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투데이/인터뷰] ‘어린이 차별 없는 세상’_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어린이들도 규칙을 배우고 지킬 수 있습니다”
공존하려는 노력 대신 배제와 거부 선택하는 노키즈존...차별임을 인식해야
휠체어 못 가는 길은 유아차도 못 간다...서로 연결된 차별 문제 체감
“자녀 차별 받아도 괜찮다는 양육자 없을 것”...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한국뉴스투데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으고, 국가는 돈을 줄테니 낳으라는 식의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엄마들이 ‘맘충’이 되고 어린이들은 ‘잼민이’가 되는 현실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정치인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양육자와 어린이들이 대한민국에서 겪는 차별적 구조를 바꾸겠다며 모인 엄마들이 있다. 성평등·아동학대·돌봄 이슈부터 노동·이주민·차별금지법·기후위기·탈핵 문제까지, 미래 세대에게 차별 없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싸워온 ‘정치하는엄마들’의 박민아 공동대표를 만났다. <편집자주>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 위치한 정치하는엄마들 사무실에서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를 만났다. (사진/한국뉴스투데이)
어린이날 대신,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지난 5월 5일, 방정환 선생을 필두로 1922년 선포된 어린이날이 100주년을 맞았다. 전국 곳곳이 소풍을 나온 양육자들과 어린이들로 북적이는 이날, 국회 앞에서는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식이 진행됐다. ‘노키즈존 가고 차별금지법 오라’는 제목으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농성장 앞에서 열린 이 기자회견에서는 어린이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식은 어린이날 100주년에 어린이들에 대한 차별을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기획하게 된 행사예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권단체에서 장애인의 날 대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선포한 것을 모티브로 했어요. 어린이날을 그저 축하하는 것도 좋지만, 정말로 어린이를 위하는 건 어린이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을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5일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국회 앞 차별금지법 농성장에서 진행된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에서 이지예 어린이가 노키즈존에 반대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치하는엄마들)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린이들의 발언 순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어린이라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것, 한국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점이 기획자들의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이미 노키즈존을 인지하고 있었고, 노키즈존이 어떻게 제약으로 다가오는지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이전까지 노키즈존을 차별로 호명하는 현장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일은 드물었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걱정스러운 점들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어른들끼리 갑론을박하던 노키즈존 문제에 있어서 어린이들이 직접 자신들의 권리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징적이었어요. 저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이 초기에는 아이들이 어리니 아기띠 메고 유아차 끌고 나와 아이들의 권리를 대변해 이야기했었는데, 어느덧 아이들이 커서 직접 자신들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도 저희에게는 벅찬 경험이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5일 어린이차별철폐의날 선포식에서 발표된 김나단 어린이의 발언문 내용. (사진/정치하는엄마들)
공존 대신 거부 선택하는 노키즈존
앞서 2017년 인권위는 아동의 식당 출입을 거부한 제주도의 한 식당에 대해 차별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상업시설의 운영자들은 최대한의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헌법 제15조에 따라 영업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원하는 방식대로 시설을 운영할 자유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러한 자유는 무제한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특정한 집단을 특정 공간 및 서비스의 이용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사유가 인정되어야만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도 노키즈존의 성행 이후 노배드패런츠존·노스터디존·노튜버존·노시니어존 등도 잇따라 등장했고, 노OO존의 운영은 사업주의 재량이라는 시각 또한 여전히 만연하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배제와 거부를 간편하게 사용 가능한 하나의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는 분위기가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거부와 배제는 보호돼야 할 권리가 아니”라며 “아이들에게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줘도 모자랄 판에, 타인을 그저 거부하고 배제하면 간편하게 처리된다는 것을 학습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또 박 대표는 노키즈존 운영 저변에 깔린 시각도 문제적이라고 봤다. “노키즈존은 어린이들을 잠재적인 문제아로 보고, 엄마들은 잠재적인 진상 고객으로 봐요. 잼민이나 맘충 같은 단어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오는 거죠. 어린이와 양육자를 함께 살아가야 할 사회구성원으로 보는 태도는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나서지 않으면서 돈을 주면 출산율 문제는 해결된다는 듯이 현금성 정책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일 진행된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식에서 발언을 마친 어린이들이 '노키즈존 나빠요! 차별금지법 좋아요!'라고 적힌 현수막의 글씨를 색칠하고 있다. (사진/정치하는엄마들)
아이와 양육자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어린이가 겪는 차별은 양육자가 겪는 차별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어릴 때는 유아차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데, 유아차를 타고는 갈 수 없는 곳이 정말 많아요. 계단뿐인 곳은 물론이고, 버스 한 번을 타도 ‘유모차 끌고 버스를 다 타네’ 같은 눈빛을 받게 돼요. 키즈존 빼고는 사실상 다 노키즈존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하죠.”
