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세입자 사생활 침해하는 대한주택임대인협회의 스크리닝 서비스 도입 시도를 규탄한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내년 초에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프롭테크 기업, 신용평가기관이 함께 ‘임대인·임차인 스크리닝 서비스’를 출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만 건의 전세사기·깡통전세를 불러일으킨 임대인들에 대한 상식적인 정보공개에 대한 반발로 세입자를 옥죄겠다는 태도는 적반하장과 다름없다. 또한 세입자가 일상적인 권리침해에 놓여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스크리닝’을 통한 세입자 통제 강화는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이다.
‘스크리닝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겠다는 임차인 정보는 ▲임대료 납부 명세 ▲이전 임대인 추천 이력 데이터 ▲ 신용 정보 ▲생활 패턴 정보 ▲계약 갱신 여부 ▲근무 직군 ▲주요 거주시간대 ▲반려동물, 차량, 흡연, 동거인 여부 등이다. 임대인협회의 이와 같은 주장은 말그대로 임차인의 모든 사생활을 들여다 보겠다는 것이나 진배없다. 보도에 따르면 대한주택임대인협회는 ‘임대인의 정보는 제공되고 있지만, 임차인의 정보는 모르는 상황이 차별적’, ‘집주인 정보 열람이 쉬워진만큼 공평하게 세입자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해당 서비스를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있다.
임대인협회는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체납정보, 보증사고 이력 등 임대인의 정보 제공 조치가 어떤 맥락에서 도입되었는지 제대로 인식은 하고 있는가? ‘사회적 재난’인 전세사기·깡통주택를 비롯한 보증금 미반환 문제로 인해 수만 가구의 세입자들의 고통이 수년간 계속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2월 3일 발표한 최근 집계에 따르면, 전세사기피해자등으로 결정된 세입자는 무려 35,246명에 달하며, 2024년 한 해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집계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건수는 23,396건, 그 금액은 무려 4조 8454억 원에 달한다. 두 자료에 집계되지 않은 소액 보증금 피해자나 특별법과 보증금반환보증을 이용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을 생각하면 실제 피해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한다. 세입자들이 전 재산에 대출금까지 더해 마련한 보증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계약 목적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 및 세금체납여부 등 임대인의 재무상태에 대한 정보 제공은 전세사기·깡통전세라는 재난상황을 겪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최소한의 조치이다. ‘주택임대차계약에서, 임대차가 종료함에 따라 발생한 임차인의 목적물 반환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현실을 바꾸자는 상식적인 요청이다. 세입자가에 한없이 불평등한 계약을 조금이나마 형평에 맞도록 고치자는 것에 ‘쌍방의 책임’을 운운해서는 안될 것이다.
해외 사례를 들어 세입자 정보 확인이나 이른바 ‘세입자 면접’을 정당화하는 주장은, 해당 국가들의 주택임대차 제도와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명백한 오용이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세입자 면접과 비슷한 관행이 존재하지만, 여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주택임대차’가 원칙이라는 제도적 배경이 있다. 두 나라 모두 세입자의 장기거주가 보장되어있고, 임대차 계약 해지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2015년부터 ‘임대료 제동법’을 시행해 신규 임대차 계약의 임대료도 규제하고 있다. 세입자 권리를 강하게 보호한다고 해서 스크리닝이라는 관행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약 기한의 정함이 없고, 보증금 액수에 엄격한 상한을 적용하는 나라들에나 존재하는 관행을, 임대차 기간이 고작 2년에 불과하고 보증금이 집값에 육박하는 한국에 도입하자는 것은 그야말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무엇보다 세입자의 사생활을 공유받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이다. 임차인의 동거인, 생활패턴, 직군 등 민감한 사적 정보가 계약 체결 여부를 좌우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세입자를 가려받겠다는 발상은 명백히 사생활 침해이자 인권 침해이다. 특히 성소수자와 같이 사회적 차별을 겪는 세입자에게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갈 것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오히려 임대인에 의한 사생활 침해와 주거 침입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입자를 가려 받을 수 있는 선별 기준이 아닌, 세입자들이 이미 겪고 있는 주거 불안과 권리 침해를 해결할 방안이다.
한편 보도를 통해서는 해당 서비스를 통해 임대인 정보도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바뀐 제도를 통해 제시할 의무가 있는 정보만 나열되어있을 뿐이다. 임대인협회는 국세·지방세 체납여부와 선순위 임대차 정보와 같이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정보를 가지고 생색을 내고 있다. 현재 시급한 과제는 임대인이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정보조차 알려주지 않아, 세입자가 취약한 상황에 놓이는 문제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임대인이 정보제공을 거부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임대인과 목적물의 안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시장에서 흥정하거나 개인이 용기를 내 요구해야하는 대상이 아니다. 제도적으로 제공을 강제해야하는 아주 기본적인 정보다. 정보접근을 제도가 아니라 민간 프롭테크 서비스에 의존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세입자 보호의 책임을 시장에 전가하는 것이다.
‘스크리닝 서비스’ 도입은 명백한 인권 침해 행위다. 보증금 미반환 피해로 세입자는 집도, 삶도 다 잃었는데, ‘정보 불균형에 따른 차별’을 운운하며 세입자의 사생활마저 침해하려는 임대인협회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또한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프롭테크기업 역시 규탄한다. 정부는 세입자가 일상을 영위할 권리를 침해하는 시도를 중단시켜야 한다. 또한 동거인, 직군, 생활패턴 등으로 인해 주택임대차계약에서 차별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차별금지법 제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집은 일상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하지, 임대인의 시혜로 주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는 스크리닝 서비스 도입 시도를 지금 당장 중단해야한다. 권리침해 시도를 중단하고, 보증금 상한제 도입, 계약갱신청구권 확대 등 평등한 주택임대차관계를 위한 제도개선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를 바란다.
2025.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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