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 정치하는엄마들 윤은미 활동가] 사라지는 소아응급실... '국가재난'이다
사라지는 소아응급실... '국가재난'이다
'주3일제' 소아응급실에서 내가 겪은 일... 응급의료법 제3조는 어디로 갔나
▲ 병원의 모습(자료사진). | |
ⓒ pixabay |
내가 사는 곳의 종합병원(대학병원)의 소아응급실이 '주3일제'를 시작했다. 매달 입·퇴원을 반복하는 둘째를 키우면서 3월쯤 소식을 들었다. 37개월이 되도록 유동식만 먹는 우리 둘째는 8.8kg다(37개월 여아 평균 체중 14.4kg, 소아청소년성장도표).
그런 둘째가 4월에도 아팠다. 저녁쯤 발열이 있어 다음날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볼 때는 이미 입원 처방이 나왔다. 소아과 원장님이 여기저기 전화도 걸고 문자도 남겼지만, 병상은 구하지 못했다. 응급실로 갔다. 그런데 주차장에서부터 평소와 달랐다. 일단 차 시동을 끄지 말고 비상 깜빡이를 켜둔 채로 들어가 소아응급실 출입 여부부터 확인하라는 것이다. 사태 파악이 안 된 나는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아이를 안고 꾸역꾸역 입원 짐을 끌어내렸다.
응급실 출입은 거절당했다. 아이는 헉헉거리며 눈을 감은 채 처져 있는데 '해열제를 줄 테니 돌아가라'고 했다. 주3일제 약국이 아니고, 응급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제야 낮에 소아과 원장님이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요즘 소아응급실 들어가기 힘들어요. 애 죽는다고 무조건 밀고 들어가야 지킬 수 있어요."
열 손가락 끝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정신 차리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탈수가 왔다고 이대로 돌아가면 죽는다고. 나이만 4살이지 돌쟁이보다 작다고 제발 들어가게 해 달라고 빌었지만, 열이 난 지 24시간이 안 돼서 안 된단다. 결국 우리 아이가 이 병원 등록 환자라는 마지막 말에 응급실 문이 겨우 열렸다. 막상 들어갔을 땐 두어 개 병상 외에 다 비어 있었지만 의아할 틈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에 동의해야 받을 수 있었던 진료
아이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오전 6시면 무조건 병원에서 나간다' '검사 결과 어떤 상태라도 입원은 안 된다'는 조건에 동의해야 진료를 해주겠다고 했다. "이게 뭔 소리지?" 생각할 틈도 없이 체구가 작은 우리 아이에게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간호사가 라인을 못 잡으면 수액을 못 맞을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신생아 때부터 라인을 못 잡은 적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수액을 맞아야 소생할 수 있는 아이를, 수액을 맞히기 위해 찾아온 응급실인데, 수액을 못 맞을 수도 있다는 조건에 동의하라니... 점점 늘어져 가는 아이를 안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조건에 모두 동의했다.
검사 결과, 아이는 염증 수치가 22.95였고 입원이 필수라고 했다. 입원실은 절대 못 준다면서 꼭 입원해야 한다는 종합병원, 기가 막혔다. 임종 전 노인의 염증 수치가 10대라는 걸, 20이 넘어가면 곧 온몸에 염증이 퍼져 패혈성 쇼크가 올 수 있는 긴박한 상태였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고 나는 눈물을 쏟았다.
곧 아이 하나가 낙상사고 후 구토를 한다며 응급실로 들어왔다. 나와 마찬가지로 '6시에 나간다' 'CT상 뇌출혈이 있어도 입원은 없다'는 조건부 진료가 이뤄졌다. 이게 내가 사는 현실이 맞나 아득해졌다. 무서워서 숨을 죽이고 내 아이를 더 꼭 껴안았다. 고개만 쳐들어도 아이와 함께 병원 밖으로 내쳐질 것만 같은 밤이었다.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해 죽어나가는 사회
▲ 응급실(자료사진). | |
ⓒ pexels |
아이 둘을 키우며 최선을 다했지만, 100% 막을 수 없는 돌발상황과 변수 속에서 의료시스템은 점점 무너지고 그저 운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내 마음을 병들게 했다.
