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엄마 과학자 창업 도전기] COVID-19, 재택근무 그리고 돌봄 (윤정인활동가)
[엄마 과학자 창업 도전기] 9화. COVID-19, 재택근무 그리고 돌봄
종합 땡그리엄마
폭풍 같은 2월과 격동의 3월을 보내고 있다. 내가 창업을 선택해야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다가왔다. 아이의 유치원 졸업과 초등학교 입학이었다. 코로나와 함께한 지난 유치원 생활은, 코로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휴원과 긴급 돌봄, 단축 교육 등이 번갈아 나타나는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유치원에 아이가 등원하면 그나마 사업계획서를 쓰거나 강의를 할 수 있었고, 코로나 확진자가 근처에서 나오면 유치원과 학원은 문을 닫고, 나는 돌밥돌밥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의 현실 속에서 사업계획서를 포기하거나, 비대면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할 일이 증가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창업가의 현실이란, 그저 버티는 것이었다.
나와 동료는 그간 일이 매우 하고 싶었었다. 창업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며 우리는 돈만 생기면 무엇을 할지를 매일 리스트업하고 있었던 터였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지원금을 확인하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발표하는 등의 일상을 보냈었다. 코로나 재유행이 시작되기 전이었고, 그나마 좀 잠잠해질 것처럼 보였던 여름과 가을의 일이었다. 2020년 우리는 총 3개의 창업 관련 정부 지원 사업에 합격했고, 열심히 사업을 수행했다. 그리고 사업이 마무리되던 겨울, 다시 학교+어린이집은 문을 닫아야 했다. 확진자의 수가 크게 감소하지 않았고, 수도권 집중되었던 환자들은 여름 대구를 찍은 이후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도 슬슬 증가추세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들은 코로나로 인해 마인크래프트 장인이 되었다
창업 직후, 첫 번째 제품도 만들고, 제품을 직접 판매해보면서 마케팅도 공부하고, 온라인 판매를 위해 고민하고 고민하며 다음 년도를 준비하기 위해, 달려야 했던 20년 겨울, 드디어 우리에게 코로나로 인한 위기가 찾아왔다. 돌봄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 COVID-19로 나와 동료는 결국 돌봄 공백 절벽 끝에 서야 했다. 나의 창업 반쪽인 동료의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이 장기간 휴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가 다니던 기관은 정상 수업과 긴급 돌봄이 번갈아 진행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아이들을 맡길 차선책이 없는 관계로 기관의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우리도 함께 일을 하고, 휴원이 되면 그냥 재택으로 일을 해야 했다라고 쓰고 사실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초기 창업기업이 재택근무를 하는 경험은 참으로 신선했다. 그리고 다양한 장단점을 경험할 수 있었다.
먼저 장점으론 기름값이 굳었다. 밖에서 먹는 밥값도 줄었다. 즉, 우리가 사업을 위해 창업자가 투자하는 비용이 살짝 줄었다. 운전을 자주 하지 않았으니,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단점으론, 카톡과 전화만으로는 동료와 함께 집중해서 일하는 게 조금 어렵긴 했다. 아이와 하루 종일 대화하는 것이 아닌, 어른과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우울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고 짬짬이 일을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일이 늘어졌다. 처리 속도도 늦어졌고, 한 번에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줄었다. 시간을 내서 일을 하려면 밤이었고, 그렇게 내 잠을 줄이지 않고서는 일을 도저히 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좀 더 일에 집중하기 위해, 아이에게 콘텐츠를 허용하는 횟수가 증가했다. 물론 아이와 정해진 시간 콘텐츠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나의 육아관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에게 게임을 가르친 것은 사실 우리였다. 어차피 게임을 할 것이라면, 부모에게 배우는 것이 낮다는 판단에 가르쳤던 것이었는데, 아이가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나의 죄책감도 늘어났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COVID-19가 대유행하던 작년 3월 실제로 아이들이 부모를 얼마나 방해하는지를 직접 측정한 과학적인 데이터도 존재한다. 아이는 한 시간에 15회 부모를 방해했고, 한번 방해하는 텀은 3분 24초였다고 한다. 아이들이 부모를 유일하게 방해하지 않았던 순간은 본인들 점심시간뿐이었다는 웃지 못할 이 글을 보면, 내가 아이에게 게임을 허용하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절대로 이상한 것이 아님은 분명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은 늘 따라왔다a.
