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나의 열두 번째 대통령
1980년대 이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계엄 포고문이 여러모로 나를 떨게 했다.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4시간 동안은 두려워서 떨었다. 열 살 먹은 딸이 울고 있는 옆에서 덩달아 울었다. 그땐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입에 재갈을 물고 살거나 재갈을 풀고 죽거나, 나야 물고 사는 편을 선택하겠지만, 나보다 40년 늦게 태어난 딸이 나와 같은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 서러웠다. 계엄이 해제되고 광장이 열리자 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홀로 광야에 선 듯한 고립감에 떨었다. 광장에 나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사한 경험의 축적으로 나는 광장 이후 세상에 일말의 기대도 품지 못하는 비관주의자, 어쩌면 현실주의가 돼 있었다. 응원봉과 K팝, 전에 없던 광장의 미담과 남태령에서 날아든 기적 같은 이야기들로 마음이 녹을 만도 한데, 나만이 서 있는 이 광야에서 그저 먼 나라 소식을 보듯 광장을 관망했다.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 내려간 윤석열 파면 결정문을 들으며 잠시 감동했지만, 광장이 닫히고 대선 공간이 열린 순간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누구에게는 광장의 연속이겠지만, 나에게는 광야의 확장이었다.
딸이 태어나고 사회변화에 대한 나의 조바심은 심해졌다. 딸을 임신한 기간에 세월호 참사를 겪었고, 안전에 대한 감각 그리고 공권력에 관한 불신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현재 위치에서 이동하지 말라,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움직이지 말라, 대기하라.’ 참사 당시 세월호의 안내 방송 내용이 알려진 이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라는 의식이 내 안 깊숙이 자리 잡았다. 갈수록 체감되는 기후위기 앞에서 아무 대책도 내놓고 있지 않은 정부와 정치권을 한없이 원망했다. 도시는 어떤지 모르지만, 농촌과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나의 터전은 한 해 한 해 타들어 간다. 한여름 바닷물은 미지근해 자취를 감춘 바다 생물이 부지기수고, 피서가 되질 않는다. 농작물은 제대로 자라지 않고 폭염 아래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의 생명마저 위태로운 현실이다.
8년 전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쳤고 정권을 교체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신규 석탄발전소 7기, 신규 핵발전소 4기를 추진하고, 가덕도 신공항·새만금 신공항·제주 제2공항 등 신공항을 추진했다. 광장 이후가 그토록 두려웠던 이유다. 이제 열한 살이 된 딸은 뉴스가 나오면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해석하려고 아주 열심인 데다가 거리에서 정당 현수막을 볼 때마다 묻는다. ‘저게 맞는 말이야? 우리 편이야?’ 딸이 멋진 질문을 할 때마다 엄마의 말문은 막힌다. 박정희 정권 때 태어난 나에게는 열두 번째 대통령, 박근혜 정권 때 태어난 나의 딸에게는 네 번째 대통령을 우린 곧 만난다.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구시대적 정치라든가,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능력주의 정치라든가,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반생태적 정치 말고 딸에게 소개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그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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