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기자 이효상] 위기학생에 낙인찍는 사회, “시스템이 없다”
초등생의 ‘교감 폭행 영상’ 언론 공개…교사·학교·노조·언론 모두 치료·보호보다 비난만
최근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 영상으로 촬영돼 언론에 공개됐다. 영상에서 초등학교 3학년 A군은 무단 조퇴를 막는 교감에게 욕설하고 여러 차례 교감의 뺨을 때렸다. 누리꾼들은 개별 기사마다 수천 건씩 댓글을 달면서 분노했다. 대부분이 A군을 비난했고 학교, 더 나아가 사회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서적으로 위기상황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큰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은 A군과 보호자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로 비추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모습이다. 교권과 학습권을 여러 차례 침해한 학생의 위기 행동에 교원단체는 언론 제보로 대응했다. 언론은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는 대신 영상을 자극적으로 보도해 공분을 키웠다. 그에 따라 위기학생의 학교 적응과 사회 안착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만들어질 공간에 A군에 대한 비난만이 자리했다. 우리 사회가 위기학생들을 포용할 역량과 제도를 갖췄는지 따져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야 한다. 학생에 대한 분노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유사 사건의 해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A군을 도마 위에 올렸나
‘교감 폭행 영상’은 지난 6월 3일 해당 학교의 교사가 촬영했다. 이튿날 이를 언론에 제보한 것은 전북교사노조였다. 노조는 지난 6월 6일 “해당 학생이 치료받지 않은 채 등교해서 교감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의 교육활동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라고 제보 이유를 밝혔다. 또 “전주시청 통합사례회에서 학부모의 아동학대(방임)를 인정해주지 않아 학생이 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교권과 학습권이 침해됐고, 학생의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보호자가 거부했기에 영상 제보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보도의 파장은 컸다. 보도 직후 전주교육지원청이 A군에게 출석정지 10일 처분을 내렸다. 전북교육청은 자녀를 방임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A군의 보호자를 경찰에 고발했다. 보호자의 혐의가 인정되면 A군은 보호자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치료받을 수 있다.
목적은 ‘교육적’이었지만 방법은 교육적이지 않았다. 영상을 촬영해 형사·행정절차에서 정서적 위기 행동의 증거로 삼는 것만으로도 전북교사노조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었다. 언론 보도는 아동인 A군의 행동을 고스란히 대중에게 노출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렸다.
김재련 변호사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아주 위험한 행동을 유행처럼 해서 부모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알권리 차원에서 기사화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건은 초등학교 3학년 학생 한 명의 행동을 온 국민이 알도록 보도한 것이다. 보호가 필요한 학생으로 보이는데 이 학생이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아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언론부터 학교, 사회가 노력해야 함에도 학생 한 명을 성인 범죄자처럼 다뤘다. 아동에 대해 낙인을 찍은 것이고 정서적인 학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현행법도 미성년자에 대한 보도는 신중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소년법은 소년 사건이 조사 또는 심리 중인 경우 당사자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이나 사진 보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한 언론사는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보도된 영상은 A군의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했지만 지역과 학년을 공개했다. 지역 사회에서는 A군의 신원이 특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 사건 이후에도 A군은 자전거를 절도한 혐의로도 경찰에 신고됐는데, 이 과정을 한 지역 주민이 촬영해 또 언론에 제보했다.
교감 폭행 영상의 제보자가 교원단체라는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여론의 비난을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교원단체가 아동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A군의 권리 침해를 사실상 방조했기 때문이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학생의 치료를 거부한 보호자의 개인적 일탈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지만, 교사노조가 교직 수행의 노고와 어려움을 항변하기 위해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교사들의 집단적 일탈에 가깝다. 우리 사회에서 누가 위기학생을 보호할 수 있는지 묻게 된다”고 했다.
정재석 전북교사노조 위원장은 지난 6월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전북교사노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악마화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있다”며 “학생이 악마화되는 게 염려스러우니 이제 폭행 영상 노출은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의지가 있어도 제도가 없다
정서·행동 위기학생에 대한 지원 제도의 부재도 엿보인다. 학교와 전주교육지원청, 지역 사회는 A군의 위기 징후를 이미 파악하고 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6차례 전학을 한 A군은 7번째 학교인 해당 학교에 지난 5월 14일 처음으로 등교했다. A군의 여러 차례 강제전학 사실을 파악하고 있던 전주교육지원청은 통상 교사들의 갑작스러운 업무 공백이 있을 때 투입하는 대체 교사 인력을 등교 첫날부터 A군의 교실로 지원했다. 한 교실에 두 명의 교사가 머물면서 A군의 행동에 대응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나흘 만에 이 같은 지원은 중단됐다. 대체 교원이 애초 위기학생에 대응하기 위해 계약된 인력이 아니었기에 지속성이 없었고, 교육지원청에도 이런 상황을 대비한 전문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전문 상담사가 교실 밖에 머물며 지원했다. 도로 담임 교사 혼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주시청 역시 지난해 말부터 A군의 위기 징후를 포착하고 4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긴급 복지지원과 심리치료 연계 방안 등이 논의됐다고 한다. 일부 복지 지원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보호자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A군의 치료로 이어지진 않았다. A군 학교의 교감은 “시청과 교육청, 복지관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현실이 제도의 테두리 밖에 있다”고 했다.
어쩌면 변변한 매뉴얼도 없는 현장에서 홀로 교실을 지켜야 하는 현실이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을 상대로 한 여론전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고시가 개정돼 교권과 학습권을 방해하는 행동을 한 학생을 분리할 수 있게 됐지만, 학생을 분리할 시설이나 분리된 학생을 담당할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더욱이 분리된 학생에 대해 어떤 조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해진 바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와 교사가 위기학생 교육을 위해 사비를 들여 훈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교직경력 20년 차의 초등학교 교사 B씨는 “한 위기학생의 부모가 사비로 사람을 고용해 교실에 머무르며 학교생활을 돕게 한 경우가 있었다”며 “개인이 부담을 진다는 점에서나 학교 차원에서나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지만, 교실에 사람이 한 명 더 들어왔을 뿐인데 그 반이 가지고 있던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 사람 늘리면 나아질 수 있는데 대책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저 또한 교실의 사정이 급해 심리상담 과정을 사비로 배웠다. 많이들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의 교사들은 이런 상황을 ‘독박교실’이라 불렀다. 전문성도, 매뉴얼도, 보조 인력도 없이 위기학생의 행동에 대응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동인권을 중시하는 사회에선 교실을 이렇게 방치하지 않는다. 캐나다의 경우 통합교육을 목표로 위기학생을 지원하는 전담인력을 두고, 돌발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매뉴얼에 따라 전담인력이 중재라는 이름으로 대응한다. 캐나다에서 뇌신경 음악치료사로 일하며 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을 치료해온 윤지명씨는 “이런 (A군을 촬영한) 영상이 세상으로 바로 튀어나오면 안 된다.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는 세상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가가 할 일을 못 하고 있다. 교육부가 왜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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