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점선면] 기후위기, 법대로 합시다?
‘아기기후소송단‘ 어린이가 지난해 6월 서울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피켓을 머리에 쓰고 장난을 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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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 잘 지내셨나요? 아침저녁으로 날이 많이 선선해졌죠.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 탓에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올여름도 마침내 끝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매해 반복되는 여름을 ‘유난하게’ 만든 것은 기후변화입니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날’(2023년 7월4일)이 새롭게 쓰인 올해, 세계적으로 폭염·홍수·산불 등 극단적인 기후현상이 잇따랐어요.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해 일어났다는 건 법으로도 명시된,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 역시 “기후변화가 인간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은 ‘자명하다(unequivocal)’”고 못을 박고 있고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지구 곳곳에서 가시화되면서, 기후변화를 일으킨 혹은 막지 못한 책임을 법적으로 물으려는 움직임도 점차 커지고 있어요. ‘피고는 인류’라는 식의 추상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국가·기업의 정책·제도가 법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소송이 세계 각국에서 잇따르고 있어요.
그런데 국가나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이 될 수 있는 걸까요? 국가·기업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진다면,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걸까요? 왜 기후위기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법’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일까요?
이런 궁금증을 안고 오늘 점선면을 준비했어요. 환경부를 출입하고 있는 강한들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1. 기후변화 소송(기후소송)이란?
· 기후소송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거나 이미 발생한 상황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소송을 말합니다.
·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기후 정책의 진전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적 인식 확산, 정부나 기업의 행동변화 등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가장 최근 사례로는 지난 8월15일 미국 몬태나주 법원이 내린 판결이 있어요. 이 판결은 기후소송으로 거둔 ‘역사적 승리’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주 정부가 석탄·천연가스 생산을 허용해 기후위기를 악화시켰다며 청소년들이 제기한 소송에, 법원은 주 정부가 화석연료 정책을 승인할 때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어요.
2. 우리나라에도 있나요?
· 국내에서도 여러 건의 기후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2020년 청소년 19명이 정부의 소극적 기후위기 대응이 생명권 등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후, 지난 3년간 정부의 온실가스감축목표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청구만 4건에 달하죠.
·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는 유의미한 판결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지난 3년간 어떤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 헌법소원 청구가 아니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릴 수 있는 정책이나 사업을 저지하려는 소송도 기후소송으로 분류되는데요. 2022년 새만금 지역 주민들이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낸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처분 취소소송이 대표적이에요.
기후변화 소송은 기후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국가·기업을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을 말합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유의미한 판결이 나오고 있어요.
1. 기후변화를 왜 법정에서?
기후소송이 아주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죠. 다만 세계적인 현상으로 부상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에요.
런던 정경대 그래덤 기후변화와 환경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 5년간 전 세계적으로 집계된 기후관련 법적 분쟁 건수는 2180건(65개국)으로, 2017년 이전에 비해 2배가량(884건) 늘었습니다.
전세계에 제기된 기후변화 관련 소송. 런던 정경대 ‘기후소송 글로벌 트랜드 2023’ 보고서. 그래픽 김규연 디자이너.
기후소송이 벌어지는 국가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어요. 과거에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주로 소송이 진행됐다면, 최근에는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되는 모양새예요. 지난 1년 사이 불가리아, 핀란드, 루마니아, 러시아, 태국, 터키에서 기후소송이 새롭게 시작됐습니다.
이처럼 기후소송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게 된 배경으로 꼽히는 기념비적인 판결이 있습니다. 2015년 6월에 1심이 선고된 네덜란드 우르헨다 소송이에요. 기후소송으로서는 전세계 최초로 거둔 승리로 기록돼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환경단체인 우르헨다 재단이 시민들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기후변화를 막기에 부족하다”며 낸 소송에서 재판부가 재단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2019년 12월 대법원에서 이 승리는 확정됐고요.