일상의 평온함과 죄책감이 공존하는 묘한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아이에게 콘텐츠 시청이나 혹은 게임을 허용하면, 나는 그 시간만큼을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집중해서 서류를 작성하고 메일을 보내고 일이 약간 마무리가 되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오는 게임 중인 아이의 뒷모습이란, 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일과 아이를 저울질하고 싶지 않아 창업을 선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와 일을 다시 저울질하고 있었다. 아이가 기관에 가지 않고 온전히 나와 함께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일은 일대로 쌓여가고 있었고, 나는 아이에게 계속 방해를 받아야 했다. 불편하고, 또 불편하고... 불편한 마음만 가득한 채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자조하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도 온전히 엄마가 되어 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일을 함에 있어서도 온전히 직장인으로 있을 수 없던 불편한 시간이었다. 이런 불편한 감정은 이미 과거에도 여러 번 겪어 왔다. 무언가 엄마로도 반푼이가 되고, 과학자로도 반푼이가 된 듯한 그 느낌이 참으로 불편했다. 이 느낌을 떨치기 위해 이직을 했고, 창업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돌봄 노동 앞에서는 반푼이었다.
반푼이 엄마지만, 그래도 엄마로 아이를 케어해야 했기에, 우리는 일의 속도를 버렸다. 창업 초기 공격적으로 첫 제품을 팔고, 정부과제에 더 도전을 하고, IR 자료도 만들고 해야 하는 아주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시기였지만, 우리는 천천히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단순한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양육자인 우리가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엄마여도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노라고 큰소리치고 설립을 했는데, 이제 와서 반푼이 엄마 노릇도 못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기조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반푼이 엄마, 반푼이 대표가 되기로 결정했다. 아이와 일을 저울에 놓고 그 무게를 측정하지 않고, 일단 되는대로 엄마로 그리고 가끔 회사 대표로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일을 했다. 모든 일은 각자의 집에서 컴퓨터로 진행했고, 내용 공유는 수시로 카톡과 클라우드를 이용했다. 그렇다고 오프라인 일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꼭 사무실에 나가야 하는 경우라든지, 가끔 서류를 떼기 위해 어딜 가야 하는 일이 생기거나,
혹은 아이들을 떼어놓고 집중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면,
아이들은 우리 집에 혹은 동료의 집에 모이고 둘 중 한 명은 일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삶을 영위했다.
그렇게 천천히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길에 한걸음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느려도 일단 굴러는 가보자란 심정으로 굴러가는 중이다. 그리고 개학이 왔다.
아이들은 무사히 8살 초등학생으로 입학식을 치렀다. 코로나란 특수한 상황에 당장 방과후 수업도 없어서 돌봄교실 + 태권도 학원 + 피아노 학원을 보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깐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획득했고, 그 시간을 후회 없이 사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는 우리가 직장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전 회사가 망하고, 얼결에 창업을 해서 사업주인 입장이 된 덕에, 그나마 이런 상황에 사무실을 나가고 말고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게 어디냐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과거 직장인이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일 아니냐며 말이다.
창업이 말 그대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일반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육아휴직을 쓰거나 쓸 수 없다면 퇴사를 고민했을 이 상황에서, 월급 없는 사업주라는 명분 덕에 커리어를 간신히 이어나가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3월이다. 정부지원과제가 연구재단이건 중기청이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는 이 황금 같은 시기에 우리는 육아도 하고 있다. 몰아쳐도 모자를 판국이지만,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환경에 발걸음을 디딘 아이들의 일상도 소중하기에, 눈물을 머금고 현재에 집중 중이다. 그리고 존버를 꿈꾼다. 일단 버티고 버텨서 이렇게 느리게 가는 기업도 살아남아야 다음 사람들도 우리처럼 느린 양육자 기업을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28422&SOURCE=6&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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