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학원 '뺑뺑이' 하는 일곱 살 인생도 고달픕니다 (윤정인)
학원 ‘뺑뺑이’ 하는 일곱 살 인생도 고달픕니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엄마 과학자 생존기] ‘돌봄’의 현실… 정책보다 고단하고 상상보다 치열하다
퇴직 ‘시즌 2’가 도래했다. 이번엔 지난번과 달리 나름 할 일이 많았다. 막연한 내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작업도 해야 했고, 이 사업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수익구조도 생각해봐야 했고, 밀린 글도 써야 했고, 사업을 위해서 나름 공부해보고 싶은 것들도 있었고, 그리고….
아이랑 놀고 싶었다. 아직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 아이와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나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아침마다 “늦었어!”를 외치며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엄마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불에서 뒹굴뒹굴하고, 매일매일 놀고 싶다는, 주제가 명확한 자작곡을 불러대며, 돌봄반에 남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하원 하는 게 소원이라는 이 아이와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게 저번보다 쉬웠다. 저번처럼 등 떠밀려 내려야 했던 결정이 아니었고, 또 지난 2년 반의 경험상, 반드시 현장에서 실험도구를 잡아야지만 ‘과학자’라는 나의 정체성이 성립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 내겐 시간이 별로 없다. 아이의 시간은 결코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가 나를 찾을 때, 내가 아이 옆에 있을 ‘적기’다.
나는 아이에게 뒷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아이를 기다리며 정면으로 아이를 마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젠 내가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나의 1년은 후회 없는 시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아이와 가고 싶은 곳도 많다. 아직 한 번도 못 가본 놀이동산도, 아이가 딱 한 번 가본 동물원도 다시 함께 가고 싶다. 나 어렸을 때처럼 다양한 곳에 데리고 다니고 싶다. 사극 ‘덕후’인 아들과 함께 민속촌도 가고, 계절마다 아름답게 변하는 고궁도 함께 거닐고 싶다. 아이에게 소소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
이런 원대한 꿈을 갖고 아이에게 나의 퇴직을 알렸다. 예상한 대로 아이는 아주 격렬하게 이 소식을 반기며 환영했다.
"엄마 회사 안 가? 그럼 나 일찍 집에 가?"
어쩌면, 지극히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한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다른 친구들처럼 일반적인 교육과정이 종료되는 시간에 집에 와 본 적 없는 아이의 말에 속이 상했다. 다른 아이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우리 땡그리에겐 복권 당첨 같은 일이란 사실이 너무 씁쓸했다.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렇게 물었다.
“엄마랑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 있어? 엄마가 이제 집에서 일할 거라서,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할 수 있게 해 줄게.”
“정말 그래도 돼?”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되물었다.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그럼! 뭘 하고 싶은데?”
“엄마! 나 그럼 태권도 학원 보내줘. OOO 태권도 보내줘. 우리 반 누구도 다니고, 누구도 다니고, 누구도 다니고, 누구도 다녀! 나도 갈래~, 보내줘!”
◇ 엄마 이제 너랑 놀 수 있는데, 넌 태권도 학원 가겠다고? 왜?
뭐라고!? 엄마랑 놀러 가고 싶다고 할 줄 알았는데, 엄마의 부푼 기대와 달리 태권도 학원을 보내달란 아이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저기 아들아. 엄마랑 하고 싶은 거 없어? 같이 뭐 놀고 싶다거나, 그런 거 없어?”
“응. 태권도 배울 거야.”
‘…엄마 일 때려치워서 당분간 쓸 돈이 줄었는데… 너는 이 시기에 태권도를 가고 싶다고… 돈 쓰는 재주가 남다른 아들이구나….’
얘가 진짜 왜 이러나 싶어서 며칠 동안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아이의 생각을 대략이나마 조합할 수 있었는데, 아이의 입장은 이랬다.
'엄마가 회사에 안 간다. → 더는 돌봄 교실에 남지 않아도 된다. →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다. → 친구들은 모두 태권도에 다닌다. → 따라서 친구들이 있는 태권도를 가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의 제안은 나름 타당한 논리를 구성하고 있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우리 아이는 천운으로 돌봄 교실이 있는 단설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유치원 돌봄반 덕에 아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곳에서 이동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통합 운영되는 돌봄반에서 아이는 동생을 돌보는 법, 형이나 누나와 놀이하는 법을 습득했다. 아이에게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고 생각했다. 유치원에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아이의 안전이 완벽하게 확보된 최고의 환경이었다.
그런데 이 ‘완벽한 환경’이란 부모인 우리를 위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돌봄 교실에 남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돌봄반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도 늦어도 저녁 여섯 시가 되면 각자 학원에 가기 때문에, 친구들이 자꾸 줄어들어서 제대로 못 논다는 것이 아이의 항변이었다.
따라서, 친구들과 놀이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친구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그 태권도에서 수련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것이 아이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런데 나와 남편은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또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부모의 퇴근 시간보다 빨리 종료되어 발생하는, 돌봄을 위한 ‘학원 투어’에 우리까지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대부분이 오후 4~5시면 끝난다. ‘로또 당첨’ 급의 대운을 타고나야만 돌봄교실에서 저녁 일곱 시까지 머물 수 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아이는 부모의 퇴근 시간 전까지 학원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학원에서 부모를 기다려야 한다.