원래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 말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17% 줄이겠다는 방침이었어요. 대법원은 이를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봤습니다. 국가는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할 의무가 있고, 파리협정의 2도 목표(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는 것)를 달성해야 하는데, 기존의 감축 목표 17%는 이를 이루기에 역부족이라는 이야깁니다.
결국 법원은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목표를 25%로 상향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에 법적 책임이 있다고 확정한 첫 사례였죠. 이 판결로 기후소송이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세계적으로 비슷한 움직임이 잇따랐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법이었을까요? 재판이란 참으로 길고 지루한 과정입니다. 법은 보수적인 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요
사실 기후변화가 위기 단계로 진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 정책을 가장 빠르게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정치’입니다. 효과적인 정책을 입법하고, 이를 집행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죠.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오랫동안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적절한 기후변화 대응을 회피해왔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예컨대 지난 3월 정부는 탄소중립 계획을 통해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고 밝혔어요.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설정한 목표를 그대로 이어간 겁니다.
40%라고 하면 엄청난 숫자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각국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평가해온 비영리 단체 Climate Action Tracker는 다른 모든 나라가 대한민국 수준으로 감축 목표를 설정할 경우 지구 온도가 3도까지 상승하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어요. 파리협정에서는 2도 상승을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정했으니, 충분한 감축 조치라고 보기엔 어려운 숫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의 작용’은 정치 영역의 회피를 끊어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이재희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논문 ‘기후변화에 대한 사법적 대응의 가능성: 기후변화 헌법소송을 중심으로’에서 “경제적 부담과 개별국가의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정치에 의한 변화 대응이 진척되지 못할 때, 정치의 영역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생존과 공동체의 존속을 위하여 사법의 작용이 요청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2. 소송의 근거가 있나요?
기후변화 대응 촉구에 사법의 작용이 필요한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힘을 갖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직 투표권이 없는 ‘미래세대’ 즉 어린이와 청소년이 대표적이죠. 이 미래세대는 급속도로 심화되는 기후위기를 앞으로도 한참동안 겪어내야 할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2020년 3월 19명의 청소년들이 “정부의 소극적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청소년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낸 까닭입니다. 청소년들의 소송 대리를 맡은 변호사들은 정부가 국제적으로 합의된 ‘최소 목표’에조차 부합하지 않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내놓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환경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취하지 않은 사례(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청소년기후소송단 회원들이 ‘3·15 청소년 기후행동’ 집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강윤중 기자
과소보호금지원칙이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지 판단하는 헌법재판소의 심사기준입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이 선거운동에서 확성기 사용을 허가하면서도 소음에 관한 규제규정은 두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죠. 이 판결의 근거가 바로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입니다.
적절히 세워지지 않은 기후변화 대책은 미래세대 입장에서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8월21일 현행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에 잘 드러나 있어요.
인권위는 탄소중립기본법에 근거한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에는 ‘세대 간 형평성(비례성)’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있거든요. 파리협정에서 약속한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실현 가능한 목표와 계획이 필요한데, 이를 그저 미래세대의 과업으로 미뤄둔 셈입니다.
인권위는 “2030년까지의 목표를 낮게 설정하고 2031년 이후 감축목표는 설정하지 않은 채, 향후 예상되는 매우 어려운 작업을 2030년 이후 미래세대에 미루는 것은 세대 간 형평성에 위배된다”고 했습니다.
세대 간 형평성을 지향해야 하는 근거는 헌법에 있습니다. 헌법 전문에 적혀있는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는 문구가 그렇습니다. 현 세대와 미래세대를 아우르는 안전과 자유의 확보는 헌법의 기본원리인데, 현 탄소중립기본법은 미래세대의 안전과 자유를 담보삼기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거죠.
3. 소송한다고 뭐가 바뀌나요?
기후소송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늦어지면서, 이 소송이 그저 상징적인 의미에 그친다고 생각하시는 독자님들도 계실 것 같아요. 미리 보내드린 설문에서도 소송과 재판으로는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는 답변을 남겨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 소송 글로벌 트렌드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판결이 내려진 기후소송 549건의 50% 이상이 기후행동에 우호적인 사법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판결이 기후 정책을 새롭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구체적인 사례로 그 변화를 들여다보겠습니다. 2021년 4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인데요. 본래 독일의 연방기후보호법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1990년 수준에 비해 55% 이상 감축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어요.
