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차별하게 해 달라"에 지워진 어떤 사람들

"차별하게 해 달라"에 지워진 어떤 사람들

[차별금지법 시민간담회] 여성·청년·성소수자·이주민들이 겪는 차별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차별할 수 있게 해달라'는 노골적인 말에 '차별하면 안 된다'는 당연한 말이 밀려버렸다"

일부 보수개신교계의 차별금지법 반대에 묻혀왔던 여성, 청년, 아동, 성소수자, 이주민 등 차별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모였다.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이 모여 일상적 차별에 대한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와 더불어민주당 김상희·이상민·박주민·권인숙,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이 공동주최했다.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이 모여 일상적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 페이스북)

 

 

"제 아이는 성정체성을 찾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메이(활동명) 씨는 25세 트랜스젠더 여성 A씨를 자녀로 두고 있다. A씨는 올해 1월 대학졸업을 앞두고 성확정 수술을 받았고, 지난 4월 법원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았다. A씨가 자신의 성정체성에 맞는 몸과 법적 성별을 갖기까지 11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A씨는 걱정부터 앞선다.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났을 때 마주해야 할 차별과 불이익에 불안감이 먼저 엄습하기 때문이다. 메이 씨는 "아이가 겪는 불안이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며 "이제 막 사회 초년생에 접어드는 시점이지만 다른 청년들처럼 본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고민과 더불어, 본인의 정체성이 부지불식간에 마주할 상황을 더 염려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모인 저로서는 너무나 미안하고 고통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메이 씨는 "저희 아이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어렸을 때나, 정체성을 찾아 호르몬 치료를 하고 수술한 지금이나 그 아이는 그 아이일 뿐"이라며 "저희 부부에게 소중하고 귀한 자식이다. 특별한 존재로 여겨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시민으로서 동등하게 대해 달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메이 씨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최근 접수한 사례를 전했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한 어머니가 자녀에게 성확정 수술을 마치고 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고 묻자, 해당 자녀는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메이 씨는 "본인의 외모와 주민등록상의 성별이 불일치한다는 이유로 그 어디에서도, 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에서마저 배제되고 차별당하는 현실이 슬프고 고통스럽다"면서 "성소수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채용불이익, 직장 내 따돌림, 학교폭력 노출 등 이런 일만은 막아달라는 것, 그 최소한의 장치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강조했다.

메이 씨는 "한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은 다수결의 원칙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다수에 속하지 못하는 소수에 대한 존중과 약자의 삶에 대한 공감에 달려 있다고 배웠다"며 "민주주의란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을 잘 보살피는 것이라고 하는데, 국회는 제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힘을 모아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에 서둘러 달라"고 호소했다. 

 

차별의 복합성 드러내는 이주민 혐오

20대 남성, 서울 소재 대학생, 이성애자, 비장애인. 박동찬 씨를 설명하는 사회적 지표다. 언뜻 보기에 차별과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여기에 '이주민'이라는 지표가 붙으면 얘기는 크게 달라진다. 

한국살이 7년차인 동찬 씨는 재중동포다. 언론 등 미디어에선 흔히 '조선족'으로 호명된다. 동찬 씨는 "조선족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며 차별적 현실과 맥락을 드러내고 있다"며 "저희는 대중매체를 통해 불법체류자나 매우 위험한 범죄자, 경계해야 할 문제적 집단으로 동일시되고 있다. 미디어의 '조선족 클리셰'는 끊임없이, 일관되게 공포와 차별을 양산·소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찬 씨는 이런 근거없는 차별적 맥락이 실제 한국에서의 이주민의 삶을 퍽퍽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찬 씨는 코로나19 방역과 지원에서 배제되는 이주민의 삶을 예로 들었다. 동찬 씨는 마스크 5부제, 서울시와 경기도의 의무검사 행정명령, 재난지원금 배제 등을 거론했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마스크 5부제로 250만 외국인 중 95만명이 마스크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외국인 노동자는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한다'는 편견에 코로나19 방역에 위험한 존재로 '낙인' 찍혔으며, 납세의 의무를 다함에도 불구하고 재난지원금에서 배제되는 현실은 인종차별적 조치라는 지적이다. 

