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엠네스티] ❝너의 권리를 알고 너의 권리를 주장해❞
<너의 권리를 주장해> 릴레이 서평 시리즈 (7)
강미정 |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아동도 어른과 똑같은 존엄을 지닌다고?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세상이 일러준 말들에 대해 떠올려 본다. 가정에서 줄곧 듣던 말, “어른들 말씀 잘 들어야 착한 어린이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의존적인 존재로서 기성의 거대한 질서를 거스르기는 두려웠는지 아니면 규율을 따르면 돌아오는 칭찬이 달콤했기 때문인지 당시의 나는 저 말을 삶의 태도로 충실히 받아들였다. 어리더라도 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할 의견 표현 및 참여의 권리가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다. 아동도 어른과 똑같은 존엄을 지닌 인간이며 존중받을 자격을 지닌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학창 시절 줄곧 듣던 말은 “나중에 대학 가서”,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이었다. 더 나은 미래를 대비하며 현재는 희생하는 것이라는 사회 시스템의 시간관념이 몸에 각인되던 시기였다. 언젠가를 내세우며 고강도의 학습 노동을 요구하는 현실을 무기력하게 수용했다. 교육시장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팔고 미디어는 이를 교묘하게 확대 재생산했다. 교실 안 경쟁은 강화되었고 연대와 사랑할 시간은 유예되었다. 늘 불안했고 학습과 관련 없는 활동은 하지 않았다. 놀고, 쉬고, 친구를 선택하고, 생각을 나누고, 문화와 예술 활동을 즐길 권리를 지녔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모든 아동 삶의 중심에는 놀 권리가 있으며 놀 권리는 신체, 지능, 사회성과 감정 등 모든 방면의 발달을 돕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양육자와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시작하다
그렇게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는 시스템 순응적인 청소년으로 성장했고 아동권리를 몰랐으니 사회에 나가 노동자로서 권리를 모르는 노동자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무급 연장근무를 업계 관행이라 일컫는 노동 현장에 순응하며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해도 이를 문제 제기할 줄도 몰랐다. 내 인생의 주체는 내가 아닌 채 살아오던 내가 어떻게 양육자와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결혼하고 둘째가 태어나 뒤집기를 할 무렵 양육 당사자들의 정치를 실천하는 정치하는엄마들 회원이 되었다. 봄비 내리던 어느 날 생전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 집회에 나가 마이크를 잡아 보았다. 준비한 발언을 하며 속으로 ‘이제 곧 잡혀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이 빗속을 미끄러지는 소리 외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가 앰프를 타고 퍼지자 8차선 도로의 차들이 정지된 듯한 장면과 함께 발언하는 3분여 동안 해방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자유였다. 각성의 순간이었다. 그동안 잘 사는 줄 알았는데 틀렸다. 나는 지배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속고 살았다. 언젠가의 시간은 내일이 되면 또 언젠가가 된다는 점에서 영영 도래하지 않았다. 그리고 잡혀가지도 않았다. 공공의 안녕질서를 위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치안의 논리로 통제되어야 한다고 국가권력이 심어 놓은 자기 검열의 잠금쇠가 서서히 풀렸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지니고 정보를 찾고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한참 뒤에야 경험한 것이다. 권리를 알게 되자 침해당한 권리가 너무나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알게 된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너의 권리를 알고, 너의 권리를 주장해!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아동·청소년들은 유년 시절의 나이기도 하다. 나의 유년 시절에는 ‘너의 권리를 주장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반갑게도 지금의 아동·청소년들에게 너의 권리를 알고 그 권리를 주장하라고 외치는 책이 나왔다. 바로 국제엠네스티·안젤리나 졸리·제럴딘 반 뷰런이 지은 <너의 권리를 주장해>이다. 원제는 Know your rights and claim them – a guide for youth. 책의 목적이 원제에 담겨있다. 자신들의 권리를 알려주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기술들이 소개되어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은 있지만 아동권리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기 위한 방법론에 방점을 찍은 책은 이 책이 유일할 것이다. 아마 권력과 기득권을 누리는 어른들은 이 책이 읽히기를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의 출간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타당하고, 고유하며, 중요한 통찰력을 바로 지금 지니고 있다.
– 『너의 권리를 주장해』(p.35)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독자를 아동·청소년으로 가정하고 여러분이라 지칭한다. 1부는 ‘여러분의 권리 알기’로서 아동권리의 역사와 유엔아동권리협약과 기본 원칙에 대해, 2부는 ‘여러분의 권리 이해하기’로서 권리와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투쟁해 온 아동 활동가들의 실제 이야기를 소개한다. 3부는 ‘여러분의 권리 주장하기’로서 권리 요구 방법에 관한 정보를 안내하고, 마지막 4부는 ’참고 자료와 정보‘로서 관련 용어와 더불어 아동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기관들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치는 세계 곳곳의 어린이 청소년 활동가들의 생생한 발언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중 무장 분쟁 지역에서 길을 잃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도움을 주는 위치 추적 앱을 개발한 나이지리아의 활동가 올루와토미신의 목소리를 전한다.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고 강화하는 데 필요한 힘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를 더 일찍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권이 침해당할 때 무력하고, ‘감당해야 할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특히 권력자들이 인권을 침해하고, 당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짓말을 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우리 자신을 세뇌시킨 거짓말입니다. (…)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이를 위해 싸우도록, 그리고 위기에 처한 모든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협력자가 되도록 격려할 것입니다. 저는 전 세계의 모든 아동과 연대할 것입니다.
– 『너의 권리를 주장해』(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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