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저널] 아동학대, 살아남은 아이를 지키려면 (최미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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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살아남은 아이를 지키려면
- 최미아 울산부모교육협동조합 이사장
몸의 이상으로 2주간 쉬면서 치료에 집중하느라 전화와 SNS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동안 여러 언론사에서 연락이 왔고 어떤 언론사는 하루 동안 수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반복된 아동학대 사건에 반복된 시민단체 입장을 묻는 인터뷰 요청이 대부분이었다.
양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고 방송에 아이의 이름과 얼굴, 가해 부모가 공개되면서 분노 여론이 들끓었다. 경찰은 아이가 사망하기 전까지 3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양부모에게 돌려보냈다. 사실이 알려지자 양천경찰서장과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게시 하루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방송에 출연하는 여러 유명인은 ‘정인아 미안해’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가해 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법원 진정서를 보낸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대책을 논의하는 간담회가 열렸고 아동학대를 전담하는 기관 담당자는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각 부처와 지자체의 무관심, 무책임, 미흡한 제도, 부족한 예산이 얽힌 다양한 문제에 어쩔 도리 없이 허술한 법과 제도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죽은 아이 이름으로 만든 기회를 빌려 묵혀둔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고 개선을 요구하기를 반복했다.
국회에선 근본적인 대책 없이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수십 개 심사됐다가 비난을 받았다. 본회의에서는 아동학대 신고 즉시 조사 착수를 의무화한 아동학대범죄처벌법 개정안과 친권자가 아동의 보호나 교양을 위한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을 삭제해 부모의 자녀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민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공분은 수년간 미뤄졌던 아동학대범죄처벌법을 단숨에 통과시켰고 가해자에게는 아이가 생전 겪었던 학대에 상응하는 처벌이 내려지길 바랐다. 공분이 만든 관심의 지속성은 길지 않다. 아이의 이름과 얼굴이 노출되는 기사와 개인 SNS의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 게시물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이유는 반복되는 아동학대의 순환과정 같아서다.
사망 전 어린이집 CCTV를 통해 본 아이는 늦은 시간까지 어린이집 교실에 혼자 남아 별다른 움직임 없이 문 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영상을 보며 울고, 일상생활에서 떠올리며 또 울었다. ‘대리외상증후군’을 겪고 있다는 사람도 여럿 있다. 아동학대가 세상에 알려지고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은 잔인하고 혹독하다. 제도를 개선하고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아이의 이름을 빌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아이가 상해를 입거나 죽어야 아동학대라는 인식, 정서적 학대는 학대 축에도 못 끼는 현실, 관심 없이 방치되는 법과 부족한 예산, 전문성은 부족한데 책임만 무거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과 그들이 업무 중 겪는 폭언과 폭행, 명백한 아동학대를 확인하고 학대 부모와 아동의 분리를 시도하다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으로 고소당하는 학대전담경찰관, 분리 후 아이를 보호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쉼터와 지켜지기 어려운 아동인권, 원가족 회복을 위한 예산과 사례관리 인력 부족. 이 모든 문제가 죽은 아이의 이름으로 공분에 밀려 단숨에 해결될 일이었다면 서현이, 은비, 원영이에 이어 정인이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최미아 울산부모교육협동조합 이사장
출처: http://m.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61819042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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