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이가 중심이 되는 돌봄을 원한다 (김윤슬활동가)
[기고] 아이가 중심이 되는 돌봄을 원한다
▣ 김윤슬활동가
초등학교 교사들의 학교에서 돌봄 기능을 분리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과 보육 영역은 엄연히 다르고 물리적 공간만 대여하겠다는 초기의 구상과는 달리 돌봄에 대한 역할이 교사에게 슬금슬금 넘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교사들의 주장은 최근 코로나-19사태로 인해 맞돌봄이 불가능한 가정을 중심으로 긴급 종일 돌봄의 수요가 높아지고 여기에 교사가 투입되자 그 요구는 정점에 달한 듯하다. 교육부는 5월 19일 초등 돌봄 교실 및 방과 후 교실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하고자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추진에 앞서 입법예고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교육부의 입장은 단 이틀 만에 교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서 철회되었다. 이 과정에서 돌봄의 당사자인 양육자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노력은 한 번도 없었다.
초등 돌봄을 둘러싼 갈등을 바라보는 양육자의 입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일선 교사들의 노고도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그 착잡함은 더 크다.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단시간 안에 온라인 수업도 준비하면서 주 몇 회의 등교 수업도 함께 소화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이를 첫 등교 시키는 날 일정한 간격으로 거리를 두고 아이들의 등교 지도를 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러나 양육자로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현장에서 보이는 교사의 모습과는 달리 교사조직에서 공식적으로 내놓은 입장에는 아동의 이익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금번 교육부의 입법안에 대해 교사노동조합연맹에서 내세운 구호에 "아이 돌보미를 위한 도우미"라는 표현을 썼다. 아동 돌봄을 바라보는 교사의 차가운 시선에 대해 양육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교조에서 주장하고 있는 보육과 교육의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 앞에 왜 그게 아동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만약 그 주장이 있었고 논리가 납득되었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교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답을 찾았을 것이다.
사실 이런 교육과 보육을 가르는 해묵은 논쟁은 초등학교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로 유아교육계에서 오랫동안 치열하게 반복되어왔던 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유보통합) 논쟁이 있다. 이 논쟁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침표가 찍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각 정권 별로 논쟁의 양상은 조금씩 다르나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행태는 부처 간(보건복지부vs교육부) 혹은 단체 간(유아교육 단체vs보육단체) 힘겨루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결국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양육자와 아이들이다. 양육자의 선택지를 빙자한 불평등성이 가장 크다. 통합 누리 과정으로 격차가 많이 해소되었다고는 하나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교사들의 근무 환경과 처우는 여전히 다르고 그에 따라 돌봄의 질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불안 속에 양육자들은 매년 아이가 5세가 되면 반복인 질문을 한다. “지금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는데 유치원으로 꼭 갈아타야 하나요?”
초등학교에서 교육과 보육의 분리 논쟁으로 또다시 가장 피해를 보는 것도 아동이다. 그 어떤 부처에서도 책임감 있게 초등학교 돌봄을 다루지 않는 사이 돌봄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고 돌봄 전담사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돌봄 교실로 아이들을 등교시켜야 하는 양육자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시대가 변한만큼 이제는 일선 초등학교에서도 돌봄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양육자 입장에서도 학교에서 돌봄 기능을 유지해주기를 바란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익숙한 공간이면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시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사들이 돌봄 기능을 추가로 안으며 소진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누군가의 양육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일까? 교사가 더 이상 교육-보육이 분리가 가능한가 하는 철학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에 목소리 내지 않고 아동의 돌봄 환경과 돌봄 전담사의 처우개선에 목소리를 함께 내어주기를 바란다. 교사와 돌봄 전담사 모두 아이를 잘 키우자고 존재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