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아직 빈칸으로 남은 '스쿨 미투' 4년의 싸움

프로젝트

아직 빈칸으로 남은 '스쿨 미투' 4년의 싸움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통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받은 ‘2018~2020 스쿨 미투 처리 현황’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자료는 많은 부분이 빈칸으로 남아 있다.

 

2018년 4월 용화여고 재학생들이 학교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WITH YOU’ ‘#ME TOO’ 등의 문구를 만들어 붙였다.ⓒ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 위원회 제공

“평소에 계속 그

때 생각이 나거나 하진 않아요.” 박소현씨(가명·25)가 말했다. 박씨는 2018년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린 ‘스쿨 미투’ 당사자다. 그가 국어 교사 A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은 2013년 6월께, 서울에 위치한 중앙여자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는 일상 속에서 항시 피해를 되새기며 살아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가 잊힌 것은 아니었다. 불쾌한 기억은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몸 오른쪽에 뭐가 스친다거나 하면 그때 생각이 나긴 해요. 그 사람이 제 오른 어깨 쪽을 만졌거든요.”

당시 박소현씨는 물리치료를 받느라 늦게 등교하곤 했다. 운동 중 허리를 다쳤기 때문이다. A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수업은 학교 도서관에서 진행됐다. 책을 고르고 발표를 준비하는 수업이었다. 도서관에 늦게 도착해 가장 마지막으로 책을 빌린 박씨는 교사 A씨와 함께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 문 앞에서 A씨는 박씨에게 왜 수업에 늦었는지 물었고, 박씨는 “운동하다 허리를 다쳐 치료받느라 늦었다”라고 대답했다.

“나도 허리를 아파봐서 고충을 안다.” A씨는 이렇게 말하며 박소현씨의 몸에 손을 올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실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A씨의 행동이 반복되자 박씨는 자신이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성추행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게, 제가 운동을 10년 가까이 남자 선생님들에게 배웠거든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만지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어떻게든 빨리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박씨의 머릿속을 스쳤다. 도서관 앞은 쉬는 시간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다. 박씨는 A씨에게 “복사할 게 있으니 먼저 가시라”고 말하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박소현씨가 교사 A씨를 고발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했다. 2018년 가을, 박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중앙여고 후배 송지은씨(가명·22)로부터 가해 교사 A씨가 학교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박씨는 트위터에 중앙여고 스쿨 미투 계정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쿨 미투 계정을 만든 사람은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 제보를 부탁하고 있었다. 자신의 진술 말고는 증거가 없어 힘든 상황이라는 또 다른 피해자의 말에 박씨는 용기를 내서 자신의 피해 내용을 제보했다. 스쿨 미투 계정 주인은 자신과 함께 수사를 받을 수 있느냐 물었고, 박씨는 일면식도 없던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가해 교사 A씨가 학교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박소현씨에게 전한 송지은씨는 2018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A씨는 송씨의 국어 담당 교사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A씨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 이유를 몰랐다. “(A씨가 스쿨 미투로 고발되었다는 것을) 저는 소현 언니를 통해서 알게 됐지만 다른 애들은 몰랐을 거예요. 스쿨 미투가 터졌다는 소문 자체가 아예 안 퍼졌어요. 제가 졸업한 직후인 2019년에야 알게 된 것 같아요.” A씨가 직위해제되어 학교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피해 사례 전수조사나 특별 교육은 없었다고 송씨는 말했다.

재학생들 역시 가해 교사 A씨로부터 성희롱 소지가 있는 발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2017년경 A씨는 학급 게시판에 있는 한 학생의 사진을 보고 “얘는 참 목선이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스쿨 미투 당시 재학생이던 송지은씨는 해당 발언이 분명 성희롱이라고 인식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쿨 미투 자체에 반감을 가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들은 다른 학교의 ‘스쿨 미투 사례’에 대해서 “너무 예민하게 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학교의 전수조사도, 학생들의 일치된 입장도 없는 상황 속에서 재학생들의 ‘언어 성폭력 관련 내용’은 제대로 제기되지도 못한 채 지나가버렸다.

 


 

용화여고 가해 교사 중 법적 처벌 ‘1명’

고소를 진행하긴 했지만 박소현씨가 마주한 재판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피해 기억을 반복해서 진술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박씨를 두렵게 한 것은 보복 범죄 가능성이었다. “뉴스에 보복 범죄 같은 거 많이 나오잖아요. 어떻게든 신상은 알게 될 것 같은데 혹시나 앙심을 품고 찾아올까 봐 걱정됐어요.”

