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급식·돌봄’ 학교 비정규직, 사상 초유의 신학기 총파업 “교육부 책임”
“누군가의 폐를 망가뜨리며 먹는 급식인지 차마 알지 못했다” 고개 숙인 학부모
급식과 돌봄 업무에 종사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1일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폐암 환자가 속출하는 죽음의 급식실, 충분한 준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는 돌봄정책, 차별적인 임금체계 등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면서다. 새 학기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이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과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조 등이 모인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이날 전국에서 일제히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교육부 및 17개 시도교육청과 지난해 9월부터 집단 임금교섭을 진행 중인데 새 학기가 시작된 3월이 다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도 임금교섭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보통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타결이 됐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작년 11월에 이어 처음으로 새 학기가 시작된 3월에 총파업을 다시 벌이게 된 이유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종별로 1유형, 2유형, 유형 외 등으로 구분하고, 서로 다른 임금을 지급한다. 문제는 이러한 임금체계와 수준을 나누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여기에 일부 직종은 별도의 임금 기준이 적용되면서 직종 간·유형 간 기본급 차이가 발생하고, 기본급 외 수당은 지역별·직종별로 천차만별이다. 이에 연대회의는 단일 기본급 체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지만, 교육당국은 묵묵부답이다.
총파업에 나선 건 임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급식 노동자들은 폐암을 조장하는 노동환경 개선과 적정인력 충원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돌봄 노동자들은 인력 확충도 없이 ‘늘봄학교’ 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 총파업 규모는 작년 11월과 마찬가지로 전국에서 2만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교육공무직의 약 13%에 달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전국에 있는 유·초·중·고교 가운데 상당수의 급식과 돌봄이 중단됐다. 교육당국은 식단을 간소화하거나 도시락을 지참하게 하고, 빵이나 우유 등의 대체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또 돌봄과 특수교육 분야에서는 학교 내 교직원을 활용했다.
전국 곳곳에서 총파업대회 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도대체 얼마나 더 견뎌야 하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날 각 지역 교육청 앞에서 총파업 대회를 열고 교육당국의 책임을 요구했다. 수도권의 경우 학비노조는 숭례문 앞에서,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서울교육청 앞에서 각각 총파업대회를 열었다.
특히 급식 노동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학비노조는 수천 명의 조합원들이 4차로를 가득 메우고 용산 대통령실부터 숭례문 앞까지 행진하며 대국민 호소전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폐암으로 사망한 동료 노동자들의 영정을 안고서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급실시에서 13년째 근무하다가 작년 8월 폐암 판정을 받고 현재 “스스로 회복 중”이라는 학비노조의 한 조합원은 “2시간 동안 23명이 1200인분을 만들어야 하는 학교 급식실의 인력을 관공서와 기업 배치 기준에 맞춰서 개선해달라”며 “조리실 시설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안전한 현장으로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박미향 학비노조 위원장은 총파업대회에서 “일주일 사이에 또 한 명의 급식 노동자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며 “오로지 우리 아이들의 따뜻한 밥 한 끼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또한 박 위원장은 “전국의 모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똑같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동일한 임금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집단 교섭을 통해서 요청했다”며 “하지만 어느 교육청도, 교육부도, 정부도 이 문제를 책임지고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박 위원장은 “이 투쟁을 준비하는데 얼마 전 어느 학부모 한 분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격려의 말씀을 보내주셨다. 여러분이 안전해야 아이들이 안전하다, 여러분들이 건강해야 우리 아이들이 건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투쟁과 요구는 오늘의 이 총파업은 정당하다, 지지하겠다, 힘내라고 하셨다”며 “우리는 오늘 총파업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투쟁으로 기필코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최진선 학비노조 경기지부장도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30% 이상이 폐에 문제가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폐암이 의심된다는 동료들이 300명이 넘어섰다. 날마다 들려오는 폐암 확진 소식은 점점 더 우리의 마음을 움추리게 한다”며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가. 우리는 살고 싶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 그래서 밝은 얼굴과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마주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또한 “정부는 아이들의 돌봄 서비스를 늘리겠다고 한다. 시간도 늘리고 밥도 주겠다고 한다.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정작 일을 하는 사람들은 늘리지 않고 일한 만큼의 보상도 해줄 생각이 없다. 정부는 자신들의 책임은 전혀 지지 않고 우리 비정규직 돌봄 선생님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며 “우리는 더 이상강요된 희생에 굴복할 수 없다. 아이들의 더 행복한 학교 생활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고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윤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역시 총파업대회에서 “학생을 위한 교육복지라는 건 좋은 방향이다. 학교의 모든 정책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야 말로 교육복지의 주체로서 교육복지의 강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런 교육복지 사업들이 어떻게 이뤄져 왔는가. 우리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서 얼기설기 만들어온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교육복지 현실이다. 그렇게 착취를 견뎌온 우리 노동자들이 이제는 더 못 버티고 쓰러지고 있는 현실이다. 학교 노동자들의 위험은, 결국 학생들까지 위험하게 만든다”고 성토했다.
