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저출생, 많은 돈 쓰고도 왜 효과 없나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이란 숫자가 발표되자마자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논의가 갑자기 넘쳐나기 시작했다. 0.78이란 숫자가 사상 최저치인 데다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수치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압도적 최하위일 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역사를 봐도 전쟁이나 대기근 정도의 환경에서 나오는 합계출산율보다 훨씬 낮다. 출생아 수를 보면 더욱 극적이다. 2002년 한 해 출생아 수 50만명대가 깨진 뒤 한동안 40만명대를 유지해왔다. 통계청 등 주요 기관은 한국의 저출생 현상이 심각하긴 하지만, 40만명대를 상당 기간 유지할 것이라고, 이런 상황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2017년 35만7771명을 기록하며 처음 40만명대가 깨진 이후 2020년 27만2400명으로 3년 만에 30만명대마저 무너졌다. 코로나19 영향일까. 임신 기간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영향은 크지 않다. 그리고 2022년엔 24만9000여명을 기록해 역대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다. 1958년생부터 1970년대생 초까지 매년 100만명 정도가 태어나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50년 만에 출생아 수가 4분의 1토막이 나고,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세계사적으로도 유일한 사례다.
그렇다면 이런 이례적인 숫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 좀 다른 얘기부터 해보겠다. 코끼리는 동물원에서 새끼를 잘 낳지 않는다. 코끼리만큼은 아니지만, 오랑우탄이나 고래, 북극곰 등도 동물원에서 임신과 출산을 잘하지 않는다. 이들이 인간처럼 피임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왜 그럴까. 과학적인 원인 규명은 쉽지 않겠지만, 자연의 원리만 봐도 당연한 현상이다. 동물원이 이들에게 새끼를 낳고 기를 만한 좋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겉으론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성취(?)에 취해 있지만, 젊은 세대들에겐 대한민국 사회가 아이를 낳고 키울 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저출생은 거의 모든 문제의 결과란 의미다. 따라서 저출생 현상은 한두 가지의 원인을 지목하고, 그걸 개선하는 방식으론 결코 풀 수 없다. 누군가를 탓하거나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는 ‘인간을 수단화하는 접근’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요원해질 뿐이다. 복합적인 원인이 중첩돼 있기에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 및 행복과 관련이 있기에 세심한 접근이 중요한 문제다.
이 연재에서 ‘저출생’을 두 차례에 걸쳐 짚고자 한다. 우선 저출생과 관련된 ‘담론의 문제’부터 다루고, 그다음 연재에서 ‘돌봄의 문제’를 주제로 삼고자 한다. 이 글에서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현상’을 ‘저출산’이 아닌 ‘저출생’이란 용어로 쓴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이 현상은 ‘낳는 주체’보다는 ‘적게 태어나는 현상’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출산’이란 용어가 여성의 산전·산후 건강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여성의 권익에 더 부합한다고 보지만, 필자는 오히려 저출산이란 용어에선 출산의 주체가 먼저 떠오르고, 이는 저출생 담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저출생은 특정 성별, 세대의 주체적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저출생 담론이 저출생의 원인이다 필자는 이미 학제 개편을 다룬 지난 연재에서 ‘저출생의 해법이 저출생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정책과 딜레마 ⑧ ‘학제 개편’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려면). 무슨 의미냐 하면 해법에 내포된 인식이 저출생 현상을 만든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박순애 전 교육부총리는 학제 개편을 추진한 배경으로 “일찍 입학해 일찍 나와 결혼 연령도 빨라지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저출생 대응 효과)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사이자 국민의힘 출신의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당시 대놓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소”를 위해 “취학연령 하향 조정 문제를 논의하자”고 밝혔다. 다시 말해 ‘입학연령을 앞당길 테니 빨리 졸업하고 결혼해 애 낳으라’는 의미였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맞춤형 돌봄 역시 추진 과정에서 주요 주체들이 저열한 인식을 여과없이 드러낸 바 있다. 정부가 2016년에 도입한 맞춤형 돌봄이란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맞춤반은 6시간, 종일반은 12시간으로 개편하는 정책으로 전업주부에게 보육시설 이용시간을 제한해서 되도록 영유아를 가정에서 키우도록 하자는 취지의 정책이었다. 정부는 전업주부가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보육기관에 보낸다고 생각한 것일까. 물론 당시의 쟁점은 전업주부에 대한 차별이 아니었다. 들고일어난 쪽은 어린이집들이었다. 정부가 맞춤형 보육을 도입하면서 맞춤반의 보육비를 적게 책정했고, 결과적으로 어린이집이 받는 지원금이 줄어들었다. 어린이집들은 지원금의 축소에 항의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 취직하지 않은(혹은 못 한) 양육자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심정은 어땠을까. 내 아이의 꼬리표엔 ‘적은 보육비’가 달린 셈이라 어린이집에서 미움받지 않을지 노심초사했던 게 당시 맘카페의 분위기였다.
