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분홍 여아용, 파란 남아용? 인권위 “성 역할, 부정적 영향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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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여아용, 파란 남아용? 인권위 “성 역할, 부정적 영향줄 수도”

분홍색은 ‘여아용’, 파란색은 ‘남아용’이라고 표기한 영아용 젖꼭지.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분홍색은 ‘여아용’, 파란색은 ‘남아용’이라고 표기한 영아용 젖꼭지.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공룡은 남자애들이 갖고 노는 거잖아. 내 장난감 아니야.”

 

강미정(39)씨는 4살 딸의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성별 고정관념을 갖지 않고 자라도록 가정에서 교육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껴서다. “장난감 매장에 가면 분홍색, 파란색 제품끼리 모아두고 ‘여아용’, ‘남아용’이라고 적혀있어요. 그러다 보니 과학실험 장난감 등을 사주려고 해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인식해요.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까 걱정돼요.” 강씨는 여자아이가 성인처럼 화장하고 꾸민 모습을 광고하며 유아용 화장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지적하면서 “기업이 이윤을 위해 성차별적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내놓았다.

 

8살 아들과 6살 딸을 둔 남궁수진(41)씨도 기업이 여아용 제품은 분홍색, 남아용 제품은 파란색으로 만드는 게 불편하다. 그는 “선택권이 없다”고 했다. “딸이 분홍색 속옷, 프릴 달린 치마 잠옷을 입기 싫어해요. 그런데 분홍색을 아닌 제품을 찾기 힘들어서 결국 기능상 생김새가 달라도 남아용 속옷을 입히고 있어요. 오히려 아들이 분홍색을 좋아하고, 요리하는 장난감을 좋아했는데 세탁·요리 등 가사노동 관련 장난감은 ‘여아용’이라는 것도 불합리해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엄마들이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이를 개선해달라는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영유아 상품의 성별 구분과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4일 인권위는 “영유아 상품을 생산·판매하면서 상품의 기능과는 무관하게 ‘분홍색은 여아용, 파란색은 남아용’으로 성별에 따라 색을 구분하는 것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학습하게 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성별에 따라 색을 구분하는 방식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월 ‘정치하는엄마들’은 영아용 젖꼭지·영유아복·칫솔·색연필·장난감 등 영유아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색에 따라 성별을 구분하고, 소꿉놀이를 ‘엄마 역할 체험’으로 규정하는 등 아이들에게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다며 8개 회사를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했다. 이 진정은 아이들을 피해자로 하는 제삼자 진정이다.

 

이에 회사들은 “판매・유통상 편의를 위해 상품에 성별을 표기했고, 색에 따라 성별을 구분하는 사회・문화적 관행에 익숙한 소비자의 선호를 반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이후 인권위 조사에서 회사들은 해당 상품의 성별 표기 및 성차별적 문구를 삭제했거나, 향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꿉놀이를 ‘엄마 역할 체험’으로 규정한 완구.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소꿉놀이를 ‘엄마 역할 체험’으로 규정한 완구.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인권위는 “이러한 상품을 통해 아이들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학습하게 되고,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인식을 무의식중에 갖게 된다”며 “성 역할 고정관념은 아이들의 미래 행동, 가치관 및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또 “아이들이 사회・문화적 관행에 따라 구성된 젠더에 부합하는 성 역할을 학습하게 되고, ‘여성다움’, ‘남성다움’이라는 성 역할 고정관념을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사회화돼 성차별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인권위는 이런 의견을 내면서도, 상품에 성별을 표기하고 있지만 소비자가 해당 상품을 구매하는데 제한이 있지는 않다는 점을 고려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진정은 각하했다.

 

김윤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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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3812.html#csidxee57f0a3717e1c8a6f02d2a445ef8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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