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내 한표의 힘 (4) 저출생] ❝저출생 공약, 없는 것보단 낫지만…그거 해준다고 달라질까요❞
특정시기 집중 저출생 대책으론
육아 전단계 어려움 해소 힘들어
한계 느껴 퇴사한 경력단절 여성들
젊은세대에 ‘비혼 선호’ 영향 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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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아침 8시20분께 경규환(44)씨는 초등학교 1학년 딸(7)의 손을 잡고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나왔다. 하교 뒤 학원까지 다니는 어린 딸은 아침마다 눈을 뜨기 힘들어했다. 아빠는 안쓰러운 마음을 누른 채 30분 동안 딸을 깨우고 시리얼로 아침을 급하게 먹인 뒤 준비물을 챙겨 집을 나섰다. 경씨의 딸은 작은 몸에 책가방과 태권도 학원 가방을 메고, 책가방 안에는 배드민턴 채와 텀블러까지 챙겼다. 학교 수업을 들은 뒤 돌봄교실, 배드민턴 방과 후 수업, 태권도 학원까지 일명 ‘뺑뺑이’를 돈 뒤 오후 6시30분에야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등굣길 짐도 많았다.
아빠와 딸은 약 600m 거리의 초등학교까지 이날 듣는 수업, 친구 등을 얘기하며 걸었다. 10분 뒤 정문에 도착하자, 하이파이브를 하고 헤어졌다. 경씨는 다시 10분 정도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서울에 있는 디자인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서다. 직장에 도착하면 오전 9시30분이 넘는다. 그나마 회사가 탄력근무를 허용한 덕에 아이를 위해 조금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방식으로 근무시간 조정이 가능했다.
하교는 아내인 최현주씨의 몫이다. 최씨는 아침 6시40분께 집을 나선다. 대신 오후 5시에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퇴근길에 오른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후 6시30분 태권도 학원 차량에서 아이를 데리고 귀가한다. 저녁 8시가 넘으면 경씨가 집으로 돌아온다. 사실상 부부가 서로 출퇴근 시간을 조율해 ‘육아 교대근무’를 서는 셈이다.
“하루는 돌봄교실에서 원래 저희가 짜놓은 시간 말고 한 시간 이르게 하교했다고 문자가 오는 거예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문자를 잘못 보냈대요. 이런 일에 일희일비를 해야 하나….” 경씨 말처럼 촘촘하게 짜인 부부와 아이의 스케줄표는 일말의 빈틈이 생겨선 안 된다. 그런데도 아이가 잠드는 밤 9시30분까지 온 가족이 모여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90분이 채 안 된다.
일·육아 병행의 한계, 여성 경력단절로 이어져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분기별로는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처음으로 분기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졌다. 낮아지기만 하는 출생 지표를 의식한 듯 22대 총선에서 각 정당은 너도나도 저출생 공약을 쏟아냈다. 육아휴직 여건 개선, 각종 수당 등 경제적 지원, 아이를 낳은 가정에 대한 주거 지원, 돌봄 대책 등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없는 것보다는 낫죠.” 경씨 부부 등 맞벌이 부부와 경력단절여성, 비혼·비출산 여성 등 한겨레가 인터뷰한 공약 대상자들은 저출생 공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공약에서 약속한 제도가 생기면 아이를 (더) 낳을 것인지’ 묻자 답변을 망설였다. ‘없는 것보단 나은 수준’의 공약으론 저출생을 헤쳐나가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맞벌이 부부의 ‘촘촘한 스케줄’도 한계에 부딪히는 날이 온다. 잡지 에디터로 근무하다 당시 막 떠오르는 회사의 팀장까지 맡았던 박선영(46)씨는 아이가 5살이 되던 2015년에 그 한계를 느꼈다. 박씨 부부 모두 업계에서 한창 인정을 받던 시기라 아이를 돌볼 여유가 부족했다. 어린 딸은 4살 때까지 평일엔 서울 강서구에 있는 박씨의 부모님 집에서 보내고, 주말에만 강동구에 있는 부부의 집에서 보내는 생활을 반복했다. 격무에 시달리던 박씨는 아이를 부모 집에서 강동 집으로 데리고 가던 금요일 밤 올림픽대로에서 깜빡 졸음운전을 했다.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뒷좌석에서 아이가 “엄마!” 하며 우는 소리가 들리자 번쩍 눈을 떴다. 잠깐 자신이 어디 있는지, 뭘 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언제 올지도 모를 미래에 행복하자고 지금 여기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 삶은 아닌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박씨는 생각했다. 바로 회사를 그만뒀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5~54살 여성 중 전 생애에 걸쳐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은 절반(42.6%)에 가깝다. 2019년 조사(35.0%)보다도 늘었다.