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통령이 알아야 할 학교이야기 3] 대통령님, 초등 돌봄이 왜 '뽑기' 여야 합니까? (김정덕활동가)

 

대통령님, 초등 돌봄이 왜 '뽑기'여야 합니까?

[대통령이 알아야 할 학교 이야기] 공적돌봄 : 학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김정덕(politicalmamas)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2021학년도 신학기 첫 등교가 시작된 지난 2일 오전 대전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입학식이 열리고 있는 모습.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2021학년도 신학기 첫 등교가 시작된 지난 2일 오전 대전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입학식이 열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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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올해 3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시작하자 그동안 기댔던 '공적 돌봄' 고리가 갑자기 툭툭 끊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아이를 학교에 보낸 사람들이 각자도생으로 버티는 걸 지켜보며, '대체 학교에 뭘 기대할 수 있기는 한가?' 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드디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맞벌이로 아이 키우며 삶의 터전을 옮길 때마다 거쳤던 여러 어린이집에서 과도한 학습이나 부실급식 문제 등 이런저런 일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돌봄 걱정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감지덕지한 일이었구나, 하고 쓴 웃음을 짓습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도 생계를 위해 일을 멈출 수 없는 엄마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아이는 적어도 어린이집에서 머물 수는 있었으니까요.
 

개학을 할 수 있기나 한 건지 모든 게 불투명했던 2월, 돌봄교사로부터 아이가 돌봄교실에 배정됐다는 알림이 왔습니다. 그 순간 '아, 아이가 학교를 나와 헤매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겠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여태 돌봄교실 확정이 안 돼 발을 동동 구르는 주변 엄마 아빠들을 보며 씁쓸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정규 수업이 점심시간 전에 끝나고, 돌봄 교실에서 떨어지면 학교에서 가차 없이 '쫓겨나게' 됩니다. 초등학생이 되는 순간 갑자기 보편적 복지로서의 공적 돌봄은 사라지고 뽑기 운에 따른 추첨식 복지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양육자의 홑벌이, 맞벌이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를 보낼 수 있었지만 학교는 양육자의 재직증명서가 없으면 돌봄교실 신청을 아예 할 수가 없습니다. 혹여 조건이 된다 해도 구색만 맞춘 돌봄교실 두세 개로는 돌봄 수요에 턱없이 모자라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중 일부는 학교에서 나가야만 합니다. 즉 초등 돌봄은 선택적 복지보다 더 나쁜 추첨식 복지이고, 양육자가 돈을 벌든 안 벌든 간에 학생은 학교에 있을 권리가 있는데 왜 학생을 내쫓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첫날, 12년 공교육 민낯을 봤습니다

하교 시간이 이른 것도 문제입니다. 현재 학교에는 안전하게 교육 받고 자랄 권리가 부족합니다. 학교에 이제 막 입학한 아이가 교과 시간과 돌봄교실을 이용하고도 오후 5시면 끝나기에 양육자들은 도저히 퇴근 시간을 맞출 수 없어 결국 사설학원을 알아봅니다.

왜 교사들은 학교보다 사설학원을 이용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지, 왜 교사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더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지, 아이들을 어차피 떠날 뜨내기로 보고 밖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근본적인 의문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님, 제 아이의 학교 첫날이 어땠는지 들어 보십시오. 3월 2일, 1학년은 입학식을 마치고 돌봄 교실에 갈 수 있지만, 1학년만 학교급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알아서 해결하고 돌봄교실로 입실하도록 해달라는 문자를 받고 당황했습니다. 8살 아이 혼자 학교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돌봄 교실로 오라는 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가요? 다행히 몇 시간 후에 다시 문자가 와서 입학식 후 돌봄교실로 바로 오는 학생은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라는 문자가 왔지만, 도시락을 들려 보내는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2학년은 급식을 하는데, 1학년은 입학식이라서 급식을 안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도시락을 싸는 불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교가 학생을, 심지어 입학 첫날을 맞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을 얼마나 행정편의주의적인 관점으로 대하는지 경악스러웠습니다.

아이의 입학 첫날, 앞으로 12년간 펼쳐질 공교육의 민낯을 마주한 것 같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1~2학년 돌봄교실 3개 학급 73명의 학생에게 밥 한 끼를 마련하는 게 얼마나 대수로운 일이라고, 급식실에서는 갓 지은 밥 향기 폴폴 풍기면서 1학년 돌봄반 아이들은 도시락을 먹었어야 하는지 상식 밖의 일입니다.

입학 첫날 돌봄교실을 찾아가지 못해 복도에서 1시간이나 울었다는 동료 엄마의 아이 이야기가 사무칩니다. 정규 수업만 끝나면 그 아이는 담임의 학생이 아닌 걸까요? '오후 1시부터는 내 학생이 아니다' 이겁니까? 돌봄교실까지 안내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걸까요?

