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학원 뺑뺑이, 조부모, 돌봄교실…돌봄 테트리스는 끝날 수 있을까
“전국민의 요구가 분명한 돌봄·요양·교육·고용·건강 분야의 서비스 복지를 민간 주도로 고도화하겠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지난해 9월 윤석열 정부 복지 서비스 정책 방향에 관한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수석은 이후 국회에서 ‘민영화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돌봄과 요양 등의 분야를 민간 주도로 재편하겠다는 대통령실 발표는 복지 서비스 공공성 후퇴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돌봄과 요양은 이미 상당 부분 민간 시장에 의존해 굴러가고 있다. 부모들이 믿고 맡길만한 공공돌봄이 부족해 초등아동 상당수가 방과 후 ‘학원 뺑뺑이’를 돌며 사교육 돌봄을 받는 풍경은 익숙해진지 오래다. 노인돌봄은 더 심하다. 노인돌봄의 99%가 민간 요양원 등 시장에 맡겨져 있다. 안 수석의 발언을 계기로 초등돌봄과 노인돌봄 현황과 공공돌봄 확대 방안을 2회에 나눠 점검했다.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달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 주변 도로에서 어린이들이 학원버스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문재원 기자
‘오후 2시 태권도, 3시 수학, 4시 영어, 수요일 저녁 수영, 금요일 오후 미술….’
김은정씨가 초등학교 3학년 자녀의 스케줄을 짜는 모습은 마치 빈틈 없이 블록을 쌓는 것이 목표인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것 같다. 게임의 목표는 자신의 퇴근 전까지 아이의 하교 후 일정을 최대한 빈틈없이 채워넣는 것. 스케줄의 빈틈은 아이에게 돌봄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뜻이고, 워킹맘인 그는 이 시간을 자신의 부모에게 의지해야 한다. 80대 고령의 부모에게 풀타임으로 아이의 돌봄을 맡기기 어려운 그는 할 수 없이 ‘학원’을 선택했다.
그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2020년에 1년 간 안식년을 가졌다. 코로나19가 시작되던 해였다. “당시엔 제가 돌봄을 할 수 있었고, 코로나도 워낙 극심했기 때문에 태권도장 정도만 보냈어요.” 코로나는 아이가 2학년이 됐을 때도 끝나지 않았다. 그가 안식년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면서 본격적인 ‘돌봄 테트리스’가 시작됐다.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은 시기와 아이의 입학 시기, 돌봄이 필요한 시기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사교육 시장을 찾게 됐다. “코로나 때 학교는 문을 닫았잖아요. 그 시간을 메꿔주고, 또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사교육 시장이었어요. 또 아이가 2,3학년쯤 되면 보육 뿐 아니라 교육도 필요한 시기인데, 제가 원하는 피드백을 주면서 보육과 교육을 해 주는 공적 서비스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학원가 계단에 영어, 수학 학원 홍보 스티커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학원 돌봄’은 싸지 않다. 수학과 영어가 각각 20만원, 수영 15만원, 태권도 14만원, 미술 7만원. 월 76만원이 아이 사교육비다. 최근까지 보냈던 피아노 14만원을 더하면 월 90만원이 학원비로 쓰였다. 학원비는 방학이면 더 늘어난다. 학교에 가지 않아 생기는 돌봄의 빈틈을 학원이 ‘특강’으로 메워주기 때문이다. “최근 물가가 오르면서 학원비도 조금씩 올랐어요. 학원당 오른 돈을 합치면 학원 한 곳 비용이 되거든요. 피아노를 뺀 건 아이가 피곤해 하기도 했지만, 비용 부담도 있었어요.” 학원비라는 경제적 무게,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의 무게는 점점 쌓여간다.