독일 헌재는 이 규정이 미래세대에게 탄소예산을 불평등하게 분배하고 있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탄소예산이란 지구 온난화 제한을 위해 앞으로 배출하기로 정한 이산화탄소의 양인데요.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너무 낮은 나머지, 탄소예산의 대부분을 이 시기에 써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예요. 2031년 이후를 살아갈 미래세대에게는 불공평한 상황이죠.
판결은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왔어요. 독일 정부는 2030년 목표를 65%로 올리고 2040년 목표를 80%로 설정했습니다. 탄소 순배출량이 0이 되는 탄소중립 목표연도도 2045년으로 앞당겼고요. 앞서 설명드린 2019년 네덜란드의 우르헨다 소송 외에도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콜롬비아, 네팔 등에서도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법부 판결이 나오면서 정책적인 변화로 이어졌고요.
다른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이재희 연구관은 “각국의 기후소송은 기본적으로 각 국가의 고유한 법과 제도에 근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후과학에 근거한 기후변화 목표 설정·국가나 기업의 의무 인정 근거·책임 인정 범위 등 국제법상 공통의 핵심적 법적 문제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법리가 발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각국의 기후소송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법리가 발전하고 있다는 거예요.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내려진 판결이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소송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야기죠.
기후소송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늘리는 것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가 아닌 기업과 개인을 향한 기후소송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앞서 인용한 보고서를 보면, 기후소송을 둘러싼 최신의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친환경’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친환경은 아닌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기업에 대한 소송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겁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각각 9건에 불과했던 그린워싱 소송은 2021년 27건, 2022년 26건으로 크게 증가했죠.
지난해에도 이 보고서는 기후 소송이 앞으로 더 늘어나고 소송의 대상도 더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특히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 책임을 맡은 임원’ 등 개인 책임에 초점을 맞춘 소송,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피해와 관련된 국제 소송, 탄소포집 등 온실가스 제거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정부 등 주요 탄소 배출국들에 대한 소송이 증가할 것으로 봤어요. 탄소 감축 약속을 지키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소송도 제기될 것으로 전망됐고요.
‘법은 느리고 멀다’라는 막연한 생각과 달리, 기후변화 소송은 법적인 근거와 논리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1. 기후 소송에 임하는 마음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부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지도 않을 것 같으니까요. 소송이라는 이름이 무겁잖아요. 가장 좋은 건 소송을 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말해주는 거예요. ‘이런 계획이 있고 이런 정책을 할 것이다’라고요. 정부가 먼저 정신차려주면 고맙죠.” (장도휘, 17세)
“<프로듀스 101>을 봤는데 한 팀이 과제를 안 해왔어요. ‘하루만 더 주면 할 수 있다’고 하니까, 트레이너가 ‘그 마인드로 1년을 더 준다고 할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모든 문제가 그래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시험 볼 때 벼락치기 하는데요. 기후변화는 절대 벼락치기가 될 수 없단 말이에요. 제발 심각하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요.” (방태령, 16세)
이번 점선면을 만들면서 국내 최초의 기후소송을 준비하던 청소년기후소송단의 목소리를 담은 2019년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싸움’으로 표현되는 기후소송에 나서기까지, 청소년들의 절박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죠. 오늘의 점선면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한 이들의 심정과 관점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2022년 5월, 만 5세를 넘지 않는 아기 청구인들이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일이 있었죠. 이 ‘아기기후소송단’을 직접 인터뷰했던 강한들 기자는 기후소송에 나서는 이들의 마음을 ‘답답함’으로 요약합니다.
“기후 소송에 나서는 이유는 ‘답답함’이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아기기후소송이나 청소년기후행동이 낸 소송 등은 ‘미래세대’를 앞세워 낸 소송이잖아요. 앞으로 살 날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는데, 우리가 살 기후는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려우니까요.
