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식판전쟁] 급식 비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장하나)
[식판전쟁] 급식 비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정치하는엄마들
비리유치원·어린이집 보다 관리감독 안하는 공무원이 더 나빠
어린이집부터 장애인 시설, 치매요양병원까지 급식 비리는 약자를 노려
돌봄과 살림의 최전선에 정치가 있어... 평범한 엄마들의 식판전쟁 이야기 나눌 터
- 2018년 7월 경북 경산시의 한 유치원은 계란 4개로 계란국 90인분을 만들고, 사과 7개(그 중 3개는 상한 부분을 도려내고 남은 것)를 90명에게 나눠 주었다.
- 2018년 9월 풀무원푸드머스가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우리밀 초코블라썸케이크를 학교, 유치원, 사업장, 지역아동센터 등 190개 기관에 유통시켰고, 2200여명이 식중독 증세를 호소했다.
- 2018년 11월 인천 미추홀구의 한 어린이집이 제공한 텅 빈 식판(물, 밥, 김치 한 조각 등) 사진이 ‘보배드림’에 올라 현장 검증 결과 사실로 확인 되었다.
- 2019년 11월 충북 청주의 한 어린이집에서 4개월 이상 냉동실에 보관한 떡을 간식으로 주고, 쌀 한 줌으로 흰죽을 만들어 원아 20명에게 나눠주는 등 급식 비리가 교사의 제보로 드러났다.
- 2020년 6월 경기 안산시의 한 유치원에서 원아 183명 중 113명이 식중독 증상 호소, 36명 입원 치료를 받았고, 이 중 17명은 햄버거병(용혈성요독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 2020년 7월 제주평등보육노동조합(보육교사노조)은 기자회견을 열어 2019년 11월~2020년 2월에 촬영한 부실 급식 사진을 폭로했다. 노조 측은 ‘평가인증'을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반찬 없이 국이나 물에 밥만 말아서 아이들 점심으로 먹이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 2020년 8월 경기 화성시의 한 유치원에서 원아들에게 탄 밥을 주고, 과일 재사용, 우유 1리터를 5세반 13명에게 나눠 주는 등 익명의 제보가 있어 익일 새벽 학부모들이 유치원을 급습한 결과 급식 비리가 사실로 밝혀졌다. 안타까운 점은 2020년 6월 햄버거병 사태를 겪은 안산 사립유치원 원아 중 상당수가 사건 이후 해당 유치원으로 전원하여 또다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급식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법과 제도만의 문제일까? 처벌을 강화하면 비리가 사라질까? 물론 법제도가 미비하긴 하지만, 법제도가 알아서 비리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법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공무원이라고도 한다. 관할 지역 내에서 급식 비리가 골백번 재발해도 아무런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힘없는 양육자들이 4년 째 비리와 싸우면서 범죄자만큼이나 분노를 느끼는 대상이 바로 공무원이다.
2017년 6월 평범한 양육자들이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을 만들고 처음 관심 갖은 사안 중 하나가 바로 유치원·어린이집 비리 문제다. 같은 해 2월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보도자료를 내고 전국 9개 시·도의 유치원·어린이집 95곳(규모가 크거나 여러 개의 시설을 운영하는 곳 등)을 점검한 결과 91곳에서 부당사용금액 205억을 적발했다고 밝혔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비리 금액은 유치원 한 곳 당 평균 3억4천만원, 어린이집은 6천2백만원에 달한다.
국무조정실이 나서 특별감사도 하고 알아서 잘 하는데 정치하는엄마들은 왜 비리 문제에 뛰어든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감사 결과 교재·교구·식재료 등을 구입하는데 증빙자료(계약서, 세금계산서 등)가 없거나 허위의 증빙자료로 구매한 것처럼 위장하고, 자녀·배우자 등 친인척 명의 페이퍼컴퍼니를 차려놓고, 교구·교재·식재료 등을 일괄 구매하면서 시중 보다 고가로 계약하여 부당 이익을 챙기고, 양육자가 부담한 급식비에서 교직원 급·간식비를 충당하고, 유통기간이 경과한 식재료를 사용할 목적으로 보관했다는데 그런 비리유치원·어린이집이 대체 어딘지는 비밀이라는 거다. 왜? 비리 기관을 공시해야 그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내 아이가 비리 기관에 다니는 지 아닌지 모르고 살라고?
