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상이 소중하지 않아서 기꺼이 포기한 게 아니다 (윤정인활동가)
일상이 소중하지 않아서 기꺼이 포기한 게 아니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엄마 과학자 생존기] 아이들 보기에 참 부끄러운 어른들
지난 여름, 코로나가 슬며시 잠잠해지는 듯했다. 내가 강의를 맡은 학교에선 2학기엔 온라인 수업 대신 대면 수업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도 예정대로 개학한다고 했다. 휴원까지 해야 하는 거대한 집단 감염이 없어서, 드디어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코로나에 적응하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상황이 무섭게 급변했다. 그 시국에 집회가 있었다. 자기 신념 지킨다고 코로나 팬데믹을 무시한 집단의 무모함은 결론적으로 많은 이들을 위험에 빠트렸다.
우리 가족은 코로나 재확산 방지에 동참하려고, 광복둥이었던 신랑의 생일 기념 가족여행도 포기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 엄마도 못 만나고 있다.
◇ 코로나보다 이젠,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
초기 코로나 집단 발병은 그저 안타까웠다. 처음엔 독한 감기 정도로 오해받았던 코로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위험성을 심각하게 인지하지 않았던 탓에, 무지와 안일함이 트리거가 되어 퍼져 나갔다. 시간이 흐른 후엔 저임금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했던 배경도 깔렸다. 안타깝고 슬프기만 했던 시국이었다.
무엇보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 땡그리는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땡그리는 지역 거점 병원에서 성장 추적 관찰 중이었다. 검사상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몸무게가 늘지 않는 특이체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초 우리는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우리가 방문해야 하는 병원이 바로 감염병 거점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역 거점 병원은 옆 광역시였기 때문에, 지역을 이동하여 진료를 본다는 것이 이 상황에선 너무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3월에 받아야 했던 진료를 미루고 미루어 상황이 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다. 종식까진 아니어도, 그래도 어느 정도 발병률이 줄어 든다면, 그때 병원에 가는 것이 그나마 안전할 것 같단 생각에서였다.
결론적으로 땡그리는 올해 성장 추적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동네 작은 소아과에서 받은 영유아검진이 올해 아이의 성장 검진 마지막이 되었다. 안 그래도 병원 부족한 동네, 감염병 거점 병원이 곧 지역 거점 병원이 되는 현실…. 감염병 때문에 진료를 꺼리는 웃기는 상황이라니.
머리론 잘 안다. 마스크 잘 쓰고, 손 잘 씻으면 괜찮다고. 그런데 이런 소소한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무섭다. 8월 집회가 아니었다면 신경도 안 썼을 것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걸 깨닫자, 아이 데리고 어디 간다는 게 공포스러워졌다.
◇ 소풍도, 선물도, 추억도 모두 사라진 일곱 살
3단계 거리 두기가 절대로 아니라고는 하지만, 같은 주민등록지가 아닌 사람들은 다섯 명 이상 만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서울이 고향이고, 형제만 4명이라, 출가한 직계 가족이 모이면 5인은 거뜬하게 넘겨버리는 친정집은 첫 손자의 유치원 졸업에 맞춘 식사를 포기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집에 있어야 하는 어린아이 두 명을 위해 만나는 자리였으나, 상황이 점점 나빠져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는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도, 초등학교 예비 소집일도,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와 삼촌의 소박한 선물 증정식도 날려버렸다.
내가 강의를 맡은 학교의 모든 수업은 전면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나야 온라인이 익숙한 사람이라 괜찮지만, 화상회의 앱으로만 만나야 하는 아이들이 짠하다.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땡그리 모습이 딱 저럴 것 같아서.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행동은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의 일상도 파괴했다. 대학교 1학년에나 누릴 수 있다는 캠퍼스에 대한 설렘은 저 멀리 사라졌다. 낭만의 대명사 캠퍼스 잔디밭 맥주 한 캔도 할 수 없고, 동기 모임도 동아리 모임도, 대학축제도, 체육대회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이런걸 경험하지 못한 올해 신입생들은 내년 3월에 선배가 된다.
유치원생이라고 다르지 않다. 올해 유치원 졸업반인 땡그리는 소풍도 못 갔다. 사진도 못 찍었다. 졸업앨범도 유치원 실내 촬영으로 모든 걸 대체했다. 제일 좋아하는 숲 체험도 박탈. 숲 체험도, 소풍도 없어지니 엄마 아빠 숙제가 늘었다. 식물과 곤충이 싫어서 화학과에 진학한 엄마 아빠에게 텃밭을 키우라는 강제 미션이 주어졌다. 땡그리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 텃밭…죽었다.
그래도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원래 아이는 격주로 유치원엘 갔어야 했는데, 다른 엄마들의 배려로 맞벌이 가정 자녀만 매일 등교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엄마들 배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이 데리고 출근해 아이에게 게임기나 패드를 쥐여주고 비대면 강의를 해야 할 뻔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땡그리는 기초체온이 높다. 내부 에너지가 많은 건지, 활성화 에너지 방출이 높은지 오후 시간이면 항상 체온이 높게 측정됐다. 특히 뛰어놀고 나면 늘 열이 높았다. 이런 아이의 특징이 코로나 전엔 전혀 문제가 안 됐으나, 지금은 문제가 된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아이들 체온은 37.5도 이하로 유지돼야 한다. 그 이상이라면 30분 후 재측정하고, 그래도 떨어지지 않을 때 격리 후 보호자의 인계를 받아 귀가해야 한다. 귀가 후 아이 체온을 체크하며 발열이 의심될 때 선별 진료소에 가는 것이 현재 규칙이다.
그런데 이 규칙엔 간과된 것이 있다. 사람은 모두 기초체온이 다르다. 나와 아이는 기초체온이 높은 편이다. 컨디션이 좋은 날 아이 체온은 37.7도 정도 측정되는데, 이게 이 시국에선 하원으로 이어진다는 거다.
◇ 내가 기꺼이 양보한 일상을 누군가 무시하고 짖밟는다
결론적으로, 아이를 일단 유치원에 보내는, 프리랜서 과학자이자 스타트업 창업자인 내 입장에서는, 아이를 위한 5분 대기조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언제나 아이를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강의할 때도, 외부업체와 미팅할 때도 나는 늘 핸드폰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는 것, 잘 안다. 일괄적인 지침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그런데 역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말이 좋아 5분 대기. 아이 유치원과 내 사무실은 차로 35분 거리다. 거리로는 25km 정도. 연락받고 바로 간다고 해도 멀다.
그렇다고 언제든지 아이를 바로 데려가기 위해 그 주변에서 대기할 수도 아니고…. 하지만 앞으로도 감염병은 계속될 것이란 전제를 두고, 기초체온 이슈는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 아닐까.
결혼식과 여행을 포기하고, 0세 아이들조차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잘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세상, 7세 아이는 집 안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며 양팔을 벌린 뒤 손이 닿지 않게 떨어져 앉아야 한다고 부모를 도리어 가르치는 세상에서.
코로나는 조작이고, 음모라고 주장하면서도 감염된 후에 세금으로 치료받고 나가신 ‘그 분’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 스스로 제대로 된 어른인지 고민해보면 어떨까.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보기 부끄러워야 하는 게 아닌가?
올초만 해도,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이젠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려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분노를 보내고, 다른 사람 탓을 하고, 혐오까지 한다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변할 것도 아니고, 없어질 것도 아닌 시국이다.
그래서 더 화가난다. 한쪽에선 일상을 기꺼이 포기하는데, 타인이 포기한 일상의 소중함을 너무 쉽게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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