동찬 씨는 "그저 근로기준법을 똑같이 적용받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고,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받지 않고, 재난지원금에 배제되지 않으며,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당하지 않는, 그래서 모욕과 혐오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것"이라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경북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무슬림 무아즈 라자크 씨는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이 건립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경북대 인근 대구 북구 대현동에서는 주민·종교단체 민원 후 5개월 간 이슬람사원 건립이 중단됐다. 대구 북구청은 지난 2월 공사중지명령을 내렸고, 최근 사원 건축주측은 북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라자크 씨는 "경북대에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약 150명의 무슬림 학생들로 이뤄진 커뮤니티가 있다. 이슬람 신자들은 하루 5번을 기도드려야 하기 때문에 커뮤니티 센터가 필수적"이라며 "안타깝게도 저희의 이웃들과 공직자들로부터 건립이 강력히 저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라자크 씨 설명에 따르면 수년 전 이슬람 커뮤니티와 이웃주민들이 통행을 방해하는 건축물에 대한 구조변경을 요청했으나 대구 북구청은 건축물 소유권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적법하게 진행된 이번 사원 건립은 의견수렴 없이 직권으로 건립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라자크 씨는 이 지역 주변 교회들이 명시적인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자크 씨는 "반대파는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우리의 종교를 폄훼하고 무슬림에 대한 혐오를 퍼뜨리고 있다"며 "반대파는 나아가 거주 중인 무슬림 학생들을 내쫓으려 하고, 학교 주변에 반대 현수막을 걸고, 사원 주변에 쓰레기를 던져놓고 쓰레기가 많다고 신고를 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와 소수자 권리 보장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시행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5월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평등의 약속, 차별금지법 바로 지금'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학력차별이 공정이냐"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연세대 미래캠퍼스(분교)에 재학중인 도도(가명) 씨는 신촌캠퍼스(본교) 학생들의 미래캠퍼스 혐오정서와 학교 측의 부당한 조치를 비판했다. 연세대는 캠퍼스 소속을 변경할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다.  

도도 씨는 "이 제도를 두고 학내에서 말이 끊이지 않았다. 지방대에서 한국 최상위권 학교를 가는 제도는 파격적이지만, 몇 개월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불공정'을 얘기하며 신촌캠과 미래캠 학생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그 과정에서 미래캠 혐오도 있었다. '소변충', '원세대'라는 조롱이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도도 씨에 따르면 연세대는 신촌캠 학생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래캠 학생들의 취업정보사이트 접근권한을 박탈했다. 

도도 씨는 학벌주의와 경쟁체제를 부추기고, 학력차별을 '공정'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를 비판했다. 도도 씨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청년들이 살아가기 때문에 학벌주의 신봉자가 아니더라도 '공정'을 쉽게 공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특정집단을 다른 집단과 학교를 기준으로 구분짓고, 차등대우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기관이 이를 수용하는 것은 차별을 제도적으로 고착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낮은 출산율 따지는 대한민국, 여전히 '노키즈존'"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대한민국 사회는 여성들에게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며 마치 자궁과 생명을 맡겨놓은 양 저출산을 따지는 것에 비해 정작 태어난 존재가 온전히 살기 어려운 사회·제도·환경 개선에는 무심하다"며 "정부의 선진국 자화자찬이 무색하게 아이와 양육자들에게 대한민국은 생존을 위협하는 '노키즈 국가'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활동가는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합리적 이유없이 아이를 배제하는 '노키즈존'을 아동차별로 권고했음에도 '권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인권위 권고 이후 한국엔 '노배드페어런츠존'도 생겼다. 아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나쁘다는 아동인권에 대한 몰이해는 아동과 양육자 입장에서 이러나 저러나 '문전박대'"라며 "아동에 대한 공공·상업시설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아동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여성·엄마에 대한 혐오와 붙어있다"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다른 고객이 소란을 피우는 걸 싫어한다는 이유로 아동권리는 인정하지 않고, 여성에 대한 혐오가 심각할수록 아이와 돌보는 이의 사회적 공간은 협소해졌다"고 밝혔다.   

 

"여성 청년 노동자가 차별 얘기하면 피해의식 젖은 사람으로 인식"

취업준비 중인 24세 수빈 씨는 여성이 성별을 이유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차별과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수빈 씨는 "결혼과 임신, 출산 계획을 얘기한 적도 없는데 잠재적 아내 혹은 엄마로 간주되어 오래 일하지 않을 사람으로 판단된다"며 "채용과정에서부터 남성과 여성의 임금을 다르게 고지하는 회사를 보고 쓴웃음 지을 때도, 페미니스트는 뽑지 않는다는 구인공고를 보고 자기 신념을 숨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빈 씨는 "좁은 문을 뚫고 취직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수많은 자리들이 있고, 함께하지 못한 결과는 승진에 대한 불이익으로 다가온다"며 "남성들이 정수기를 가는 것이 남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얘기할 때 직장에서까지 가사노동으로 여겨지는 온갖 일들을 떠안게 되는 여성들은 조용히 입을 다문다"고 했다. 

수빈 씨는 페미니스트인 것을 밝히면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사람으로 간주되거나 불이익 인사조치를 받는 현실은 그 자체로 "차별과 혐오"라고 지적했다. 수빈 씨는 "제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고, 사회생활도 해본 적 없는 24세 여자애의 투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시대 수많은 2030 여성들의 삶"이라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것, 성소수자임을, 아픈몸을, 외국인임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것을 우리는 차별이라고 한다. 차별금지법은 여성 청년 노동자들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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