둘째가 신생아중환자실을 거쳐 7개 과 협진을 돌며, 어떤 검사는 결과가 나오는 데만 10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 나는 백 번도 더 죽다 살았다. 난생처음 정신과도 가봤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할 거면 차라리 미쳐서 자식도 못 알아보게 해 달라고 빌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모두 내게 내려놓으라고 했다. 아이를 포기해야 내가 산다고 했지만, 나는 내가 죽어도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그냥 엄마였다.
아픈 아이들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해 죽어나가는 사회에서 나의 불안과 분노는 너무도 타당하지 않은가? 내가 미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매주 8만 원의 심리상담료가 아까워서 조기 종결을 해보려고, 한동안 빵긋거리며 예쁜 말만 해봤다.
그러다 지난 4월 응급실 사태를 겪고는, 내가 여기 앉아 상담받을 이유가 있느냐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한동안 대답을 못 하던 선생님은 '잘 대처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헤쳐 나가면 된다'라고 했다. 내가 뭘 잘했다는 걸까? 응급실에 들어가기 위해 빌고 애걸복걸한 것? 새벽 6시면 나가겠다고, 입원실은 넘보지 않겠다는 불합리한 조건에 순순히 동의한 것? 아이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없고, 사회적인 관용도 없는 이 땅에서 엄마는 노상 행복하기까지 하라니 나는 절대 못 할 짓이라고 했고, 상담 종결은 멀어져 버렸다.
응급의료법 제3조, 사라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아동병원에 있다. 남편은 출근 전 새벽에 병원에 들러 번호표를 뽑아서 병원 소화기 밑에 숨기고, 나는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병원에 와서 소화기를 들추고 번호표를 찾아 병상을 확보한다. 새벽 6시에 소아응급실에서 쫓겨난 그날도 아침 7시 반쯤 아동병원에 도착해 55번의 번호표를 뽑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6일 사망한 5세 아동에 대해 사망 장소가 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5곳의 응급실을 돌고 병원 밖으로 내쳐진 아동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한다. 지역에서 '뺑뺑이'를 돌다 결국 서울의 빅(BIG)3 소아응급실을 안내받고 몇 시간을 달려갔는데, 대기시간이 5~8시간이라는 현실 앞에 좌절했다는 사연들이 환아 보호자들의 커뮤니티에는 비일비재하다. '뺑뺑이 돌더라도 병원 밖에서 죽으면 뺑뺑이가 아니'라는 복지부의 망언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나는 같은 전쟁터에서 아직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현재 소아응급실은 2·3차 병원의 탄력적인 운영으로 겨우 유지되는 실정이다. 지역마다 요일별 '핑퐁 치기'로 야간 응급실을 유지하는 곳도 있고, 문 닫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성인응급실은 소아과 전문의가 없으면 소아 환자의 진료를 거부해 버린다.
응급의료법 제3조는 '모든 국민은 성별, 나이, 민족,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고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도 또한 같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위법 천지가 된 상황에 보건복지부가 '뺑뺑이다, 아니다'를 따지고 있을 때인가?
보건복지부는 뭘 하고 있나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은 지난 1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오는 16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거부권)를 건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모습. | |
ⓒ 권우성 |
소아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지 않는 종합병원에 대해선 단속, 보조금 중단 등 정부의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대체 보건복지부는 뭘 하고 있나? 전공의를 늘리고 공공어린이병원을 만든다고 하면서도 당장 오늘 벌어지고 있는 응급상황에 대해선 미온적이다.
아이를 편하게 키우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못 들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보건당국은 왜 빈 병실이 있는데 아동 환자는 받아주지 않는지 국민이 납득할 만한 답을 해야 한다.
당장 오늘 밤에 사경을 헤맬 소아 환자부터 살려내야 나라다. 정부는 종합병원 내 소아응급실의 24시간 운영부터 당장 정상화하라! 국가는 코로나 이후 급감한 소아과 전공의 실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예견된 소아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는 즉각 재정을 투입하라. 아이들의 목숨이 걸린 일에 조건도 협상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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