최근에도 ‘해법이 원인’인 사례는 넘쳐난다. 조정훈 시대전환 국회의원이 3월 21일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조 의원은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 시급은 9620원, 월 210만원이다. 이런 비용으로는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우리 청년들이 가사도우미를 쓸 수 없다”며 “제가 발의한 법안이 시행된다면 싱가포르와 같이 월 100만원에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사용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는 인권과 노동권의 차원에서도 큰 문제가 있는 시각이면서 가사와 돌봄 노동에 대한 폄하를 부추기는 언행이기도 하다. 이런 돌봄 노동에 대한 폄하는 노동시장에서 가사와 돌봄 관련 직종의 처우를 악화시키고, 결국 성별 임금 격차와 젠더 평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젠더 평등과 출산율 필자가 소속된 민간연구소 랩2050은 지난 2년간 국내총생산(GDP)의 대안지표인 참성장지표(GPI·Genuine Progress Index)를 만드는 연구를 수행했다(관련 내용 www.gpi-lab2050.org). GPI엔 GDP엔 산정되지 않는 돌봄과 가사노동, 여가의 가치, 교육과 자기계발의 가치, 기후와 환경의 변화까지 총 100여개 통계를 이용해 만든 지표가 담겼다. 그중 하나가 가사와 돌봄 노동의 가치다. 의외의 수치가 하나 나왔다. 한국의 가사와 돌봄 노동의 가치는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해왔지만, 2018년부터 급격하게 높아졌다. 이 기간에 가사와 돌봄 노동의 가치가 더 높게 평가받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GPI는 랩2050이 독자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바 있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사와 돌봄 노동의 가치 측정법을 국내에 적용한 것이다. 그 측정법은 가사와 돌봄 노동시간에 관련 직종의 평균임금률을 곱한 것인데, 한국의 경우 관련 직종의 평균임금이 낮아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돌봄 일자리의 대부분은 최저임금 일자리다. 이런 상황에 조 의원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돌봄에 적용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돌봄 직종의 처우도 다 같이 무너지게 된다.
최근 합계출산율 0.78 통계 발표 이후의 논의를 보면 ‘해법’보다 그 전 단계의 ‘저출생 담론’부터가 문제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그토록 많은 돈을 썼는데도 효과가 없다’이다. 이 논의가 조금 더 ‘책임론’으로 이어지면 ‘엉뚱한 곳에 돈을 썼다’부터 ‘돈을 받고도 애를 안 낳는다’까지 이어진다. 3월 13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의 칼럼엔 이런 문장이 있다. “출산장려금이 이렇게 적은데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는 2030세대의 질문을 받으면 과연 아이를 낳는 것인지, 낳아주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쯤 되면 저출생과 관련된 담론이 저출생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담론 중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 중의 하나는 저출생의 원인으로 ‘페미니즘’을 지목하는 것이다. 마침 그런 시각을 가진 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이래도 독보적 저출생 현상이 과연 우연일까. 젠더 평등은 초기엔 출산율을 일부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여성들의 가족형성과 자기실현을 돕는 일이어서 여러 선택지를 택할 권리를 보장하게 된다. 현실에선 젠더 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들의 합계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저출생 예산의 이름부터 바꾸자 저출생 예산이 잘못 쓰이고 있다는 지적은 꽤 오래됐다. 주된 지적은 과거에 예산이 주로 출산과 양육 지원에 집중했는데, 알고 보니 결혼한 사람들은 애를 그래도 낳고 있고, 결혼을 잘 안 하는 게 문제이니, 결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기억하기론 이런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준 연구는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2012년 발간한 ‘한국의 합계출산율 변화요인 분해: 혼인과 유배우 출산율 변화의 효과’란 논문이다. 논문의 핵심 내용은 결혼한 여성(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올라간 반면에 결혼한 여성의 비율(유배우 비율) 자체가 떨어졌기 때문에 합계출산율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정책적인 시사점으로 “현재까지 추진된 저출산 대책들은 출산 장려금, 보육 지원, 일과 가정생활 양립을 위한 근로조건 개선 등 주로 유배우 여성들의 출산을 장려하는 성격의 정책들”이라며 “이 연구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유배우 비율이 감소한 요인이 출산율의 결정요인과 무관하다면 현재의 저출산 정책만으로는 유배우 비율을 제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문제이니, 출산과 양육 지원 위주의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다.
2015년에 발표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까지 적용)이 기존의 출산·양육 중심의 지원을 생애주기별 지원으로 겉으로나마 ‘구조적 전환’을 한 것에 이 논문이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논문의 분석이 정확하고 정합성이 있느냐와는 별개로 ‘저출생 담론’엔 두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하나는 출산과 양육 지원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교수가 논문에서 “출산율 장려정책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 정책들의 효과가 제한적이란 핵심 주장이 강력한 나머지 이런 정책들이 비효율적이며 돈만 낭비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다른 부정적인 영향은 원인 간의 관계를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과연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과 결혼하기 힘든 환경이 서로 분리돼 있을까. 만일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이 그대로 유지되는데도 사람들이 결혼만 하면 아이를 낳을까.
직관적으로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인식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시사인과 한국리서치가 2월 10일부터 14일까지 만 18~49세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자녀는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인식에 대해 20대 여성은 10%, 30대 여성은 26.1%만 동의했다. 같은 나잇대 남성의 경우엔 각각 35.5%, 37.7%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자녀가 생기면 나의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인식에 20대 여성은 68.7%, 30대 여성은 57.5%가 동의했고, 반면 20~30대 남성은 37.3%, 35.1%만 동의했다. 바로 윗세대의 경험은 다음 세대의 중요한 참고자료였다.
사실 정부가 발표하는 ‘저출산 예산’은 잘못된 지표다. 올해 기준으로도 50조원이 넘는데, 이 예산에 포함된 사업 목록엔 아동학대 방지, 군 인력 개편 등 직접적 관련 없는 예산이 대부분이다. 국제 비교지표인 OECD 통계를 보자.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social expenditure) 가운데 아동수당, 육아휴직수당, 보육서비스 등이 담긴 아동가족(family) 항목의 비중은 2019년 기준 OECD 평균이 2.1%이고 한국은 1.4%다.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예산 규모인 셈이다.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해본다. 저출생 예산을 ‘저출생 직접 예산’과 ‘저출생 관계 예산’으로 나눠보면 어떨까. 실제로 ‘관계’ 예산이란 ‘관계가 별로 없는 예산’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직접 예산’이다. 숫자의 착시에서 벗어나 담론의 구조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무엇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예산’인지 가려내야 한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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