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식판전쟁] 부실급식은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곽지현)
[식판전쟁] 부실급식은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 정치하는엄마들 (곽지현 활동가)
내부 고발 아니면 적발어렵고, 처벌도 약해
어린이집 먹거리 가치 훼손 없게 해야
부실급식은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첫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전까지 민간 어린이집은 ‘못 믿을 곳’이었다. 교사에게 학대받는 아이들을 뉴스로 접하거나 차량안전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사망한 아이들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첫 아이가 네 살 때, 어린이집에 보내야 해서 ‘어린이집 상담’, ‘주변 괜찮은 어린이집’ 등을 인터넷 카페에서 검색했다. 그러다가 어떤 댓글에 ‘친정엄마가 담근 된장을 쓰고 직접 만든 플레인 요거트가 아이들 간식’이라는 어린이집을 찾게 됐다. ‘친정’과 ‘직접 만든’이라는 단어를 보니 원장님이 원아들의 먹거리에 꽤 신경 쓰고 있는 듯 했다. 다음날 입학 상담 후, 한 주 후부터 등원하기로 했다.
별 문제 없이 어린이집 다닌 지 일 년이 조금 지났을 때, 어린이집 앞 낯익은 배달 오토바이를 봤다. 이럴 수가. 시들시들한 채소를 납품받은 후 다듬어 재포장해서 파는 동네 마트 것이었다. 마침 며칠 후 어린이집에서 마련한 부모모임 자리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식자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 마트에 대해 잘 아는 학부모들은 다른 곳으로 업체를 바꿔달라고 항의했다. 원장님은 웃으면서 다음 달부터 다른 곳에서 납품 받기로 했다고 했지만, 형식적인 말이었고 결국 원장님은 업체를 바꾸지 않았다.
아이를 그만 보내기로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학대가 없고, 차량안전만 신경 쓰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질 식자재 때문에 어린이집을 관두게 되다니. 아이에게 안전한 보육기관을 찾다가 결국 첫 아이는 병설유치원으로 옮겼다. 학교는 그래도 민간 어린이집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아이의 밥상을 위협하진 않을 것 같았다.
보육기관에서의 부실 급식의 사례를 찾아보니 꽤 많다. 식단표와 다른 급식을 제공하고 아이들과 선생님 24명이 닭 한 마리를 나누어 먹고(2019년 청주 소재 어린이집) 1년 내내 반찬 없이 물이나 국에 밥을 말아서 먹인다(2020년 7월, 제주 소재 어린이집). 심지어는 고장 난 냉장고에 보관된 상한음식을 먹여(2020년 6월, 안산 소재 유치원) 아이들의 건강에 큰 위해를 끼친 일도 있다.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식중독 증세를 보인 아이는 118명. 그 중에 17명은 햄버거 병으로도 알려진 용혈성 요독 증후군 진단까지 받았다.
이런 부실급식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안산 유치원의 경우처럼 원생 다수가 식중독에 걸리거나, 다른 사례처럼 보육기관 내부에서 고발하지 않는 이상 알려지기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부자들은 보육기관의 불량한 급식을 보고도 원장의 권력에 맞서 나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적발이 쉽지 않다. 둘째, 어렵게 적발되더라도 처벌이 강력하지 않다.
여기 부천에 피해 학부모들이 원장의 책임을 끝까지 추궁해 처벌받게 한 사례가 있다.
부천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부패한 과일과 야채를 어린이집으로 가져와 부패한 부분을 도려내고 아이들에게 제공했다. 2012년에는 변색된 쌀을 식자재로 공급하면서 변색된 쌀로 조리한 밥은 보존식(아동에게 식중독 등의 증상이 발생했을 때 역학조사를 위해 아동에게 배식한 음식과 동일한 음식을 냉동 보관하는 것)으로 만들지 말라고 지시했다. 일부 조리사는 2016년 학부모에게 부실급식에 대해 제보했다.
원장은 그 해 개인적 사정과 시설 개보수를 위해 휴원을 통보한 후, 2017년 어린이집을 폐지했다. 원장직을 사임하거나 폐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원장은 책임이 가벼워진다. 피해 입은 아이는 분명 있는데 책임을 물을 원장은 사라져버리거나 책임을 물을 유치원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집단 민사소송으로 끝까지 원장의 책임을 물었고, 결국 2018년 9월, 승소했다.
재판관은 영유아는 사물의 변별 능력과 표현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에게 부당한 일이 있어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거나 표현할 수 없어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육시설 종사자는 음식을 제공하는 경우 영유아의 안전과 위생을 책임져야 하고 영유아의 신체발육과 건강을 도모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부실급식이 영유아의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위법행위이며, 보육을 위탁한 보호자의 신뢰를 깨뜨리고 영유아에 대한 보호 및 배려의무를 위반한 행위라며 직접 피해 아이에겐 각 70만 원, 학부모에겐 4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씁쓸하다. 민사 소송 이전에 가해 원장은 피해 아동과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법으로 처벌받아야 했다. 무려 6년 동안 아이들은 썩은 과일과 채소를 먹었고, 내부 고발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계속 위험한 급식을 먹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원장이 법을 어기고 그 후 자신이 책임을 회피하는 그 긴 시간동안 복지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나.
부실급식의 문제는 어쩌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급식의 가치와 질을 훼손하는 누군가가 있다.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법제도가 없다면, 무수한 개정안은 유명무실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사회의 약자인 우리의 아이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외로울 때가 많다. 사회가 우리 아이를 배려하지 않는 다는 생각 때문이다. 더 이상 복지부는 내부 고발자의 용기에, 혹은 원장들의 선의를 바라서는 안 된다. 개인의 용기나 선의 말고, 원칙적이고 근복적인 장치들로 더 이상 어린이집에서 먹거리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게 해야할 것이다.
아래는 2011년에 개정되고 2012년에 시행된 영유아보육법 제 1조이다.
이 법은 영유아의 심신을 보호하고 건전하게 교육하여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함과 아울러 보호자의 경제적·사회적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영유아 및 가정의 복지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부디 다른 어느 것보다 먼저 보호받아 별 탈 없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날 수 있기를. 그리고 양육자 또한 보육기관을 신뢰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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