아이가 어떤 교사를 만나게 될지 설레기는커녕, 어떤 민낯을 마주하게 될지 그저 운에 맡기며 두려워하는 게 공교육의 현실이라니 참담합니다. 엄연히 국민이 낸 세금으로 보듬어야 할 아이들을 '무상교육' '무상급식' 베푸는 양 이름 붙여 생색내는 게 학부모를 호구 취급 하는 거 아니면 무엇입니까? 꼬박꼬박 낸 세금으로 선생님들 월급도 나가고 학교도 운영되는 것입니다. 대체 어디 '무상'이 있습니까?
 

 학교입학 첫날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이 알려주지 않는 돌봄교실을 혼자 찾아가야 하는 혼란스러움과 학교가 돌봄교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만화로 표현한 강미정활동가의 작품
▲  학교입학 첫날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이 알려주지 않는 돌봄교실을 혼자 찾아가야 하는 혼란스러움과 학교가 돌봄교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만화로 표현한 강미정활동가의 작품
ⓒ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활동가  

돌봄은 교육이 아니라고요? 정말 그렇습니까   

대통령님, 아동 청소년들은 전 사회적인 돌봄이 절실합니다. 국가의 공적 돌봄 체계 안에서 학생들 일차적 대면 기관인 학교의 역할은 정말 막중합니다. 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을 말하면서 돌봄을 논외로 할 수 없듯, 그 책임 주체로서 학교 역시 결코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초등 돌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학교에선 돌봄 신청자가 적다고 말합니다. 학교가 돌봄을 외면하고 배척하는 동안 초등 돌봄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고, 양육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교육 시장과 학원 뺑뺑이에 의존했습니다. 즉 초등 돌봄 신청자가 적다는 것은 학교와 교사들이 제 얼굴에 침 뱉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초등 돌봄을 지자체가 운영하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자체가 운영해야 돌봄의 질이 나아질 거라고 하는데, 교육당국과 학교와 교사들이 스스로 무능함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국가는 국민의 필요에 의해 학교를 짓고 교사를 고용한 것입니다. 교사가 학교의 주인 행세를 하고 학생을 나가라 말라 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하교시간 연장 반대하고, 돌봄교실을 지자체로 이관하라는 교원단체들 입김에 교육당국과 정부가 끌려다니느라 피해는 결국 학생들만 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정규수업 외 스포츠클럽이나 예술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독려하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한국처럼 사교육이 잘 돼 있는 나라도 없다며 민간 시장에만 맡길 일이 아닙니다. 소득격차가 교육격차로 다시 경제적 불평등으로 더욱 심화되는 데는 사교육 시장을 방치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태권도든 발레든 피아노든 축구든 간에 다 학교 안에서 배우는 게 정상입니다. 돌봄 여부를 떠나, 수업 끝나면 나가야 하는 학교가 비정상입니다.

학교가 돌봄은 교육이 아니라며 밖으로 내몰며 아이들을 방임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엄연한 주체로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생활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돌봄교실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소수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양질의 교육과 돌봄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논의하는 게 학교에서 교사가 해야 할 일 아닐까요?

정부가 단 한 명의 양육자라도 외면하지 않길 바랍니다 
 

 6일 경남 김해 관동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마스크를 낀 채 거리를 두고 앉아 돌봄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2020.5.6
▲  경남의 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마스크를 낀 채 거리를 두고 앉아 돌봄교실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이 사진과 기사 안에 언급된 사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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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학교가 공적 돌봄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아이들은 감염병 위기 속에서 죽음을 통해 이어오고 있습니다. 학교는 아동의 발달 특성과 양육자의 돌봄 환경을 고려해 충분한 지원을 해야 마땅하지만, 돌봄 행정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인천에서 양육자가 일하러 간 사이 아이들끼리 집에 머물다 일어난 화재가 있었지요. 결국 형제 중 한 아이는 숨진 일, 기억하시나요? 알고 보니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해당 양육자에게 긴급돌봄 신청 안내를 아침에 알리고서 당일 오후 3시까지 마감했습니다. 양육자들의 근무형태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철저한 공급자 편의 위주의 행정이었습니다. 만약 학교가 긴급돌봄 안내를 해당 양육자에게 충분히 해 아이가 돌보는 이 없는 집이 아닌 학교에 머물 수 있었다면, 아이들이 언제든지 학교에 갈 수만 있었다면,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있었다면, 그 아이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국가 돌봄 체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맡은 아동 안전 확인 업무가 체계적이지 않음을 곳곳에서 마주칩니다. 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보살핌 받지 못하고 고립된 채 방임과 학대로 사망하는 아이 또래의 아이들 소식에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학교에선 이런 사건이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이라 치부할지도 모르나, 학생들과 양육자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하기 위해 학교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어 두렵기만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단 한 명의 아이도 양육자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동의 발달과 안전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길 바라는 걸 욕심이라 치부한다면 과연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요?

대통령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출처: http://omn.kr/1sis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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