2020년에 태어난 아이는 2100년까지는 살 수 있겠죠. 그런데 주로 기후변화 연구를 보면 2100년이 ‘끝 선’이에요. 2020~40년, 2060~80년, 2080~2100년 이런 식으로 연구되는 식이죠. 그렇다면 2100년 이후의 미래는 어떨까 생각해보면, 처참한 마음이 듭니다.”
2. ‘법’은 인간만을 위한 것일까?
앞에서는 ‘기후소송’을 주로 다뤘지만 ‘기후재판’이라 불리는 방식의 사법적 대응도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기업, 정치인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직접행동에 나선 활동가들은 재판을 통해 또 다른 싸움을 이어가고 있어요.
예컨대 두산에너빌리티(전 두산중공업)의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그린워싱’이라 비판하며 로고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칠하거나, 포스코의 미얀마 가스전 사업이 기후위기를 가속한다며 포럼 현장에서 기습 시위를 벌인 활동가들이 재판에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구형받고도 꿋꿋하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죠.
청년기후위기 활동가들이 두산에너빌리티(당시 두산중공업) 건물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도현 기자
기후재판에 임하는 사람들은, ‘피고’와 ‘원고’를 뒤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요. 지금은 활동가들이 ‘피고’이지만 기업과 정치인을 ‘피고’로 만들 수 있는 법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죠.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바로 ‘지구법’입니다. 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때, 그 정당화의 근거가 ‘공동선’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인간뿐 아니라 지구공동체를 모두 아우르는 법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지구법학자’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두산에너빌리티 건물에 스프레이를 칠한 혐의로 1, 2심에서 유죄를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강은빈 대표와 이은호 활동가를 위한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어요. 바로 이 지구법학적 관점에서요.
박 교수는 지구법의 관점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기후위기의 주범인 석탄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행위가 지구 생명공동체의 공동선을 해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위’에 나선 두 활동가의 행위는 ‘저항권’의 행사로 해석된다는 이야기예요.
피고인들의 시위는 지구의 기후 시스템 붕괴에 기여할 것이 분명한 행위에 맞서, 지구 공동선을 보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뤄진 저항적 의사 표현이므로 형사 범죄로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3. 청구인: 고래?
기후소송과 지구법의 개념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생태를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개인, 기업, 국가의 책임을 이제 법정에서 제대로 따져 묻자는 겁니다. 인권침해 범죄가 벌어졌을 때, 가해자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고발하고 그에 맞는 처벌을 요구하듯이 생태파괴에도 같은 방식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실제로 2021년 국제 비정부기구 ‘스톱 에코사이드’는 생태학살을 전쟁범죄·반인륜범죄·집단학살·침략범죄처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 가능한 다섯번째 국제범죄로 규정하자며 개정 초안을 내기도 했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 동물권소위원회 ‘고래팀’으로 활동중인 김도희 변호사(왼쪽)와 김소리 변호사가 16일 서울 관악구 밝은책방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앞서 비인간동물인 ‘고래’를 청구인에 포함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는 소식, 지난 점선면Lite에서도 소개했죠. 정부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도에 마땅히 했어야 할 외교적 조치 등을 다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시민과 생명체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는 문제의식이 담긴 소송이에요.
이 소송의 청구인에 ‘고래’를 포함시킨 변호사들은 지구를 인간만이 누리고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지구의 모든 구성원을 아울러 봐야 한다는 지구법학적 관점을 취합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변화가 느린 것이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법은 어느새 고래까지도 청구인으로 품을 수 있는 새로운 장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지구공동체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에 근거한 ‘지구법학적 관점’이 새롭게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세 줄 점선면
▶ 기후소송은 기후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국가·기업을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을 말합니다.
▶ 기후변화 소송은 세계 곳곳에서 법적인 근거와 논리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지구공동체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근거한 ‘지구법학적 관점’이 새롭게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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