이 테트리스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겉보기엔 안정적 돌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지속가능성은 잘 모르겠어요. 부모님 건강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사적 돌봄은 무너지는 거고, 제 직장에 변동이 있거나 경제적 위기가 닥치면 (학원은) 끊어야 하잖아요. 지속가능한 돌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학원 간판이 가득한 서울 목동의 거리. 문재원 기자
많은 학부모들, 특히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돌봄 장벽을 맞닥뜨린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하교 시간이 어린이집 하원 시간보다 훨씬 빨라, 더 많은 시간의 돌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력단절도 이 시기에 많이 발생한다. 현재 초등학생을 위한 공공돌봄 서비스는 초등돌봄교실(교육부)과 다함께 돌봄센터, 학교 밖 돌봄터, 지역아동센터(이상 보건복지부),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여성가족부) 등이 있다. 방과후프로그램은 초등돌봄교실과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사실상 돌봄 목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 공공돌봄 중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초등돌봄교실은 30만5218명(2022년 4월 기준)이 이용 중인데, 이용 신청을 했지만 ‘탈락’한 대기자만 1만5108명에 달한다. 다함께 돌봄센터(2만명), 학교 밖 돌봄터(1400명), 지역아동센터(12만명) 이용자 수를 다 합쳐도 초등돌봄교실의 절반 수준이고, 인지도도 낮다. 공공돌봄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상황에서 학부모들은 조부모 등 가족에게 의지하거나, 여러 학원을 보내는 식으로 고군분투하며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초등돌봄은 정말 이렇게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중구형 돌봄’의 성과와 한계
서울 중구는 2019년 이례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돌봄교실을 구청 직영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자체가 돌봄교실 직접 운영에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직영 전환 후 돌봄교실 운영시간은 기존 오후 5시에서 8시까지로 늘어났고, 한 교실에 돌봄전담사가 2명 있는 ‘1교실 2교사제’도 실시됐다. 비용은 전액 무료. 전환 3년 만인 지난해 초 실시된 학부모 조사에서 ‘99.4% 만족’이라는 경이로운 결과가 나왔다.
이미지 크게 보기 서울 중구청에서 운영하는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인 권모씨는 이 돌봄교실에 들어가기 위해 서대문구에서 중구로 이사를 왔다. “저흰 양가 부모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아이 학교를 어디로 보낼 지 알아보다 중구형 돌봄을 접했어요. 돌봄 시설이 잘 돼 있고, 퇴근할 때까지 봐주고, 중간에 학원도 갈 수 있고, 코로나 시기인데 밥도 주고 간식도 준다는 거예요. 진짜 급하게 이사를 왔어요.” 강현미씨는 직영 전과 후의 돌봄교실을 모두 이용해 봤다. 직영 후 하루 1500~2000원씩 내던 간식비, 방학 중 식대 4000~5000원, 과목 당 2~3만원의 프로그램비 부담이 사라졌다. “전에는 오후 4시까지 돌봄시간이어도 그 전에 병원 예약이라도 있으면 데리고 나와서 다시 못 들어갔어요. 그런데 전환 뒤에는 선생님이 두 분 계시니, 한 선생님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다른 선생님은 교문까지 바래다 주시는 게 가능해졌죠.” 김동미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맞닥뜨린 돌봄 문제로 퇴사 후 프리랜서가 됐다. 직영 돌봄교실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였을 때부터 이용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어린이집처럼 아이가 방과 후에 케어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나라에서 ‘아이돌봄 서비스’ 같은 것을 하지만 오후에 학교 마치는 시간에 딱 몇시간 봐주고 하는 분들을 찾기가 힘들고, 매칭도 잘 안돼요. 그래서 결국엔 회사를 그만뒀는데, 돌봄이 직영으로 바뀌면서 제가 대학원에 가서 ‘커리어 업’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서울 중구의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중구형 돌봄’은 시행 첫 해 행정안전부 주관 지자체 우수시책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2021년 12월에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주관 대한민국 정책대상에서도 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학부모가 만족하고, 외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 정책은 최근 큰 갈등을 겪었다. 중구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더 이상 직영으로 돌봄교실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했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중구가 들인 182억원의 돌봄 예산은 교육청이 학교에 주는 예산의 5배”라고 했다. 구청 직영이 아니었다면 중구 소재 학교들이 돌봄교실 운영에 관해 서울시교육청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훨씬 많은 돈이 투입됐다는 것이다. 중구청은 학교 안 돌봄교실은 교육청에 이관하고, 학교 밖 돌봄교실은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되 구가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지방선거로 구청장이 바뀐 뒤 나온 방침이었다.
서울 중구 학부모들이 중구의 직영 돌봄을 유지해달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구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 제공
학부모들은 반발했다. 권모씨는 “사실 직영 돌봄이 아니었다면 이 지역으로 이사를 안 왔을 것 같다. 여기는 학원도 없다. 모든 학원이 다 셔틀을 타고 다녀야 될 정도로 거리가 멀다. 여기가 아니었다면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 되니까 마포구 같은 학원이 많은 곳으로 이사 갔을 것”이라고 했다. 강현미씨는 “단체장이 바뀌었다고 정책 방향이 확 뒤집어져 버리니 안타깝다”고 했다.
반발한 건 학부모 뿐만이 아니다. 중구는 직영 전환 후 돌봄전담사들을 중구청 산하 중구시설관리공단 직원으로 채용하고 안정적 처우 보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운영 주체가 바뀌면 돌봄사들의 고용은 불안해진다. 박지혜 동화센터장은 2021년 2년 계약직으로 채용돼 오는 3월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었는데 지난해 9월 중구의 업무이관 및 민간위탁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돌봄사들과 함께 노조에 가입하고 고용보장 등 시위를 이어간 끝에 3개월여 만인 지난달 정규직 전환 평가를 실시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평가 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돼도, 지자체 직영 돌봄이 중단되면 고용은 다시 불안해진다. 박 센터장은 “외부로 위탁을 주면 직영 돌봄사업이 없어지는 것이어서, 저희 고용도 보장되는 건 아니라고 들었다”고 했다.