양육자와 어린이가 경험하는 차별은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의 차별과도 연결된다. “휠체어가 갈 수 없는 곳은 유아차도 갈 수 없고,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유아차도 갈 수 있어요. 장애인 이동권이 장애인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예요. 대중교통은 말 그대로 대중을 위한 교통인데, 대체 그 대중이 누구인지를 묻게 돼요. 분명히 거기에 들어있지 않은 존재들이 있으니까요. 저는 이런 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대우받는 것.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로 취급되는 것.”
박 대표는 어린이와 양육자 차별이 방치되는 데에는 어린이들에게 투표권이 없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고 봤다. 투표권을 가진 양육자들도 대부분 일과 육아로 인해 정치적으로 결집하기 어렵다. 소상공인의 경우 적극적으로 결집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노키즈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배경도 짐작해볼 수 있다. 정치하는엄마들과 같은 시민단체의 존재와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왼쪽)가 법원 앞에서 스쿨미투 처리현황 공개를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평범한 엄마들이 세상을 바꾼다
박 대표와 정치하는엄마들의 인연은 박 대표가 우연히 ‘핑크노모어’ 프로젝트를 보면서부터 시작됐다. “9시 뉴스를 보다가 어떤 단체에서 공갈 젖꼭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걸 보게 됐어요. 기능상 전혀 차이가 없는데도 남아용과 여아용을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구분하는 것이 성차별이라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했다는 거예요. 어디서 진행한 것인지 보니 이름이 정치하는엄마들이더라고요. 엄마들이 이런 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낸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래서 후원을 시작했다가, 나중에 사무국 직원을 구한다는 소식에 타이밍이 맞아서 일하게 됐죠. 상근활동가로서 일하다 보니 공동대표까지 맡게 되었네요.”
정치하는엄마들은 아이를 낳은 생물학적 엄마들뿐 아니라 모든 양육 주체들이 한국에서 겪게 되는 모든 문제에 저항하는 단체다. 일반적으로 학부모 단체들이 다뤄온 돌봄이나 아동학대 문제뿐만 아니라 성평등, 노동, 환경, 탈핵, 성소수자, 이주민 문제까지 목소리를 낸다. 어린이생명안전법 입법을 밀어붙였고, 스쿨미투의 전국 지도를 만들어 공개했고, 기후위기의 당사자는 다음 세대라는 취지에서 아기들을 주체로 한 기후위기 헌법소원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만큼 다양한 단체들과의 연대 활동도 활발하다. 박 대표는 “연대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때, 직접적인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은 사람들이 나서서 이게 문제라고 얘기할 때의 힘이 있거든요. 차별금지법도 그래요. 저희는 말하자면 너무도 정상적인 이성애 가족들이잖아요. (웃음) 그런 저희가 나서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할 때의 효과가 있어요. 차별의 문제가 단지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걸 드러내 주는 거죠. 심지어는 이 조그만 아이들조차도 이미 차별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박 대표를 비롯한 정치하는엄마들의 활동가들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활동가들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정치하는엄마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지만, 박 대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자녀가 사회에서 배제되고 거부돼도 괜찮다는 양육자가 있을까요? 내 자녀가 어떤 성 정체성을 가졌든, 장애가 있든 없든, 어떤 형태로 근로하며 살든,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든 언제나 차별받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양육자들의 똑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바람이 실현되려면 가장 기본이 되는 차별금지법은 당연히 제정돼야 하죠.”
박 대표는 어떤 문제를 문제로서 인식하게 만드는 활동이 정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저희는 전부터 ‘평범한 엄마들이 정치를 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어요. 이 슬로건에는 정치라는 문턱을 낮추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게 정치일 뿐이라는 메시지죠. 정치하는엄마들로 활동하며 악플을 받을 때도 있지만, 저는 욕을 먹더라도 무관심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욕을 한다는 건 최소한 보긴 했다는 거니까요. 살면서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을 문제들에 대해서 그것이 문제라는 걸 인지하게 하는 것 자체에 정치하는엄마들의 활동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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