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육 불안이 사교육 풍선효과로... 코로나 시대 '돌봄의 민낯' (이고은)
- 기고=이고은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간한 베이비뉴스가 올해로 창간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아동과 양육자의 권리를 더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요. 각계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베이비뉴스 창간 10주년 기념 연속 특별기고를 통해 ‘육아의 미래’를 전망합니다. - 편집자 말
“엄마, 우리 학교에도 운동장이 있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첫째 아이가 물었다. 몇 달간 미국에서 생활하다 코로나19로 학기 중 귀국해 입학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몇 개월간의 학교생활 중 한 번도 운동장에 나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였기에 마음이 묵직해졌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2020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한창 뛰어놀 나이에 학교 운동장 구경 한 번 못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먹을 수도 없었던 시간. 선생님 대신 컴퓨터 모니터와 마주해야 하고, 국어와 수학은 물론 음악과 미술까지도 온라인으로 배워야 했던 날들.
감염병으로 전 세계가 동시에 멈춰버린 이 기괴하고 음울한 시기에 대해 훗날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 어른이자 두 아이의 양육자로서 막막해지곤 한다.
◇ 교육·돌봄 공백과 여성 고용단절 심화하는 코로나19 시대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교과 학습까지 챙기는 일은 만만치 않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는 것조차 어려운 1학년 아이는 내가 곁에서 학습에 관여해야만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하다.
지난 2일 한국일보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아이들의 학력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교육의 역할이 현실적으로 쪼그라든 상황에서, 특히 저학년의 경우 일과 중 보호자의 유무에 따라 기초학력과 학습 태도 형성에 큰 차이를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분석에 가슴이 턱 막혔다.
돌봄 사각지대가 넓어지고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불안이 강화됨에 따라, 그 여파가 사교육 풍선효과로 나타나는 아이러니가 오늘날 돌봄의 민낯이다.
영유아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바이러스와의 전쟁 이전에 돌봄 전쟁을 치른다. 4년 전 육아로 회사를 퇴사한 내 경우도 어렵게 다시 붙잡은 일의 기회를 뒷전으로 미루는 일이 잦아졌다. 하물며 풀타임 노동자의 경우는 오죽하겠는가.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직장인 2명 중 1명이 자녀의 돌봄 공백 때문에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부모 중 퇴사를 한다면 누가 일을 그만두게 될까. 2018년 기준으로 남성 대비 임금 비율이 65.2%에 불과한 여성들이 일을 그만둘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평상시에도 자녀의 교육과 돌봄, 가사노동을 일임해온 여성들의 부담은 갈수록 중첩된다. 이제는 ‘코로나 블루’를 넘어 여성 자살률 증가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중앙자살예방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각종 자살 관련 데이터들은 여성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여성의 문제는 곧 가정의 문제이자 아이들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병리성을 방증하는 것이어서 미래를 비관케 한다. 교육과 돌봄의 역할이 오롯이 가정과 양육자 개인에만 떠맡겨진 오늘날의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아이 키우는 일에 관한 성 불평등, 양극화, 공공성의 부재 등 각종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 후퇴하는 공교육·공공돌봄… 개인에게만 책임 떠맡기는 구조 벗어나야
지난 14일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보호자 없이 빈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던 10세, 8세 아이들이 라면을 끓이다 화재 사고를 당했다.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끼니를 때우려고 가스 불을 켰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하다.
언론과 여론은 가해자로 양육자를 지목하고 악마화하거나 코로나19라는 초비상상황이 빚어낸 참변으로 단순화하여 소비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이는 교육과 돌봄의 공백 속에서 벌어진 사회적 사건으로,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기보다 우리 사회가 함께 구조적 모순을 내밀히 짚어봐야 할 문제다.
평소에도 허약했던 공교육과 공공돌봄의 체계가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 더욱 무력해져, 사회가 아이들의 생존과 안전을 지켜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성찰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 앞에 눈감고 있다.
지난 6월 국회에서는 그동안 근거 법률조차 없었던 초등 돌봄교실에 관해 규정하는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그 운영 주체를 교육부나 시·도 교육청이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명시해 논란이 됐다.
그동안 코로나19로 등교 수업은 멈췄지만, 돌봄교실은 공공돌봄의 마지막 보루로서 멈추지 않고 문을 열었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 이뤄지는 만큼 엄연히 공교육에서 돌봄교실을 끌어안아야 함이 마땅하다.
돌봄교실 운영 주체가 교육 기관이 아니라 지자체에 맡겨진다면, 교실은 외주화되고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내몰리는 셈이 되어 돌봄의 질이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온라인 수업 시간에 아이가 덩그러니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기차놀이를 배우는 것을 보면서, 학교의 본래 기능과 역할이 절실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학교는 교과 학습 외에도 타인과의 상호작용, 공동체 정신, 사회활동 등 인성교육을 제공한다. 비대면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학교 교육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학교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는, 이 기능을 그나마 유사하게 대체하는 곳이 돌봄교실과 사설학원이 돼버린 게 현실이다. 정책의 모순과 현장과의 괴리를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현실을 바로 보지 않은 채 저출생을 해결하고 포용국가를 만들겠다는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 가족·지역·국가 공동체 모두가 함께 아이 키우는 사회를 향해
아이가 커가는 일은 뭉근하고 끈질긴 양육자의 노동 끝에 이루어진다. 육아의 속도는 세상이 돌아가는 빠른 속도와 달리 느릿하다. 세상의 속도에 맞출 수 없는 양육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도태돼 육아를 전담하고, 사회는 이에 눈감은 채 아이 키우는 일을 가정과 개인에게 온전히 짐 지워왔다.
코로나19는 애초부터 취약했던 이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트리거(trigger)로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2017년 6월 창립한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가족·지역·국가 등 다양한 공동체가 양육과 돌봄의 주체로서 책임을 갖는 미래를 지향한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를 사회적 모성으로 부른다.
사회적 모성이 작동하는 사회라면 양육과 돌봄이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로 소외되지 않고, 자본이 교육과 돌봄을 시장화하거나 양육자를 소비자로만 전락시키지 않으며, 생물학적 엄마 혹은 부모에게만 육아를 떠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국가와 공동체가 개인에게 맡겨진 육아의 책임을 함께 나누고, 자본의 폭력과 무차별 경쟁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는 세상. 그것이 우리 사회가 꿈꿔야 할 육아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꿈의 실현이 3년 전 우리가 뜻을 모으던 때보다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니, 솔직히 지금보다 더 악화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까 두렵다.
코로나19 시대에 육아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지금처럼 현실을 꾹꾹 눌러 담아 쓰는 일부터 정성을 다하고자 한다. 교육과 돌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빈곤한 철학은 당사자의 현실과 현장의 목소리를 성심껏 마주하는 데서부터 극복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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