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논평]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정치 공백을 넘어, 국가책임과 언론 윤리를 묻는다 -7월 11일 KBS 추적60분 ‘삼키지 못하는 아이들’에 부쳐
|
논평 |
||
보도일시 |
2025. 07. 14. 월 |
||
담당 |
김정덕 활동가 정치하는엄마들 사무국 |
010-3455-0616 |
|
|
박지니 활동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
|
|
배포일시 |
2025. 07. 14. 월 |
총 4매 (별첨 1건) |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정치 공백을 넘어, 국가책임과 언론 윤리를 묻는다 -7월 11일 KBS 추적60분 ‘삼키지 못하는 아이들’에 부쳐 |
2025년 7월 11일, KBS 추적 60분에서 ‘삼키지 못하는 아이들’은 아동청소년 섭식장애를 집중 조명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가려져 있던 섭식장애 문제, 특히 청소년 당사자들의 고통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낸 의미 있는 시도임과 동시에 섭식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방송에서도 지적했듯 한국의 섭식장애 치료 시스템은 2000년대 초반 이래 전혀 발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되었다. 2014년 국립 섭식장애 치료지원센터(CEDRI) 설립 이후 지역 기반 공공 치료 네트워크가 제도화된 일본, 그리고 이미 국가 전략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호주 등과 비교해보아도 뚜렷한 후퇴를 보이고 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와 정치하는엄마들은 이 방송을 주목하며 그간 국가가 외면해 온 치료 체계의 부재와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를 전한다.
섭식장애에 대한 실질적인 국가 지원 체계 마련
지난 6월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보건복지부에 국민신문고를 통해 ‘한국형 섭식장애 국가전략센터(KEDC)’ 설립을 제안했으며 방송을 앞둔 7월 11일 보건복지부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붙임1]
귀하는 ‘한국형 섭식장애 국가전략센터 설립’을 제안하셨습니다. ○ 섭식장애 대응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음을 이해합니다. - 다만, 특정 질환 전문기관 설립은 의료적 수요 및 정책적·재정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사안인 점 양해 바랍니다. ○ 아울러, 우리 부는 정신건강복지법 제10조에 의거하여 5년마다 정신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바, - 21년 조사에는 상대적으로 유병률이 낮은 섭식장애가 조사항목에서 제외되었으나, 26 년 조사에는 섭식장애 등 일부 질환을 포함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보건복지부의 “중장기 검토”라는 답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당사자와 보호자들에게는 정책 부재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섭식장애 문제는 이미 2023년 국정감사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정신건강 실태조사의 문제점과 함께 김율리 교수의 자문을 바탕으로 섭식장애에 대한 국가적 대응 필요성을 강력히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이중규 건강보험국장은 비약물적 치료에 대한 필요에 대해 전문가들과 논의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산정특례 관련 부분은 절차상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적극 검토하겠다, 유병률도 건강보험 이외에 관련 과들과 협의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 했었다.
국민신문고 답변을 통해 오히려 2년 전 국감에서의 검토 답변 이후로 보건복지부는 아무런 실행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유병률이 낮기 때문”이라며 사실관계를 축소하고 과거의 책임 방기를 인정하기는커녕 회피 논리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섭식장애 전문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하며 체계적인 진단 및 치료 과정을 갖춘 기관은 극히 드물다. 일부 기관에서는 체중 중심의 단편적 접근과 강압적인 치료 방식이 여전히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많은 당사자들에게 2차 피해를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치료를 원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정보의 부재는 또 다른 절망을 낳고 있다.
