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116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된다"
3월, 입학과 개학으로 설레고 들뜬 것은 아동들의 몫이고 집 안팎의 노동과 돌봄은 엄마의 몫임을 절감하는 시기다. 초등 돌봄 공백으로 인한 양육자 단톡방의 소란은 여성들에게만 유독 크게 들린다. 아무리 여성의 권리가 신장하였다 하더라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말과 함께 ‘엄마가 옆에 있어 줘야 할’ 주술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성 역할 구분에 큰 의심 없이 살아왔던 이라도 늘어나는 돌봄의 무게에 힘겨움을 느낀다. 활발한 사회 진출과 성 평등을 추구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부터 마주하는 돌봄 공백에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늘봄학교를 올해 3월부터 이르게 시작하며 국가가 나서서 돌봄을 책임지고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고,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맞벌이·저소득층·한부모 가정 등 양육자의 상황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하던 학교 돌봄에서 모든 아동에게 열린 학교 돌봄으로의 전환은 비로소 돌봄권을 아동 고유의 권리로 인정한 일이다. 정부가 “희망하는 초등학생 누구나” 학교 돌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변화다. 또한, 국가가 양육자의 돌봄을 돕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아동에게 직접 돌봄 책임을 지는 것으로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돌봄은 선언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돌봄 공백이 메워지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적인 뒷받침은 턱없이 부족해 엄마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학교가 요일별로 몇 시에 끝나는지, 학년별 시간표가 어떻게 되는지, 방과후교실은 언제부터 신청할 수 있고 1, 2학년 돌봄교실은 몇 시까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이어 이제 늘봄학교까지 알아야 하고 챙길 것이 오히려 늘었다. 돌봄은 교육이 아니라는 입장과 예상보다 이른 도입으로 교사들은 늘봄학교 업무를 반기지 않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아동중심의 돌봄에 대한 이해와 공감 속에 정책이 구체적으로 집행되어야 하고 충분한 예산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결과는 엄마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을 책임지겠다는 늘봄학교 정책이 장시간 노동국가, 과로사회 대한민국이 쥐어짜 낸 고육지책에 불과함을 직시해야 한다. 돌봄공백·돌봄지옥 문제의 근원적 해법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아동이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학원·기관을 전전하지 않도록,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돌봄권 보장해야 한다. 정치권이 반드시 이번 총선에서 주 35시간, 주 30시간으로 가는 로드맵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은 엄마로서의 현실을 되짚기에는 참으로 적합한 시기다. 성차별적인 사회· 경제적인 여건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막는 원인으로 짚어진 지 오래다. 일·가정을 양립하며 아이를 키우고 직장생활을 영위하기 힘들다. 결혼과 출산은 필수는 아니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분명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3년 ‘젠더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GGI) 에서 한국이 146개국 중 105위로 최하위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평균 11.9%의 3배에 가까운 31.1%로 가장 크다. 일자리의 질도 남성에 비해 떨어지고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에 비해 1.5배 높다. 수입은 남성의 70%에 불과하다. 11년째 대한민국 여성의 유리천장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집 안은 어떠한가. 한국여성노동정책연구원의 자문으로 시행한 가사노동 시간 남녀 격차는 3배로 나타났다. 거기에 가족생활 전반에 대한 계획을 짜고, 구상하고, 정보를 모으는 ‘기획노동’까지 더하면 남녀 격차는 3·4배로 더 벌어진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떨어졌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성차별구조를 바꾸지 않고, 저출생에 대한 대책을 세워본들 무효하다.
트렌드코리아는 매년 해마다 전망과 키워드를 담아내고 있다. 그간 돌봄의 가치를 제대로 매기지 않고, 여성들의 몫으로 당연하게 전가해왔던 것으로 “돌봄경제”가 꼽혔다. 돌봄은 단지 직접 제공하는 물리적인 돌봄뿐만 아니라, 대상에 따라서는 배려돌봄, 정서돌봄, 관계돌봄처럼 비가시화되지 않는 돌봄까지도 포함된다. 돌봄이 없다면 세상이 멈출 것이라는 경고가 과언은 아니다. 돌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여성에게, 엄마에게 몰려있던 돌봄이 골고루 나누어지는 세상을 바란다. 남성에게도 돌봄은 당연하고 돌봄의 고민과 기쁨이 공평히 나뉘길 바란다.
서로를 돌보며 살기로 결심한 정치하는엄마들은 육아퇴근한 밤 고민을 나누고 회의하고 성명을 쓴다. ‘낮의 소란이 지나가고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 웅크린 존재의 등이 만개하는 밤’을 은유 작가는 <해방의 밤>이라 명명했다.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 없어’ 같은 위대한 말들을 널리 내보낸다 했다. 116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만 꾸지 않고 이루리라 다짐한다. 해방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외친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된다!
2024년 3월 8일
정치하는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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