이 예산이 확보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육교사 임금이 호봉제로 바뀌지 않는다면 보육의 공공성, 보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정책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 “호봉제 찬성… 그러나 민간·가정어린이집은 원장 소유”
이완정 교수는 "모든 보육교사가 호봉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은 동의하지만, 현 소유 구조에서는 가능할지 현실적인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호봉제 도입에 찬성하면서도 민간·가정어린이집은 소유자가 개인인 만큼 정부가 운영비를 더 지원해서 호봉제로 하는 게 맞느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완정 인하대 아동심리학과 교수는 “모든 보육교사가 호봉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은 동의한다. 그런데 민간·가정어린이집의 소유는 원장이다. 일본처럼 법인화가 되면 서로가 자유로운데 사적 소유를 가진 곳에 정부가 이렇게 지원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이어 이 교수는 “초등학교는 사립·공립 모두 교직원 임금이 같다. 학교처럼 전체 체제를 정비하면 의논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 소유 구조에서는 가능할지 현실적인 염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서울 송파병) 국회의원은 12일 취재진에 민간·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 호봉제 도입은 필요하다는 입장에 힘을 보탰다.
남 의원은 “정부가 2019년에 발표한 보육실태조사에서도 보육교사의 인건비는 국공립어린이집 기준 1호봉을 적용해 표준보육비용을 산정하고 있듯이, 보육교사의 최저수준의 처우 보장을 위해서라도 민간·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호봉제 도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특히, 돌봄 노동에 참여하는 대부분이 여성이며, 우리 사회가 아동의 돌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 비해 너무 적은 비용으로 대가를 치르는 부분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개선과제”라면서도 “보육교사의 처우개선에 공공의 재원이 확대되는 만큼 관리·감독의 권한 확대, 보육종사자 및 서비스의 질 개선 등 함께 논의돼야 할 과제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남 의원은 “언제까지 보육을 보육종사자의 헌신이나 부족한 지자체 행정력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지자체별로 천차만별인 보육교직원 지원제도를 통합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 대안을 마련하고, 실현하는 것이 21대 국회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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