그동안 섭식장애는 2006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 유병률이 ‘0’에 가깝게 나왔다는 결과를 근거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5년간 완전히 조사항목에서 제외되어 왔다. 이러한 통계 수치는 현장 경험과 명백히 어긋난 결과였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에는 민간 섭식장애 입원 치료기관이 다수 운영되고 있었으며, 이는 적어도 전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수요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연구는 당사자의 존재를 '0'으로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정신의학계의 무관심과 비전문성 그리고 정부의 검증 없는 연구 행정이 빚은 구조적 실패이다. 그리고 지금, 이 부재의 결과를 다시 “유병률이 낮기 때문”이라는 궤변을 더 이상 납득하기 어렵다.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숫자가 없는 것인데, 숫자가 없다는 이유로 정책을 만들 수 없다는 이 순환적 책임 회피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
앞서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지난 2월 섭식장애 포함을 촉구하는 당사자와 연구자들의 제안서를 해당 실태조사의 책임자였던 서울대학교 정신과 교수에게 전달한 바 있다. 국민신문고 답변에서 복지부는 2026년 실태조사에 섭식장애 항목 포함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신속한 응답하며, 다음과 같이 섭식장애에 대한 실질적인 국가 지원 체계를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 보건복지부는 섭식장애를 국가 정신건강정책의 우선 의제로 명시하고, 전문 인력 양성, 공공 치료기관 확충, 환자·보호자 지원 체계 구축하라.
하나. 섭식장애 국가전략센터 설립을 포함한 독립적인 정책 집행 기구를 마련하고, 당사자의 정책 공동설계 참여 제도화하라.
하나. 치료기관 인증 및 윤리 기준, 조기개입 매뉴얼, 지역 연계 네트워크, 정보 포털 및 상담 핫라인 등 실질적인 섭식장애 국가시스템을 즉시 구축하라.
언론 보도, ‘자극적 재현’을 넘어 인권 중심으로
11일 추척60분 방송 이후 해당 보도를 다시 볼 수 있는 유튜브 채널 댓글창에 인터뷰에 응한 섭식장애 당사자와 보호자들에 대한 악의적 댓글이 달렸다. 이를 발견한 즉시 댓글창을 닫을 것을 촉구하여 혐오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영상이 게시되기 전 방송국측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적어도 당사자가 온라인에서 혐오공격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 KBS 방송은 섭식장애의 심각성과 사회적 방치를 조명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와 동시에 증상 행동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고통을 “시각화”하려는 연출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섭식장애는 단순한 체중이나 음식 문제가 아닌 복합적 정신사회적 질환이다. 고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시작되지 않는다.
언론의 ‘책임 있는 보도 지침’ 이 절실하다. 영국의 Beat, 캐나다의 NEDIC(국립섭식장애정보센터) 및 Body Brave 등 전국 단체 연합, 호주의 Mindframe, 미국의 NEDA(전미섭식장애협회)는 이미 섭식장애 보도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당사자 권리 보호, 증상 재현 자제, 회복 중심 서사, 인터뷰 윤리 원칙 등을 명확히 제시하며 언론 보도의 사회적 책임을 구조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권고하는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
-증상 행동의 세부 묘사, 체중·섭취량 등 구체적 수치 제시, 자극적 이미지 사용을 지양할 것 -당사자의 감정과 회복 여정을 서사의 중심에 둘 것 -인터뷰 진행 시 사전 동의, 내용 검토권, 심리적 안전 장치를 보장할 것 -특정 체형이나 외모를 섭식장애의 ‘전형’처럼 제시하지 말 것 -회복 가능성과 함께, 이를 가로막는 사회·제도적 책임을 함께 조명할 것 |
한국에는 섭식장애 보도에 대한 아직 이와 같은 가이드라인이 없다. 이에 우리는 시민사회·언론계·전문가·당사자와 함께 <섭식장애 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많은 이들이 인터뷰와 증언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당사자와 보호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어렵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이들의 목소리들이 다시는 침묵되지 않도록, 언론과 정부에 간곡히 당부한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와 정치하는엄마들은 섭식장애 당사자와 보호자들과 연대하며 정책과 언론에 반영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2025년 7월 14일
잠수함토끼콜렉티브·정치하는엄마들
별첨1. 보건복지부 국민신문고 답변 (2025. 7. 11) 첨부파일 참조
끝.
- 26 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