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현장] ‘퇴행의 1년’ 거부…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7주기 추모집회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7주기 추모 현장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싸우는 우리가 성차별 부순다’, ‘퇴행을 거슬러 페미가 바꾼다’
17일 저녁 서울지하철 강남역 9번 출구와 10번 출구 사이. 2016년 5월17일을 잊지 않은 120여명이 손팻말을 들고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7주기 추모 현장에 모였다.
34개의 여성단체,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의 공동주최로 열린 추모집회에서 박지아 서울여성회 부회장은 “현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얘기하며 대놓고 ‘여성’ 지우기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받고 목숨을 잃는 여성들이 있다”며 “거대한 백래시에 맞서 젠더 폭력을 끝장낼 연대의 힘을 모으자는 취지로 오늘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서울여성회는 지난 2021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5주기부터 매해 추모행동을 주최해왔다.
강남역 추모 집회에 참석해 포스트잇에 글자를 남긴 직장인 김소영(28·경기 과천)씨는 “7년이나 됐는데도 신당역 살인사건이나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 등 여전히 여성혐오 범죄가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것은 결국 범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연이은 여성 혐오 범죄를 보면서) 나는 운이 좋아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지만 나도 죽을 수 있었겠구나 싶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추모 행동 등에) 참여하고 이 기억을 잊지 않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3주기였던 2019년부터 강남역을 찾은 ㄱ(28·경기 수원)씨는 “처음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여기가 무서워서 오지 못했지만, (용기를 내) 3주기 집회부터 참여했다”며 “어릴 때부터 (위험하지 않게) 사람이 많은 곳에 다니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밤이었지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강남역에서 발생한 사건은 우리가 듣고 배워왔던 게 다 틀렸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추모집회에서는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경인지회 소속 몸짓패 ‘와신상담’의 공연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떼창 등으로 추모 집회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강남역 9번 출구 앞에서 ‘페미들은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는 팻말을 들고 1인 맞불집회를 연 남성이 마이크로 고성을 내기도 했지만 추모의 목소리를 덮지 못했다.
오은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신당역 젠더 살인사건, 인하대 강간 살인 사건 등 이 모든 사건들이 이 사회가 여성을 어떤 존재로 취급했는지 보여주고 있다”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눈앞의 부당함을 그냥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더 단단히 뭉칠 것’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딸아이를 낳았는데, 너무 미안하다”며 울컥이는 목소리로 연대발언을 이어갔다.
조혜원 추모기획 단원은 “세월호 참사 9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공적 애도의 쓸모’였다”며 “지난 1년이 우리에게 기억과 연대를 방해하려는 움직임이 거셌던 ‘퇴행의 시대’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많은 변화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뚜벅뚜벅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우연히 살아남았다”,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추모 포스트잇을 현장에서 공유하기도 했다.
윤연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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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922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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