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언제까지 이놈의 '존버'로 돌봄을 해결해야 하나 (윤정인활동가)
언제까지 이놈의 '존버'로 돌봄을 해결해야 하나
- 윤정인 칼럼니스트
[엄마과학자 생존기] 코로나 시대 일-가정 양립은 가능한가
'코로나' 시국에도 유치원은 여름방학을 했었다. 코로나가 아무리 심각해도 학사시계는 돌아가긴 했다. 사실 방학은 당연한 아이의 일정 중 하나다. 매일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일상의 파괴를 선물하는 방학! 공식적으로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방학! 얼마나 아이가 좋아하겠는가.
유치원의 방학은 순식간에 정해지지 않는다. 방학기간에 대해 부모에게 설문조사를 받는 시기는 대략 방학 하기 두어 달 전이다. 과거와 달리 양육자들의 직업군이나 아이가 놓인 환경이 다양해지면서, 유치원에서는 돌봄 수요라는 것을 조사하기 위해 두어 달 전 설문을 통해 돌봄이 필요한지 묻곤 한다.
만약, 내가 과거처럼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그 설문조사는 공포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공포의 시간이 되는 이유가 있다. 돌봄공백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보통 2주의 방학기간은 나름의 구성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방과후 돌봄이 가능한 일주일과, 완벽하게 유치원이 문을 닫는 일주일, 이렇게 구성된다. 즉, 일주일은 휴가를 쓰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데, 나머지 일주일은 뭘해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휴가를 쓰지 않는 일주일, 즉 방과후 돌봄이 가능한 일주일 동안에는 급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양육자들은 꼭두새벽에 도시락과 오전·오후 간식을 챙겨서 보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수면시간을 갈아넣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일주일인 셈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돌봄이 제공되지 않는 나머지 일주일이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연 2회 벌어지는 이 이벤트에, 일하는 연구직 양육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다. 아이의 일주일 스케줄에 맞춰 휴가를 내거나(사실 불가능하다), 돈을 왕창 들여서 일주일 단기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이다.
단기 베이비시터를 정부 아이돌봄서비스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약 한 달 전에 신청해야 그나마 매칭이 가능하다. 물론 '가족돌봄 찬스'를 사용할 수도 있을 테지만, 우리의 경우 타지역에 계시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아니, 억지로 쓴다면 쓸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평범한 시기가 아니란 것에 있었다.
◇ '코로나' 시국에도 유치원 시계는 돌아간다
그렇다. 지금은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시기이다.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상시 소독을 하며, 타 지역이나 해외로 나가는 것을 격하게 자제하고 있는 시국이라는 매우 어려운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이다.
하여, 매번 적절한 선택지로 활용하던, 돌봄 서비스를 신청하지 못했다. 아니 신청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만나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는 동선을 최소화 하고 만남 역시 최소화 해야 한다. 그런데 돌봄 서비스를 신청하면, 우리는 기존에 알지 못하는 만남을 일주일간 지속해야 한다는 변수가 발생한다. 특히 아이는 하루 종일 만나야 하는 사람이 추가되는 것이므로 이 변수는 위험하다 판단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우리가 휴가를 낼 순 없었다. 나는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무실에서 해야 하는 업무가 있었고, 신랑 역시 휴가를 낼 수 없었다. 그놈의 실험스케줄이 휴가와 전혀 맞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를 친정에 맡길 수는 없었다. 역시 동선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친정에 맡기는 경우, 아이는 감염병 시국에 맞지 않게 지역을 넘나드는 새로운 동선이 발생하게 된다. 역시 시국과 맞지 않았다.
여러 고민 끝에, 우리는 결국 아이 방학 2주 동안 전부 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일주일간 아이를 등원시키자니, 내가 도시락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 아빠가 육아를 함께한다고 해봤자, 어차피 밥 차리는 건 내 몫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차리고, 또 돌아서면 밥 차린다는 뜻의 신조어) 하는 것도 환장하겠는데, 유치원에 보내는 것까지 만들고 싶지 않았다.
◇ 땡그리와 함께 출근한 일주일… 아이는 좋았다는데
아이돌봄은 결국 내가 떠맡기로 했다. 남편은 휴가가 없고, 상대적으로 나는 창업을 한 입장이라 시간 안배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창업을 한 이유가, 엄마이고 과학자이고 싶어서였던 것은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돌봄이 나에게 쏟아지는 현실은 참… 그랬다.
무언가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참 묘했다. 결국 창업이라는 막다른 골목까지 와야 돌봄이 가능하다는 현실, 그리고 그 막다른 골목까지 가는 건 결국 엄마인 나구나, 싶어서 기분이 참 묘했다.
묘한 현실 중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내가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료와 둘이 사무실에서 대부분 서류작업을 하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
또한 동료 역시 아이 엄마인 덕에, 나는 아이를 돌보가 훨씬 수월했다.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거는 대신 이모를 엄청 찾아준 덕분이었다.(이 대표님, 감사합니다.)
아이는 일주일간 즐거웠다고 했다. 엄마 회사에 자기도 출근을 했고, 명함 파달라는 헛소리도 했고(꿈도 야무져라. 절대로 안 된다 이눔.), 우리 사무실이 오피스텔이라 신발 벗고 놀 수도 있었고, 이래저래 아이는 즐거웠다 했다.
엄마 회사에서 자유롭게 놀고, 먹고, 유튜브도 실컷 볼 수 있었던 것이 아이에겐 정말 큰 메리트였을 것이다. 유치원에 있다가 태권도를 배우러 가지 않아도 되고, 엄마와 이모와 하루 종일 있는 것에 아이는 행복해했다.
물론 땡그리의 일주일 회사 출근 덕에 우리는 아이의 컨디션에 맞춰 움직이느라 그렇게 많은 업무를 진행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천천히 일을 한 만큼, 아이는 즐거웠으니 사실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 버틸 수 있는 환경에 놓인 것만으로도 '행운'인 건가
코로나 시대를 맞아 많은 아이들이 기관에 가지 못했다. 기관에 거의 나간 적이 없는데 방학을 했고, 방학 덕에 많은 부모들은 또 재택근무를 하거나, 긴급돌봄을 이용하거나,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물론 초기처럼 아예 '멘탈'이 날아가지는 않아서 다들 방법은 강구했을 것이다.
어떤 연구에선 이런 언급이 있었다. 재택근무를 할 때 아이는 부모를 대략 15분마다 방해했고, 아이들이 가장 조용히 있었던 시간은 밥을 먹는 두 시간이었다는 웃지 못할 연구 결과였다.
재택근무는 아니었고 아이와 함께 출근을 해본 입장에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는 10분에서 15분 간격으로 "엄마 이거 알아요?" 내지는 "이모 이거 알아요?"를 외쳤고, 우리는 거기에 대꾸를 해줘야 했다. 집중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나마 이 시국에 내가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위안을 삼고 버티는 중이다. 다행히 사무실이 있고,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상황이며, 일단 잘릴 위험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환경에 놓인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태로 인해 원래도 부족했던 공적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 것은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의료진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금방 무너졌을 감염병 시대의 의료현장이며, 돌봄이 멈추자 노동까지 멈춘 현실.
결국 공적 시스템이 부족했던 의료계며 돌봄영역이며, 모두 개인들의 헌신과 봉사정신으로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씁쓸하다. 우리는 이 시국이 지난 후에도 공적돌봄, 위기상황 속 노동의 유연성, 심각하게 부족했던 공공의료 시스템의 뚫린 구멍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도 감염병은 계속될 것이고, 언제까지 개개인의 능력으로 '존버' 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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