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선생님 속눈썹 떼세요" 외모 민원 시달리는 보육교사
"선생님 속눈썹 떼세요" 외모 민원 시달리는 보육교사
- 권현경 기자
화장·머리·복장 지적 학부모 민원… '카톡' 보며 사생활 언급도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어린이집 선생님이 속눈썹이 너무 길다. 당장 떼고 와라.”
“머리는 왜 검은색이 아니냐, 어둡게 염색해라.”
“왜 매일 치마를 입고 다니냐.”
보육교사 A 씨가 학부모로부터 항의받은 내용이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달 24일 ‘어린이집교사 상담전문’ 네이버 밴드(BAND)와 페이스북 ‘영유아교육 꿀팁 그룹-보육교사 유아교사 모여라’ 페이지 등 보육교사 커뮤니티를 통해 학부모 민원·폭언·폭력에 관한 경험을 조사한 것 중 일부다.
A 씨는 지난 3일 베이비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주임교사로부터 학부모 민원 내용을 전달받고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아이들한테 소홀하게 대한 것도 아니고 겉모습을 가지고 민원을 제기했다는 데 대해 억울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A 씨는 “주말 오후에 (학부모가) 카카오톡으로 ‘프로필 사진 남자는 누구냐, 남자친구냐?’고 묻기도 했다"며, "이런 건 과도한 사생활 침해이지 않으냐”고 말했다.
A 씨의 사례뿐 아니라 보육교사들이 학부모를 통해 받은 외모나 사생활 관련 민원사항은 다양했다. ‘어린이집교사 상담전문’ 밴드 운영자인 문경자 보육교사는 지난 6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이 또한 학부모 '갑질'의 한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문 교사는 "보육교사의 외모와 신상과 관련한 민원이 학기 초에 많이 제기되는 편"이라면서 "예쁘고 뚱뚱하지 않은 선생님, 액세서리 안 하고, 특히 영아반 교사의 경우 화장을 안 하는 교사를 선호하는 등의 사례에 대해 상담을 진행한 일이 많다"고 말했다. 문 교사는 본인 역시 머리 염색과 관련해 학부모로부터 지적받은 경험이 있다.
문 교사는 “부모들이 정해놓은 교사상에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교사에 대해 직접 민원을 제기한다"며, "부모가 생각하는 '단정하지 않다'는 기준도 모호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학기 초 보육교사 외모·신상 관련 민원 제기 많아”
휴대전화 사용이 급증하면서 카카오톡 등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외적인 시간에 전화나 카카오톡 메시지로 문의하는 경우가 많아 어린이집에서는 가능한 한 교사 개인 휴대폰 번호를 노출하지 않은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학부모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의 경우, 교사 휴대폰 번호를 학부모에게 공개하기도 하고, 어떤 학부모는 원 방침과 관계없이 연락처를 요구하기도 한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의 입장은 어떨까. 원장들도 교사의 외모나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민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어린이집 원장 B 씨는 지난 9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교사 외모와 옷차림, 신상 관련 민원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깜짝 놀랐다.
“모든 권한을 학부모가 가지고 있다고 하는 시대 상황인 것은 맞지만 (교사에게도) 최소한의 권리라는 게 있다”며 “(외모와 사생활에 대한 민원이) 보편화된 지적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B 씨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경우 교사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키즈노트로 공지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다른 어린이집 원장 C 씨는 같은 날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교사 휴대폰 번호를 노출하지 않고, (학부모가 교사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불편하고 언짢은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C 씨는 “보육하는 데 지장 없는 의상이라면 문제가 없다”면서도 “교사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아이들의 피해와 견줘보고 여지가 있다면 어린이집에서 중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부모 당사자의 입장은 어떨까.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부모가 교사의 옷차림이나 외모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긴 손톱이나 진한 화장 등으로 인해 아이에게 해가 된다면 좀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 공동대표는 “교사의 사생할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선 분명 반대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아이 보육과 관련해 문제가 없는 선에서 원장이 관리자로서 역할을 잘 해주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사업주, 건강한 일터 조성 의무 있어… 감정노동 측면 봐야”
원장과 학부모는 원장 역할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학부모가 과도하게 교사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적정선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
박공식 이팝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는 10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감정노동자 측면에서 보면 보육교사는 늘 관찰당하고 있다"며, "학부모들은 보육이나 교육 이외에는 관찰하고 참견하려는 욕심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 노무사는 “사업주의 노동자에 대한 안전배려 의무가 강화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업주인 원장이 교사가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이는 노동자의 건강권과 맞닿아 있다는 게 박 노무사의 설명이다.
박 노무사는 “(학부모의) 과도한 시선은 일터 환경을 건강하지 못하게 한다. 사업주가 노동자의 건강한 일터 환경조성을 살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입학 초기 어디까지 부모 개입이 가능한지 교육을 통해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박 노무사는 "우리 사회의 노동 보건안전 감수성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고, 우리 사회에서 감정노동자 보호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이 같은 민원 사례를 바탕으로 감정노동자인 보육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부모 갑질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오는 12월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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