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어린 제게 ‘네 탓’이라며 학대했던 사람들, 꼭 책임졌으면 좋겠어요”
“어린 제게 ‘네 탓’이라며 학대했던 사람들, 꼭 책임졌으면 좋겠어요”
[토요판] 커버스토리
아동학대 피해 당사자 인터뷰
부모학대 처벌 원한 피해아동에게
경찰·아보전 “너 때문” “맞을 짓”
호소해도 법 보호받기 힘들어
▶지난 6월 초 충남 천안에서 새엄마가 아홉살짜리 아이를 여행가방에 가둬 숨진 사건이 알려졌다. 여론은 들끓었다. 특히 아이가 다쳐 병원 응급실을 찾은 한달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니 아이를 학대로부터 구출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에도 국회 등에서 제도 보완을 위한 입법을 외쳤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보는 시선은 달랐다. 아동보호를 책임질 어른들이 제 몫을 다했다면 아이는 살 수 있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지난 9일 시장과 경찰 등 충남 천안 아동학대사건을 맡았던 관계자들을 고발했다. 장하나 활동가는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며 “이번에는 준호가 세상을 떠나 엄마들만 고발에 나선다. 엄마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이후에는 생존한 피해 당사자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피해자인 아동이 가해자인 부모 등 어른들의 처벌을 법에 호소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단순한 법률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아(가명)씨를 만난 것은 지난 3일 서울 관악구의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의 사무실에서였다. 수도권의 한 중소도시에서 자란 그는 아동학대 피해 당사자다. 엄마의 처벌을 원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피해자가 분명한 폭행 현장에서도 자신을 둘러싼 ‘비행 청소년’이라는 편견과 낙인을 깨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내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학대의 시작은 9살 때였다. 지난 6월 천안에서 숨진 준호와 같은 나이였다. 18살 현아씨에게 준호의 모습은 9년 전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가해자가 친모라는 점만 준호와 다를 뿐 학대가 가정 안에서 벌어지고, 신체·정서·방임 등 학대 유형이 중복돼 있다는 점, 특히 경찰에 신고돼 국가의 보호 시스템 안에 들어왔지만 재학대가 계속됐다는 점 등은 그대로다. 준호처럼 현아씨를 학대하는 핑계도 거짓말이었다. 엄마가 “거짓말이지?”라고 물으면 현아씨도 준호처럼 “네”라고 답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엄마가 원하는 답을 하지 않으면 폭행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화 곳곳에 어른들이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 섞여 들었다.
“엄마가 정말 처벌받길 원하니?”
현아씨가 경찰의 도움을 받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학교 2학년이 돼서였다. 그날도 많이 맞았다. 그리고 집에서 쫓겨났다.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여름이었는데도 통증 때문인지 한기를 느껴 옆 건물로 들어가 계단에 쪼그려 앉았다. 그런 현아씨를 본 이웃이 학대 혐의로 부모를 신고했다.
“정말 처벌을 원하니?”
이웃의 신고 뒤 경찰이 긴급 출동했고, 현아씨는 곧바로 쉼터로 인계됐다. 쉼터에서 진술서를 작성했다. 쉼터를 찾아온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담당자가 처벌 의사를 물었다. “네”라고 답했다. 엄마한테 보복당할까 무서웠고, 두살 터울 동생이 홀로 남겨질까 걱정됐다. 그래도 용기를 냈다. “지금 처벌하지 않으면 파리채로, 배관 파이프로, 효자손으로 닥치는 대로 내리치는 엄마한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가지 질문에 답한 뒤 사진을 찍었다. 현아씨도 보지 못했던 멍이 사진에 담겼다. 엉덩이, 등, 어깨 등 엄마는 주로 보이지 않는 곳을 골라 때렸다.
“엄마가 정말 처벌받길 원하니?”
며칠 뒤 아보전 담당자가 다시 물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을까. 같은 담당자가 쉼터를 방문했다. “마음이 변하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자리를 떴다. 어린 마음에도 경찰은 안 오고 처벌 의사만 묻는 걸 보고 ‘처벌할 수 없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현아씨는 쉼터에 마음을 두지 못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무단외출을 하거나 복귀 시간을 어겼다. 네번째 찾아온 아보전 담당자는 처벌 의사는 묻지 않고, 규정 위반을 이유로 강제퇴소를 알렸다. 그리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엄마를 앞에 두고 그는 “맞은 이유는 너한테 있다”고 했다. “네가 잘못해서 엄마가 때린 것”이라고 반복해 말하면서 “네가 관계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현아씨의 경우 경찰이 현장 출동한 사례이니 긴급성과 위험성이 인정돼 분리 조치 등 사후관리가 뒤따라야 했다. 그런데 아보전은 오히려 현아씨를 탓했고, 경찰은 아예 피해자인 현아씨, 가해자인 엄마 누구도 조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첫 신고 뒤 엄마의 학대 강도와 빈도는 늘어났다. 현아씨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폭행, 절도 등에 연루됐다. 결국 학대를 목격한 어른들이 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현아씨의 삶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두번째 신고는 고1 때였다. 집에 들어가기 전 친구에게 “엄마가 나를 때리면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의 폭행을 본 친구는 112를 눌렀다. 출동한 경찰은 엄마를 따로 불렀다. 몇마디 나눈 뒤 현아에게 다가왔다.
“네가 맞을 짓 했네.”
경찰은 현장에서 ‘판관’이었다. “맞을 짓이라니요.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현아씨가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되물으며 언성을 높였다. “대한민국 경찰은 물론이고 그때부터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현아씨에게 상처를 남긴 건 아보전, 경찰만이 아니었다. 학교는 현아씨의 피해 사실을 몰랐을까. 현아씨는 학교생활 내내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엄마의 학대로 몸의 멍이 사라질 날이 없었지만, 제대로 담임교사와 대화를 나눈 것은 쉼터에 들어간 중2 때였다. 그날 교사는 다짜고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런 곳(쉼터)에 있으면 너한테나 부모님한테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때 그 목소리를 들었더라면
엄마의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보전이나 경찰의 도움 덕분이 아니었다. 경찰이 두번째 다녀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필 그날 반지하인 우리 집 누수공사 중이었”다. 귀가가 늦었다고 소리 지르던 엄마는 벽돌을 집어 들고 현아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피가 흘렀다. 순간 “나한테 왜 이래. 그만해”라고 외쳤다. “죽을 것 같아서”였다. 엄마에게 토를 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엄마한테 “이제 그만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그 뒤로 집을 나와 찾은 두번째 쉼터의 도움도 컸다. “그곳에서 만난 쉼터 선생님은 내 사정을 들어주려 했고, 무엇보다 무슨 말이든 일단 믿어줬”다. “그곳에 간 것은 순전히 운”이라고 했다. 현아씨는 변했다. 점점 엄마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게 됐다. 외부의 적절한 개입이 학대의 고리를 끊은 것이다.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가 편안해지면서 현아씨는 점점 과거에 “다 너 때문”이라고 말했던 이들을 떠올렸다.
“꼭 책임을 지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현아씨가 유난히 힘줘 말했다. 현아씨는 이제 엄마의 처벌을 바라지는 않는다. 대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던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람들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집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사람들이다. 첫번째 신고에서 경찰이, 아보전이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더라면 현아씨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숨진 준호는 살 수 있었을까.
하어영 기자
엄마의 학대로 가방 안에서 숨져간 아이가 살던 천안의 한 아파트 상가에 추모공간이 꾸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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