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노키즈존' 있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닙니다 - 김정덕 활동가
[기고]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지난 9일 평등법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시민간담회 '우리가 만들 평등의 약속'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시민들이 바라는 평등법과 차별금지법의 내용이 무엇인지 공유하고, 실질적인 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안팎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했습니다.
이날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아동과 양육자는 현실 곳곳에서 배제와 혐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라며 "아동과 양육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고 연결될 때 비로소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정덕 활동가의 발언을 기고 형태로 독자여러분과 함께 공유합니다.
이날 간담회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실, 이상민 의원실, 박주민 의원실, 권인숙 의원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공동주최했습니다. 유튜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채널에서 다시보기할 수 있습니다.
◇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출입금지, '노키즈존'은 명백한 '아동 차별'
어떤 아동도 양육자 한 사람의 돌봄만으로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엄마, 한 사람으로서 아동을 이 사회는 얼마나 지지하고 지원하고 있을까요? 아동과 함께 살아가는 양육자들은 현실 곳곳에서 환대는 고사하고 배제와 혐오의 벽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노키즈존 (No Kids Zone)’입니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며 마치 자궁과 생명을 맡겨놓은 양 저출산율을 따지는데, 정작 태어난 존재가 온전히 살기 어려운 사회·제도·환경 개선에는 무심합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되었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이 무색할 정도로, 아동과 양육자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노키즈국가’일 뿐입니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며,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는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상업시설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1991년 대한민국이 비준한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3조와 제19조는 '아동에 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모든 형태의 신체적·정신적 폭력 등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행정적·사회적·교육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헌법과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바탕으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은 아동 차별'이라며,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아동을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권고일 뿐입니다. 여전히 노키즈존은 건재합니다. ‘노 배드 패런츠 존(No Bad Parents Zone)’도 생겼습니다. ‘아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모는 나쁘다’는 아동인권에 대한 몰이해는 차치하고라도, 서로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아동과 양육자 입장에서는 이러나저러나 문전박대당하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아동에 대한 공공시설, 상업시설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아동에 대한 차별이기만 한 게 아니라 돌보는 사람, 돌보는 여성, 엄마에 대한 혐오와 붙어있는 문제입니다. 출산율 낮다고, 인구절벽이라고 하지만 아동 권리는 인정하지 않고 여성에 대한 혐오가 심각해질수록 돌보는 이와 아동에 대한 사회적 공간은 협소해집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인권위원회의 권고에 그쳐 좌절되는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차별금지법안에서는 차별금지 사유에 나이를 포함하고, 차별금지영역으로 재화·용역·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 영역을 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유나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영유아휴게시설 및 유아차의 접근성을 높이는 등 정부가 아동과 양육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편의시설을 강제할 수 있다면 양육자와 아이에 대한 존중의 정도와 사회 인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차별금지법 있는 캐나다도 노키즈존 있다…‘술집, 클럽, 카지노’만
캐나다는 이미 지난 2006년에 아동에 대한 차별금지 내용을 담아 차별금지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캐나다에도 노키즈존이 있긴 있습니다. 바로, 마약이나 술을 판매하는 곳, 스트리퍼 클럽, 카지노 이렇게 세 군데뿐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인권 강령에 따르면, 어린이의 안전이나 건강을 손상하는 서비스나 시설에 어린이가 접근할 수 없도록 조치하는 것은 합법입니다. 아동들의 건강, 안전 또는 복지가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선의의 이유로 어린이에 대한 접근을 거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임의로 연령을 제한해 ‘어린이가 없는 환경’이라는 설정을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즉, 캐나다에선 자녀가 있는 고객에 서비스를 거부한 레스토랑의 행동은 ‘차별적 행동’이며, 다른 고객이 아이가 소란 피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가 있는 가족을 차별해선 안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캐나다에서는 어느 장소에서든지 모유수유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캐나다 온타리오주 인권 강령에 따르면 ‘수유부는 공공장소에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일 권리’가 있고, 그 누구라도, 모유수유를 공공장소에서 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에게 젖 먹이는 행위를 막아선 안 됩니다.
온타리오 인권 강령은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제공하고 온타리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하는 법입니다. 법에서는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임신과 수유를 포함한 성별 때문에 괴롭히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동이 환대받는 나라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 어린이가 위험한 ‘어린이보호구역’… ‘노키즈존’의 다른 이름
우리 사회는 생명을 잃을 정도의 피해자로 호명될 때나 관심을 줍니다. 아동 역시 그렇습니다. 지난 2019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의 이름에 빚진 ‘민식이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스쿨존에 과속방지턱과 감시카메라, 신호등을 의무로 설치하는 법이지요.
지금까지 없었던 게 이상할 정도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등하굣길엔 불법주정차 차량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주차단속을 나오지 않거나, 어린이보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지만 방관하는 등 행정당국의 무심은 여전합니다. 아동의 안전을 마땅히 최우선으로 두어야 함에도 주변 민원 때문에 하기 어렵다며 나서지 않는 동안 아동들은 여전히 안전에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동이 안전한 곳은 모두가 안전한 곳일 텐데, 자동차가 어린이보다 더 많이 태어나는 나라에선 늘 뒷전입니다. 어린이가 안전하지 않은 어린이보호구역, ‘노키즈존’의 또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 교육청 공문에 버젓이 ‘민식이법 놀이’, 당국이 아동학대 앞장선 셈
아동들은 여전히 최대 피해자들이지만 사회를 향해 목소리 내기 어려운 아동의 처지를 악용해 이른바 '혐오 장사'를 하는 유튜버나 보험회사들이 있습니다.
아동들이 불시에 차량운행을 방해하고 위협한다며 운전자들의 아동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은 혐오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해 피해자들은 물론 그와 같은 처지의 아동과 양육자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육당국이 아동 혐오에 나서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5월 서울 등 일부 지역 교육청들은 학교를 통해 보호자들에게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사고 예방 공문을 보내면서 언론보도를 인용하며, 극소수 아동들의 스쿨존 내 운전자 위협 행위를 가리켜 법명에 ‘놀이’를 붙여 잘못된 표현을 썼습니다.
하지만 운전자 위협 행위는 아동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당연히 해선 안 되는 행위입니다. 이른바 '민식이법 놀이'는 오히려 피해자 이름에 가해자성을 부여하고, ‘놀이’라는 표현으로 그 심각성을 축소한, 명백한 혐오 표현입니다.
공적기관이나 언론이 스쿨존 내 문제 행위를 지적할 때마다 너도나도 무분별하게 희생자의 이름을 부적절하게 언급하는 것은 심각한 2차 가해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시정과 각성을 요구하는데 현재로선 법적 한계가 있습니다. 이 역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차별은 약자가 있는 곳에 모두 존재합니다. 아동만 차별받지 않는 사회란 없습니다. 엄마만 차별받지 않는 사회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연결될 때 우리는 기꺼이 살고 싶을 것이며, 비로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이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 모두를 위한 평등의 디딤돌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사원문보기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6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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