김길성 중구청장이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 만나 돌봄 예산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중구청 유튜브 화면 갈무리.
중구의 돌봄 갈등은 지난해 말 김길성 중구청장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만나 돌봄예산 지원을 약속받고, 당분간 직영 돌봄교실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임시봉합됐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이 중구에 예산을 지원하려면 관련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상황은 중구가 직영 돌봄을 처음 시작한 2019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2019년에도 중구는 교육청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적 근거가 언제 마련될지, 이후 얼만큼의 예산이 지원될지도 알 수 없다. 1년 뒤에도 직영이 계속될 수 있을지 미지수인 것이다.
중구가 직영 돌봄을 시도한 이유는 저출생에 따른 인구 유입 감소와 동시에 초등돌봄의 수요는 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중구형 돌봄’은 안팎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예산 등 시스템 확립에 실패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초등 공공돌봄 주체는 누구?…풀지 못한 갈등
중구의 사례는 초등돌봄 업무 주체를 지자체와 교육청 중 어디가 맡아야 하는가의 문제와도 연관돼 있다. 이 문제는 이해 당사자 별로 입장이 첨예하게 나뉜다.
‘지자체 직영’의 긍정적 경험이 있는 중구의 학부모들은 돌봄 업무가 지자체 중심으로 운영되길 원하지만, 대체로 학부모 단체들은 지자체보다 교육청이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라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에서 돌봄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자체보다는 교육청이 중심이 되는게 좋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자체가 관련 업무를 맡을 경우 ‘민간위탁’ 방식으로 돌봄교실을 운영할 수밖에 없고, 돌봄의 질이 하락할 것이라고 본다.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중구처럼) 지자체가 직접 운영을 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지자체가 하면 결국 종교단체 등으로 위탁을 하게 된다.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도 말만 국·공립이지, 개인 위탁이 50%가 넘는다. 결국은 사립 어린이집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계속 그런 형태로 돌봄 사업이 가고 있기 때문에, 초등돌봄도 지자체로 가면 결국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민영화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초등 돌봄전담사들이 돌봄교실 민영화 저지와 8시간 전일제 전환 등 근무여건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직인 돌봄사들도 이에 동조한다. 돌봄사들은 지자체가 민간위탁으로 돌봄교실을 운영할 경우, 돌봄의 질 하락 뿐 아니라 노동환경이 더욱 불안해질 것을 우려한다. 김철민씨(가명)는 2018년 지자체가 민간위탁한 돌봄교실에서 일하다 2년 계약 중 1년 밖에 채우지 못하고 그만둬야 했던 경험이 있다. “문제가 많았어요. 일단 지자체에서 돌봄예산을 위탁업체에 줘요. 업체는 이윤을 남겨야 되잖아요. 아이들에게 줄 학용품을 구매할 때 절약을 해요. 사인펜, 색종이 같은 걸 업체에서 구매해서 저희에게 주는데, 턱없이 부족해요. 아이들이 쓰다보면 잃어버리기도 하고, 닳아서 재구매를 해야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아요. 저는 교회에서 쓰다 남은 것들을 모으고, 동네 카페를 통해서 색연필 나눔을 받아서 애들에게 갖다줬어요.” 김씨가 일했던 곳은 지자체 위탁이긴 하지만 공간 자체는 학교에 있었다. “청소기가 필요해서 업체에 이야기하면, ‘그건 소모품이 아닌 비품이니 학교에다 요청을 하라’하고, 학교는 ‘무슨 소리냐’고 하는 식이에요. 핑퐁하다가 결국은 저희 집 청소기를 갖고 가서 청소하고 그만뒀어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교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교사들은 돌봄과 교육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경계한다. 돌봄교실 업무와 정규교육 업무가 뒤섞이면, 결과적으로 교육이 부실해질 수 있디는 것이다. 교사들이 보기에 그런 상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돌봄 겸용 교실이 대표적이다. 유휴 공간이 없는 학교는 돌봄 전용 교실을 따로 마련하지 못해 일반 교실을 돌봄교실로 겸용하고 있다. 이 경우 선생님들은 방과 후 다음 수업준비나 학생상담 등에 쓰일 업무 공간을 잃고, 돌봄사들은 돌봄사들대로 힘들다. 김희성 서울 전곡초등학교 교사는 “교육 공간이 많이 침해되고 있다. 과밀학급의 경우 특히 심하다. 겸용 교실은 아이들에게 교육의 목적으로도, 돌봄의 목적으로도 적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행정업무 부담도 호소한다. 돌봄교실을 설치·운영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행정처리가 필요하다. 공간 구성, 물품 및 간식 구매, 돌봄사 채용 등이 모두 행정의 영역이다. 노시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정책실장은 학교에 따라 돌봄사가 이 일을 처리하는 곳도 있지만, 교사들도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고 주장했다. 노 정책실장은 “돌봄사들 근무시간에 따라 월급을 주는데, 그 근무시간 계산하는 것도 교사들의 일이다. 이런 일은 학교 행정실이 해야되는 것 아니냐고 해도, 무슨 일이든 다 교사들에게 시킨다”라고 했다. 김철민 돌봄사는 “과거엔 교사 중 일부가 그런 일을 했던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돌봄사가 행정업무를 전담한다. 돌봄프로그램 강사 채용 및 월급까지도 우리가 준다”고 반박했다.