더 운이 좋은 아이라면, 야간보육이 가능한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겠지만, 지역마다 이런 어린이집은 극히 드문 데다, 그 어린이집이 만 5~6세까지 돌볼 수 있는 곳인지도 미지수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결국 부모는 돌봄 공백을 메꾸기 위해 아이를 여러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아이의 자기 계발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아이를 돌볼 곳이 없어 선택한 부모들의 고육지책.
◇ 부모에게 ‘완벽한’ 돌봄 환경, 아이에겐 외로운 곳이었다
정부에서 겉만 번지르르한 돌봄 정책을 이야기하는 동안, 현실에서 부모들은 돌봄 공백을 막으려 사교육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런 것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 6~7세에나 가능하다.
이보다 어린아이는 학원에서 받아 주지 않으면 보낼 수도 없다. 이런 경우 부모들은 하원 도우미를 고용한다. 이건 가계에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온다. 돈도 돈이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아이를 함께 키울 ‘양육 동반자’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춘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게 복불복이기 때문이다.
정부 아이 돌봄 서비스건, 사설 업체에서 고용한 돌보미건, 부모들은 일단 돌봄 선생님을 들였으면 믿고 아이를 맡기는 수밖에 없다. 몇 번 만나보고,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되는 선생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긴급 돌봄은 더 웃프다. 그날 처음 만난 선생님께 아이를 맡기고 나와야 한다. 물론,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봐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아이를 맡기는 부모가 이분들의 지난 이력이나 교육 이수 여부를 알긴 어렵다.
이러니, 아이 맡기는 부모 마음은 가뜩이나 불안한데, 가끔 뉴스에서 아동학대 소식을 접할 때마다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걱정이 한가득 쌓인다. 이런 이유로 부모들은 결국, 학원을 선택한다.
학원엔 우리 아이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많으니까, 보는 눈이 많으니까 함부로 하진 못할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혼자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시간 뭐라도 하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아이에게 뒷모습을 보여야 하는 부모의 죄책감을 달래 보는 것이다.
학원을 선택할 때도 고려할 것이 많다. 유아~저학년 부모는 아이의 픽업 문제를 가장 우선으로 놓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혼자 다닐만한 세상이 아니므로, 아이들 등하원용 차량은 필수다.
그런데 나와 남편은 이 학원 차량이 싫었다. 이 차를 믿을 수 없었다. 도로에서 무섭게 폭주하는 학원 차량을 목격한 것이 동네에서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깜빡이는 옵션으로 달았는지, ‘노란 버스’임에도 도통 깜빡대는 꼴을 못 봤다.
이뿐인가. 불법 유턴에, 신호가 바뀌자마자 씽-하고 내달리기까지…. 상황이 이러니 아이를 이런 차에 태워 보내는 게 너무 불안했다. 그리고, 아는 게 너무 많으면 독이라고, 잊을만하면 뉴스에 통학버스 사고 소식이 보도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도통 안심이 안 됐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학원에 안 보내겠다고 마음먹고 살았다. 늦게까지 보육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면 보냈지, 학원 선생님과 학원 차로 아이를 여기저기 이동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생각에, 아이가 학원에 다니기 적절한 나이는 최소 여덟 살이었다. 집에서 혼자 동네에 있는 학원을 다녀올 수 있는 나이, 최소한, 아파트 비밀번호를 큰소리로 외치지 않는 나이, 혼자 아파트 현관문과 집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보내리라 마음먹었는데…엄마 아빠의 희망 사항과 달리 아이는 친구들을 만나려면 적어도, 태권도 학원 정도는 가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 엄마 7년 차… 왜 아직도 ‘엄마 노릇’ 어렵고 불안한가
우리는 결국 아이의 논리에 지고 말았다. 대신 학원 버스는 안 타고 엄마와 함께 걸어 다니기로 정리했다.
참, 우리 부부가 그래도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며 기대한 게 하나 있었다. 올빼미 아들의 체력을 고갈 시켜 빨리 잠자리에 들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현재 이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인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만한 일관성 있는 데이터가 나오고 있다. 저녁에 운동(이라 쓰고 사실 놀고 온)하고 온 아들은 기존보다 더 들뜬 상태다.
직업이 직업인지라…비유를 화학에 할 수밖에 없는데, 화학에선 가장 안정한 에너지 상태를 ‘바닥 상태(Ground State)’라고 한다. 우리 아이는 이런 바닥 상태로 아침 일찍 등원해, 약간 활성화된 상태로 하원하고, 태권도장에서 수련하며 에너지 준위를 번쩍 뛰어넘어 완벽한 활성화 상태로 돌아온다. 이렇게 에너지 준위를 뛰어넘어 집에 온 아이는 다시 바닥 상태가 될 때까지 에너지를 방출한 뒤 쓰러져 잠든다. 결국, 또 늦게 자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힘들다. 정말 너무 힘들다. 대체 이 엄마 노릇은 언제야 익숙해지려나. 쉽지 않은 1년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1년 뒤에 나는 생존해낼 수 있을까. 왜 학원 차량을 안 태워서 고생을 사서 하나. 몸이 힘들어도 차를 못 믿는 내가 이상한가, 아니면 이걸 못 믿게 만드는 이 환경과 사회가 이상한 것인가….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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