정보공개청구에 비공개 답변을 받고 우리는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당연히 승소했다. 애초에 비리 기관의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며 아이들의 안전권과 양육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 공무원들의 답변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시작부터 유치원·어린이집을 관리 감독하는 교육부, 교육청, 복지부, 지자체 공무원들과 부딪혀 왔다.
급식안전이 전부 비리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연재 첫 회에서 급식 비리를 이야기 하면서 반드시 강조하고 싶은 점들이 있다. 첫째, 급식 비리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이후 유치원 3법이 만들어 졌지만, 급식 비리는 회계장부 상에 드러나기 어려운 비리다. 급식의 양을 적게 주거나 저급한 식재료를 사용해서 원가를 낮추는 것은 피해 아동들이 직접 증언하거나 교사·교직원의 제보가 없으면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본인의 피해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기 어렵고, 인지하더라도 입증하기 어렵고, 양육자는 아동의 2차 피해를 염려하여 기관에 문제제기 하기 어렵고, 만에 하나 양육자나 교사·교직원이 문제제기 할 경우에도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로 역고소를 당하거나 부당해고 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문제제기 하는 사람의 편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즉 공무원의 직무유기가 만연해 있다. 게다가 유치원은 3법이라도 만들어졌지만, 어린이집은 급식 비리가 빈발함에도 법제도 개선이랄 게 없다. 꼭 양육자들이 나서서 소송하고, 국회로 청와대 앞으로 가서 기자회견을 하고, 없는 힘을 쥐어짜야지만 바꾸려는 심산인지 복지부는 복지부동이다.
둘째, 급식 비리는 결코 급식만의 비리가 아니다. 제보든 폭로든 기적적으로 급식 비리가 드러났다면, 해당 기관은 소위 비리백화점일 확률이 99%다. 예컨데 계란 4개로 계란국 90인분을 만든 경북 경산시의 사립유치원은 비리 금액 6억원이 적발되어 2019년 8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아이들의 먹을 것까지 손대는 유치원·어린이집의 소유자라면 그 밖에 저지를 수 있는 비리는 다 한다고 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교재·교구·식재료 리베이트, 방과후강사 리베이트, 친인척 명의로 가짜 교직원 등록해서 급여 지급, 교사·교직원 급여 페이백 등등 급식 비리가 적발 된 기관은 교육과 돌봄의 질이 전반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셋째, 유치원·어린이집 급식 비리는 모두의 문제라는 점이다. 유치원·어린이집이 표적이 되는 이유가 뭘까? 당사자가 피해를 인지하거나 증언하거나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은 유치원·어린이집 뿐 아니라 요양원, 요양병원, 치매 시설, 장애인 시설, 보육원 등 복지 시설들의 공통점이다. 즉 이런 기관들로 나쁜 식재료가 흘러들어가기 쉽다. 게다가 보호자(양육자)와 떨어져 지내는 시설의 경우 유치원·어린이집보다 급식안전이 더욱 우려될 수박에 없다. 지금 급식안전을 바로잡지 않으면 나 자신도 언젠가 급식 비리의 피해자가 된다. 요양원에 갈 나이가 되면 이미 늦는다는 말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여성신문에 급식안전 칼럼 연재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 주제를 급식 비리로 잡은 것은 ’급식도 정치‘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급식만 아니라 매일 우리 입으로 뭐가 들어가는 지 문제가 정치에 달려있다. 내가 먹을 걸 내가 고르는 것 같지만, 어떤 음식·식재료가 유통될 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칼럼이 연재되면서 이러한 주장이 어떤 근거에 따른 것인지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될 예정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양육자들이 정치까지 하느냐?‘는 질문에 ’돌봄과 살림의 최전선에 정치가 있더라, 정치는 단지 육아의 연장선‘이라고 답해왔다. 여성신문을 통해 지난 4년 간 평범한 엄마들이 겪은 ’밥과 정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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