가해 교사 A씨에 대한 재판은 2021년까지 이어졌다. 1심 선고는 2020년 6월에 내려졌지만, A씨는 “피해자들의 진술에 충분한 신빙성이 없다”라며 항소했다. 2021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하고 가해 교사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과 3년간 아동·청소년 기관 등에 취업제한을 선고했다.

2018년 5월 A씨가 직위해제를 당하며 추가적인 가해는 멈췄지만, 당시 재학생이던 송지은씨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문제적 발언이 묵인되던 학교 분위기를 바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수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이 잘못인지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선생님의 발언이 잘못된 게 맞는지 헷갈려하는 학생들도 있었거든요. 교사들도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당시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가 있었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중앙여고 관계자는 “당시 일을 여쭤보시면 지금 말씀드릴 게 별로 없다. 당시 지침으로 전수조사가 필요했다면 분명 했을 것이다”라며 명확한 답변을 거부했다.

피해 사례 전수조사가 스쿨 미투 사건을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교육청이 나서서 전수조사를 실시했음에도 법적 처벌에서 한계를 보인 사건도 있었다. 대표적인 스쿨 미투로 꼽히는 용화여자고등학교 사례다. 2018년 4월,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한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는 성폭력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응답자 96명 중 41명이 성추행 및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설문조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 날인 2018년 4월6일, 재학생들은 학교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피해자들과 함께한다는 뜻의 ‘#WITH YOU’ 등의 문구였다. 포스트잇을 활용한 용화여고 재학생들의 ‘창문 미투’는 스쿨 미투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5월27일 ‘조희연 교육감 등 직무유기 형사고발 및 스쿨 미투 정보공개 2차 행정소송 기자회견’이 열렸다.ⓒ연합뉴스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사건인 만큼 용화여고 스쿨 미투의 후속 조치들은 빠르게 진행됐다. 재학생들이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인 2018년 4월6일, 교육청은 용화여고 재학생을 대상으로 성폭력 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그해 8월, 용화여고 교원징계위원회는 학생 대상 성폭력에 연루된 교사 18명에게 징계를 내렸다(교사 한 명은 ‘견책’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승소해 징계가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회적 파장과 달리, 용화여고 가해 교사 중 법적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자신의 피해를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 증언하겠다고 나선 재학생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수조사를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던 재학생들마저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데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노원 스쿨 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의 최경숙 전 집행위원장은 여러 단체들의 지지가 피해 학생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점을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직접 만나보면 피해자들은 대개 ‘자신이 남의 인생을 못되게 하는 것 아닌가’ 죄책감을 가져요. 그래서 본인이 신고를 했지만 계속 망설이더라고요. 그럴 때 필요한 게 주변의 지원이에요. ‘당신이 가해자의 인생을 망치는 게 아니라, 가해자들이 본인의 명예를 스스로 훼손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해주면 그제야 좀 편안해하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이제 막 기초 자료가 공개된 것”

유일하게 형사처벌이 이뤄진 가해 교사 B씨의 경우도 지지 단체의 조력이 없었다면 법정까지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2018년 12월7일,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B씨의 강제추행 사건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피해 당사자이자 ‘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 위원회’의 일원으로 용화여고 스쿨 미투를 이끈 강한나씨(가명·27)는 당시 상황을 ‘절망적’이었다고 표현한다. “법적으로 제대로 처리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제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어요. 미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늘 저희를 의심하기도 했고요. 그때 시민모임 분들이 저희 의견을 물어보시고, 재수사 요청을 해주셨어요.” 결국 검찰은 재수사를 결정했고, 지난해 9월30일 대법원은 B씨에게 징역 1년6개월 형을 확정했다. 피해자들에게 B씨가 범행을 저지른 지 꼬박 10년 만이었다.

지난 5월31일,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스쿨 미투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통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받은 ‘2018~2020 스쿨 미투 처리 현황’을 공개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이 자료는 많은 부분이 빈칸으로 남아 있다. 심지어 서울시교육청은 두 학교 가해 교사들의 수사·재판 진행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A씨에 대한 사법절차는 ‘기소/관련 정보 없음’으로, B씨에 대한 사법절차는 ‘수사 개시’로만 기록되어 있었다. 박소현·송지은·최경숙·강한나씨가 지난 4년간 겪은 질곡은 이 자료에 충분히 담기지 못했다. 정치하는 엄마들 김정덕 활동가는 “스쿨 미투 사후 처리 과정을 평가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드디어 공개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스쿨 미투가 제기된 학교는 총 94곳이었다. ‘처리 현황’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가 되짚어봐야 할 94개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다.

 

🟣[시사인/기자 주하은] 기사 전문 보기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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