이런 상황은 초등돌봄 법제화가 계속 미뤄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초등돌봄교실은 법이 아닌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바탕으로 방과후학교 또는 방학 중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으며,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는 교육부 고시를 근거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장의 재량을 폭넓게 허용하다보니 간식 제공, 운영 시간 등이 학교마다 달라진다. 2020년 교육부는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 관련 조항을 초·중등교육법에 신설하는 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조항이 신설되면 초등돌봄 업무의 무게 중심은 교육부로 오게 된다. 교원단체는 ‘학교는 돌봄이 아닌 교육을 하는 공간’이라며 반대했고, 교육부는 반발에 부딪쳐 법안을 철회했다. 같은 해 발의된 온종일돌봄특별법안이 있다. 이 법안은 ‘범정부 차원에서 통합 돌봄체계를 구축·관리하고, 지자체가 주체가 돼 지역의 특성과 여건에 맞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부보다 지자체가 중심이 되는 방안이다. 이번엔 학부모들과 돌봄사들이 반대했고, 현재는 추진 동력을 거의 잃은 상태다.
돌봄 수요 낮추는 ‘노동시간 줄이기’ 병행돼야
빈 교실 풍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58.68%.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국가가 자녀 돌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비율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초등아동 대상 공적돌봄서비스 공급체계 분석과 정책과제’ 보고서는 이에 대해 “맞벌이 여부와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자녀 돌봄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사회가 나눠야 할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부모들은 국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학교·지역사회의 돌봄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농어촌은 교실이 남아도니 돌봄 교실을 만들 수 있는데 수요는 없고, 도시는 교실이 모자란 반면 돌봄 수요는 많다. 학교는 초등돌봄교실을 무작정 확대할 수 없으니 방과후돌봄 공백이 생긴다. 대표적인 미스매치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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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멕시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다음으로 길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 운영 시간을 오후 8시까지로 늘리는 ‘늘봄학교(전일제 학교)’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들은 학년을 막론하고 지금보다 늦게까지 학교에 머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공간 확보와 인력 증원 등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업무 주체를 둘러싼 갈등도 그대로 남아있다.
늘봄학교는 공적돌봄의 선택권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더 늦은 시간까지 누군가가 아이를 돌봐주는 방법만으로는 지금의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오후 8시까지 아이들이 외부의 돌봄이 필요하도록 만드는 배경에는 한국의 긴 노동시간이 있다. 아동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밤 8시까지 학교에 머무는 것이 좋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긴 노동시간과 여성 경력단절 등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학부모들은 당장 조금이라도 더 길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안전한 돌봄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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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공공성 확보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 모여 돌봄사회로의 대전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따라서 전문가들은 돌봄 서비스 확대는 노동시간 줄이기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호자가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아래미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들이 부모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즉 ‘노동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하는 부분은 빠진 채 학교에서 밤 8시까지 봐주겠다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영 교수는 “돌봄은 결국 노동시간과 연관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노동시간이 길면, 학교에서 돌봐주는 시간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면서 “‘국가에서 아이 봐줄테니 나가서 일하라’, 이런 구조로 가는게 적절한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돌봄도 가능한 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플랫폼 노동 등 다양한 노동 형태의 등장으로 생기는 불안정한 노동 구조에 대한 개선도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돌봄은 돌봄 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전반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을 필요로 한다. 김형용 동국대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노동시간 줄이기 등 노동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재편은 반드시 필요하고, 단기적으로는 당장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돌봄은 모두의 일, 우리 삶의 일”이라고 말했다.
📰 [경향신문 | 기자 김한솔] 기사 본문 보기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103142200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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