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엄마과학자 창업도전기] 13화. 노동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엄마과학자 창업도전기] 13화. 노동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종합/땡그리엄마 (2021-10-21)
우리 회사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드디어 영혼의 동반자인 동료 대표가 출산을 했다.
아이를 키우는 100일, 출산을 한 동료 대신, 몸으로 뛰는 일을 맡아 하게 되었다.
처음 창업을 하고 얼마 뒤였던가? 영혼의 동반자인 짝꿍이 먹구름 가득한 카톡을 보냈었다. 짝꿍의 셋째 임신 소식이었다. 본인은 굉장히 절망적이고 망했다고, 미안하다고 카톡을 했지만, 소식을 들은 나는 한참을 웃었었다.
아이 키우면서 일하자고 회사를 만들었는데, 진짜 말 그대로 아이를 (배 속에서) 키우며 일하는 회사가 되었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실 하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우리에겐 돈이 없었다. 그래서 정부 지원 과제를 하나하나 따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하루하루가 매우 바빴었다. 그렇다 우리에겐 사실 휴식이 필요했다. 머리도 식힐 겸,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임신이란 이벤트는 과거에 나에겐 별로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출산을 할 상황은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7월 출산은 정해졌고, 우리는 우리가 진행하고 있던 일을 하나하나 마무리하기로 했다. 정부 지원 과제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시간이 아까웠기에 재택을 해야 하는 동료는 되도록 비대면 교육 프로그램이나 간접 지원 방식의 과제를 신청해 보자 제안했고, 임신부인 동료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조건에서 우리는 올해 무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장 중요한 자본 확보는 기술보증기금을 통하기로 했고, 1년 차 우리의 목표인 급여 가져가는 것을 올해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우리가 임신을 확인하고, 출산 전까지 해결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미션 수행을 위해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점점 배가 불러오는 동료는 서류 작업을 하고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 전부를, 그리고 나는 제품을 보내고, 손님을 맞이하고, 대면 인터뷰 혹은 실사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새로운 업무 형태를 만들고 도전하게 된 셈이다.
이렇게 업무를 나눈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있기에 우리는 앞으로 긴급 상황에 자주 노출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COVID 시국이 아니던가, 임신 중인 동료는 재택을 통해 건강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고, 아이의 건강을 고려할 때 외부에 출입이 잦은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 명은 재택으로, 재택으로 인해 외부 업무는 한 명에게 몰빵한 것뿐이었다. 상대적으로 예방접종이 가능한 비 임신부가 외부 업무에 더 적합하다 판단한 것이다.
업무 분담을 제외하고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우리의 급여였다.
처음, 회사를 설립하며, 우리는 우리의 급여를 어떻게 정할지 고민을 했었다.
대부분 스타트업은 자본이 적고, 매출이 발생하기 전 단계이기 때문에 대표자가 급여를 가져가지 않고, 무급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대표자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는 근로자가 아니다. 법인에 채용이 된 것은 맞지만, 사용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대표자는 최저임금도 없고, 근무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휴가 역시 정해져 있지 않다.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자의 월급은 이사회에서 결정을 하는데, 만약 기업이 1인 법인이라 이사가 사실상 혼자라면, 이 또한 셀프로 퉁 치고 지나갈 수도 있다. 역시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다.
언뜻 들으면, 초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 대신 대표자가 무급으로 일하는 것이 더 좋게 보일 수도 있다. 근무시간도 없고, 휴가도 없으니 대표자의 영혼을 탈탈 털어 넣으면 근로자 2명의 일을 할 수 있으니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꼭 좋은 것만 있지는 않다.
우리가 대표자의 월급에 대해 고민을 했던 이유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열정 만랩으로 노동의 시름을 잊고 산다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대가 없이 노동을 한다는 것은 열정으로 이겨낼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생계가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대가 없는 노동을 임금체불을 통해 경험해 본 바 있었기 때문에,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경험해 본 바, 생계를 위협받으며 일을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어느 순간 피폐해진다.
또 다른 문제는 비용 처리 문제이다.
대표자가 급여를 가져가지 않게 되면, 회사는 비용처리를 할 수 없다. 비용처리를 하지 못하는 만큼, 결국 세금을 많이 내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 외에도 대표자가 무급인 경우 상시 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정부 지원 과제를 수행할 때, 상시 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은 4대 보험이다. 대표자가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우, 4대보험 역시 가입되지 않기 때문에 상시 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과제에서 기업 부담금을 내는 상황에서, 현물로 잡을 수 있는 것을 현금을 그대로 내야 하는 불상사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장기적으로 급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현재 법인의 상태를 고려하여, 적절한 급여를 의논하여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비용처리도 잘 진행하고 있고, 급여가 있어서 상시 인력으로 인정받아 이후 사업들을 신청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 그리고 이번에 급여 문제를 처리하며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정확하게 대표이사는 4대보험이 아닌 2대 보험이 된다는 것이었다. 대표이사 그리고 등기이사는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4대보험 중,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동료는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출산휴가 급여와 육아휴직 급여를 따로 받을 수 없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근로기준법에 영향 없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인 관계로 어차피 휴가나 이런 건 없어서.... 그냥 자체적으로 셀프 출산휴가와 재택근무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말이 출산휴가 셀프지, 동료는 병원 입원 제외하고 조리원에서 나와 함께 비대면으로 인터뷰에 참여하곤 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육아기 단축근무나 혹은 육아기 재택근무를 위해 많은 상시 인력이 대기하고 있다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대표이사를 대체할 수 있는 상시 인력은 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가 해결책을 만들며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동안 법인 대표가 아이를 낳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n값이 적어서 이에 대한 대비가 없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힘들긴 하지만, 아기는 탄생 100일이 지나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고, 일단 되는대로 해보자고 시작했던 이 업무 분담 역시 100일을 헤쳐나가고 있다.
가능해서 한 건지 아니면 반드시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또한 새로운 우리만의 업무 방법으로 이제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이 재택+육아+돌봄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실험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우리 회사만의 독특한 근무방법을 찾아낸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방식을 잘 적용한다면, 처음 목표한 것처럼 아이를 키우며 굴러가는 묘한 회사 하나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BRIC동향/윤정인활동가]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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