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연령 평균은 29살, 경력단절 기간은 평균 8.9년으로 나타났다. 케이비(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9 한국 워킹맘 보고서’는 아이가 있는 직장 여성이 퇴사나 이직을 고민하는 시기로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때’를 꼽았다고 분석한다. 박씨도 “그때(아이가 5살 때) 그만두지 않았더라도 결국 아이가 초등학교 때, 아니면 코로나19 때 일을 그만두게 됐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커가는 아이와 시간을 보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육아와 가사를 하며 낮아지는 자존감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매일 지는 사람이다. 빨래에 지고, 설거지에 지고….’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쯤 됐을 때 박씨가 썼던 글엔 당시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남편이 일터에서 받는 상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남편은 저렇게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늘어나는 사교육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학원비가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제가 배우고 싶던 것은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40대 중반도 자기개발이 필요한데, 아이 학원비와 부딪히면 그걸 이길 부모는 없어요.” 박씨는 그렇게 8년간의 경력 공백을 딛고 다시 ‘취준생’이 됐다.
“아이 키우는 순간 일에 집중 어려워”
전쟁 같은 일과 육아의 병행, 한계에 다다르면 일을 그만두는 여성의 모습은 젊은 세대에게 ‘학습 효과’를 일으켰다. 정보기술(IT) 관련 대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는 임아무개(31)씨도 그중 하나다. “아이를 키우는 순간부터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아이로 인한 기쁨을 얻는 것 외에는 인생에 마이너스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어 출산에 별로 생각이 없어요.” 일주일에 3번 정도 밤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그 외에도 집에서 업무 관련 모니터링을 계속해야 하는 임씨는 연애마저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는 “연애에 열려 있긴 하지만, 나 하나도 벅찬데 다른 사람까지 신경써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결혼에 대한 견해’(13살 이상 대상) 조사를 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은 2010년 21.7%에서 2022년 15.3%로 줄었다. 반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30.7%에서 43.2%로 늘었다.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출산할 의향이 없는 이유로 20대 여성은 1순위로 ‘비혼 선호’(37.2%)를, 2순위로 ‘육아 및 돌봄의 책임감 때문에’(30.2%)를 꼽았다. 30대 여성은 1순위로 ‘출산 계획이 이미 완료돼서’(33.4%), 2순위로 ‘육아 및 돌봄의 책임감 때문에’(27.0%)를 꼽았는데, 이는 둘째 이상 아이 비율이 지난해 처음으로 40% 아래로 내려앉은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각 정당들이 내놓은 총선 공약이 제대로 실행된다면 임씨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임씨의 대답은 ‘그래도 출산 생각이 없다’였다. 지금과 같은 특정 시기에 집중된, 분절된 저출생 정책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전 생애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육아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 애가 대학교 입학해 공부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고 봐요. 물론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손이 많이 필요한 경우엔 공약으로 제시한 내용들이 도움이 될 순 있겠지만, 그거 해준다고 전반적인 어려움이 달라질 리 없겠죠. 사람마다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각기 다를 텐데, 그 부분을 더 살펴보고 아이를 낳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지민 김민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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