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권 무너진 어린이집...그 교사가 죽음으로 말한 것 (문경자)
인권 무너진 어린이집… 그 교사가 죽음으로 말한 것
- 기고=문경자
[창간 10주년 특별기고 ‘육아의 미래’⑨] 문경자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운영위원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간한 베이비뉴스가 올해로 창간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아동과 양육자의 권리를 더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요. 각계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베이비뉴스 창간 10주년 기념 연속 특별기고를 통해 ‘육아의 미래’를 전망합니다. - 편집자 말
2002년 어느 봄날, 두 아들의 엄마이자 전업주부였던 내 눈에 문득, 우리 애들 또래의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 예뻐 보이고, 다 사랑스러워 보였다. 어릴 때부터 동네 아이들 돌봐주며 놀던 기억이 났다. 아이들과 관련한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과 후 아동을 돌보는 일에 관심이 가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방과 후 지도사’라는 직업이 없었다. 아이 돌봄을 하려면 보육교사 자격증도 있어야 했다. 그렇게,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2004년 봄, 보육교사로서의 나의 삶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삶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나는 잘하고 있는 교사인가, 내가 하는 교육이 바른 것인가란 물음표를 17년째 던지면서 말이다.
최근 2주간 두 가지 사건을 접했다. 울산에서 연달아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과, 세종에서 아동학대 의심을 받고 결국 세상을 등진 보육교사의 사건. 두 사건 모두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아 뭘 말해야 할지 몰랐다. 가슴 아프고, 눈물 나고, 기가 막히고, 참담한 사건이다. 지난 2018년 경기도 김포 보육교사 사건이 떠올랐다. 이번 사건을 접하고선, ‘또’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2015년 CCTV 의무 설치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동학대를 예방한다는 목적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아동학대 증거자료로 더 많이 쓰이게 된 CCTV. 생각해 보건대, CCTV 설치로 보육은 더 힘들어지고, 학부모와 간극이 더 커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소통 없이 지내다가 문제 생기면 보육교사부터 의심
어린이집에서는 아동의 나이에 따라 교사 한 사람당 돌봐야 하는 아이들의 수가 다르다. 0세는 3명, 1세는 5명, 2세는 7명, 3세는 15명, 4~5세는 20명을 한 명의 교사가 돌본다. 농어촌이나 탄력보육을 허용하는 곳에선 초과보육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교사 한 명이 돌보는 정원이 2~3명 더 많은 곳도 아직 많다.
2013년, 누리과정이 도입되며 어린이집에 처음으로 ‘보조 교사’라는 직군이 생겼다. 그러나 그 대상은 누리과정 담당 반으로 한정했고, 보조 교사 또한 정부 지원이 아닌, 누리과정 운영비로 채용할 수 있게 열어둔 것이라 실제 보조 교사가 투입된 어린이집은 거의 없었다.
2015년이 되어서야 보조 교사 제도가 확대 시행됐고, 지금까지 늘어나고 있지만, 반당 한 명 의무 배치가 아니기에, 3개 반에 한 명, 2개 반에 한 명으로 투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도 보조 교사 투입으로 보육 현장, 많이 유연해졌다. 보조 교사가 담임의 업무를 보조하며 담임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시간을 확보해준 셈이다. 보조 교사가 한 명 이상 반에 투입된다면, 담임 교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으리라 본다.
어린이집에서 ‘인권보육’, ‘살아 숨 쉬는 보육’, ‘아동 권리’, ‘아동 관점’ 등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이건 사실 어린이집의 근본 철학이어야 하는데, 그동안 아동 인권을 말할 수 있는 어린이집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적어도 3년 이상을 다니기 마련이다. 이곳에서 생애 첫 선생님도 만난다. 선생님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아이가 입소하면 선생님은 적응 기간에 아이의 습관, 행동, 언어표현, 사회성 등을 관찰일지에 꼼꼼히 기록하고, 보호자와 상담하며 아이의 교육 방향을 맞춰 간다.
그런데, 이 과정을 놓치고 지나가는 어린이집이 의외로 많다. 하더라도, 담임교사가 아닌 원장님과 상담 후 끝내는 곳도 많다. 교사-보호자-기관과의 협력이나 합의 없이 그저 아이 하나 맡기는 경우가 태반이고, 지속해서 소통하기도 힘들며, 온라인 알림장 하나로 끝내는 경우도 많다. 기본적인 합의도, 소통도 없이 지내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신뢰하며 다가오기보다, 의심하고 불만부터 쏟아 내는 경우도 많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학부모의 민원을 제일 무서워한다. 민원은 곧 신뢰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아동 퇴소로 이어지며, 결국 교사는 퇴사로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운영에 아동 한 명 한 명은 곧 수익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교사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이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아동의 보육료로 교사의 급여를 주는 시스템이라 한 명이라도 퇴소하거나 정원미달이 되면 운영에 바로 타격을 입는다. 이 운영난을 수습하는 첫 번째가 바로 교사가 설 자리를 없애는 것이다.
이렇게 보육교사의 기본 노동권이 지켜지지 않는 어린이집에서, 사명감과 교육철학을 논하며, 보육교사에게 아동 인권을 보장하라는 주문을 할 수 있을까?
◇ 보육교사 노동권·인권 살아나면, 아이들 ‘인권보육’으로 되돌아온다
세종시 보육교사 사건은 해당 교사의 노동권과 더불어 인권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동을 학대했다는 의심을 받은 교사, 학대 정황이나 단서나 증거가 없어 결론 난 문제를 두고 보호자가 어린이집에 찾아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욕설하고, 지속해서 악성 민원을 넣었다.
교사는 이런 폭력에 시달리다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2년 전 김포의 보육교사는 맘카페에서 신상이 ‘털리고’, 그게 온라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상황은, 보육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교사 상담 전문 밴드'에는 학부모 민원으로 사직했다는 글, 아동학대로 의심받다 수사받은 후 무혐의가 밝혀져도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못 받고 그만뒀다는 이야기도 종종 올라온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뭐가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손봐야 하는지를….
보육교사는 자신의 보육 철학을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동료들과 소통해야 한다. 전문가에게 재교육을 받으며 스스로 철학을 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시간조차 가질 수 없다.
보호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나아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육교사라면 다 아는 현실적인 문제다. 사건이 생기면 대안을 제시하며 끝나야 하는데, 결국 또 제자리다.
보육교사-보호자-원장이 수평적 관계를 유지할 때, 보육교사의 노동권을 지키고, 보육교사의 인권이 살아난다. 그게 결국 아동의 ‘인권보육’으로 되돌아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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