또한 이 본부장은 “우리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가 이야기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취약계층이다. 차별받는 당사자다. 심지어 우리 교육공무직 안에서도 지역차별과 직종차별 등을 조장하며 이중삼중 차별을 만들고 있다”며 “그런데 그 차별을 누가 조장해왔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차별받는 현실을 외면한 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이야기한들, 결국엔 제 눈의 들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을 없애려는 것이 아닌, 그저 노동자들을 갈라치고 분열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하지만 우리를 분열시키려 할수록, 우리는 더 단단하게 단결할 것”이라며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차별을 꺾고, 우리를 옥죄는 부당한 처우와 저임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단결하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의 폐를 망가뜨리며 먹는 급식인지 차마 알지 못했다”
학교 비정규직 총파업에 고개 숙인 학부모
각계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이날 직접 나서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양육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나온 박민아 정치하는 엄마들 대표의 발언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로터 큰 호응을 얻었다.
초등생 두 자녀가 있다는 박 대표는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학교 급식에 대해서 아이들이 맛은 있는지, 혹은 충분한 양을 먹는지, 좋은 식재료를 쓰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며 “학교에 급식 모니터링 제도가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식자재 관리는 제대로 되어 있는지, 급식실에 청결함은 어느 정도인지 그런 부분만 묻고 있지 급식실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어느 부분도 차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급식 모니터링 활동에 참여해) 제가 매우 좋다고 체크했던 그 반짝반짝 빛나는 청결함이 급식 노동자들의 건강과 맞바꾼 청결이었고, 아이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좋아한다고 반겼던 그 바삭한 튀김류와 볶음밥들이 급식 노동자들의 폐와 맞바꾼 급식이었다는 것에 부끄러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며 “누군가의 폐를 망가뜨리며 먹는 급식인지 차마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또한 박 대표는 “코로나 때 긴급 돌봄으로 학교를 지킨 이들 누구는가. 바로 돌봄 전담사들이었습니다. 그분들 없었으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있지도 못한다”며 “지금 학교를 지켰던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지금 왜 학교에 있어야 될 이 분들이 길거리로 나와 투쟁을 하게 만드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급식 노동자들을 비롯해 학교 안에 있는 모두가 아이들과 양육자들에게는 선생님이다. 그런 선생님들의 건강과 영혼을 갉아먹으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는 없다”며 교육당국이 책임있는 역할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외 직업병을 전문으로 다루는 직업환경의학 의사인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최서현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위원장 등이 각계를 대표해 연대의 뜻을 전했다.
한편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대정부 투쟁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안했다.
양 위원장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비정규직 철폐, 임금 차별, 급식실 안전의 문제 어느 것 하나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다”며 “윤석열 정권은 노동개악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비정규직 양산 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의 차별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곧 윤석열 정부를 향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며 “노동개혁을 막아내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불평등 세상을 끝장 내고 노동자가 존귀하게 대접받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차별 없는 학교 현장을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내자”고 당부했다.
연대에 나선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하겠다고 하니까 ‘누가 급식실에서 일하라고 했냐’, ‘누가 비정규직 하라고 했냐’고 하더라. 이건 틀린 말이다”라며 “아이들이 매일 먹는 밥을 짓고 아이들을 돌보는 학교를 비정규직으로 운영하는 법, 그리고 그 법을 만든 정치가 문제”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면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는 나쁜 정치를 우리가 함께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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