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대통령이 알아야 할 학교이야기10] 대통령님의 보행권은 안녕한가요? - 곽지현 활동가
대통령님의 보행권은 안녕한가요?
[대통령이 알아야 할 학교 이야기 ⑩] 어린이보호구역과 학교 등하굣길
▲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않은 이면도로 양쪽으로 차가 주차돼있다. 그 사이로 아이들이 차도를 건너려고 하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 |
ⓒ 정치하는엄마들 |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대통령님의 보행권은 안녕한가요?
코로나19로 힘든 2020년을 보내고 올해 첫 아이가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매일 등교하다 보니, 그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습니다. 아동의 보행권 문제였습니다.
우리 학교 등교 시간은 8시 50분부터 9시 10분까지입니다. 등교 시간 동안 많은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길 위에 모여듭니다. 학교 가는 길은 녹록지 않습니다. 폭이 좁은 이면도로 양 쪽으로 차들이 주차돼있고, 주차된 차들 사이로 차들은 양방향 통행합니다. 차들에 점령당한 도로에서 우리 아이들은 차를 피하며 힘겹게 학교로 향합니다. 학교 정문에서 양쪽으로 70m에는 인도가 있지만, 그 외에는 차도와 보도가 분리돼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백 미터 남짓 걸어가는 짧은 시간에도, 차들은 어서 비키라며 경적을 울려댑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더더욱 긴장 상태로 걸어가고, 양육자들은 그 곁에서 아이가 차에 치일까 걱정하며 예민해집니다. 배움을 위해 학교로 가는 그 짧은 길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참담합니다.
지난 4월 13일, 참다못해 여섯 명의 엄마가 시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모였습니다. 그동안 학교 가는 길에 있었던 어려움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아이가 어려 한 손으론 유아차를, 한 손으론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그 길이 매번 전쟁터 같았다", "빠르게 달려오는 차를 피해 주차된 차 사이로 몸을 피하다 보니 등하굣길에서 '피해! 피해!'라는 말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며 한숨을 내쉽니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개인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지역 국회의원을 만나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하굣길에 통학로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시청에도 해결을 요청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한 근거도 있었습니다. 어린이·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 제3조와 제6조입니다.
① 초등학교등의 장은 (...) 초등학교등의 주변도로를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줄 것을 신청할 수 있다.
⑥ 시장등은 (...) 관할 지방경찰청장 또는 경찰서장과 협의하여 해당 보호구역 지정대상시설의 주(主) 출입문을 중심으로 반경 300미터 이내의 도로 중 일정구간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
두 차례 더 모여 우리의 요구를 정리했습니다. 지자체와 경찰서에 낼 진정서를 쓰고, 어린이보호구역 설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서명을 모았습니다.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 동안 193명이 서명으로 지지해줬습니다. 서명을 한 사람 중 등하굣길을 이용하는 학생과 양육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쓴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10년 넘게 민원을 넣어도 아직 그대로"라거나 "학교 다니면서 늘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주차된 차들 때문에 이미 좁은데 달리는 차까지 피해 다니려니 너무 위험하다" 등 주민들은 보행자가 안전한 도로로 개선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며 자랍니다
▲ 시청에 학교통학로 개선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는 모습 | |
ⓒ 정치하는엄마들 |
4월 14일 첫 모임부터 6월 16일까지, 양육자들은 열한 번 모임을 진행하며 진정서도 내고 지역방송에 통학로 문제를 제보했습니다. 시간 맞추며 만나는 것도, 아이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이야기를 정리하고 마무리 짓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생전 해보지 않은 민원과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나서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좌절의 순간도 자주 만나야 했습니다. "동네에 주차 문제가 심각하니 주차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역민원이 들어올 수 있으므로 주민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관계자들의 방어적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시청 공무원을 만나도, 경찰서 시설과 담당자를 만나도, 국민신문고 답변에서도 '안 되는' 이유들뿐이었습니다,
아파트 살면 이런 일 없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 말 자체도 어처구니없지만, 실제로 그 길은 아파트 사는 아이들이 제일 많이 오고가는 통학로였습니다.
특히 "민원이 예상 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결국 '어린이보호구역은 불편하다'라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이들의 권리는 어른들의 편의에 언제든 제쳐도 되는 것이었나요? 원래 안전은 좀 불편하더라도, 좀 번거롭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달라는 요구에 불편해서 안 된다는 대답을 당당하게 하다니, 이 나라의 안전 수준은 아직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인지 절망스럽습니다. 언제까지 작고 힘없는 이들의 생명은 효율과 속도 앞에 무시돼도 좋은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하나요.
만약 어린이보호구역 지정하는 데에 주차가 유일한 걸림돌이라면 하루빨리 동네에 주차장을 설치해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아동의 보행권을 지키려 애써야 하는 것이 시의 의무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일을 해야 할 이들이 일하지 않아서 엄마들이 나섰는데, 그 앞에서도 아직 있지도 않은 민원을 앞세우다니요.
교통사고 분석시스템(TAAS)에 의하면, 2020년 어린이 보행자 교통사고 사고 건수는 2079건, 사망자수는 16명, 부상자는 무려 2135명입니다. 길 위에서 많은 어린이 보행자가 사망하고 부상을 입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게다가 어린 아이의 경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제일 충격 받는 부위가 머리와 가슴이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고 후유증도 큽니다.
대통령님, 저는 2019년 국민과의 대화에서 길 위에서 차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보며 참담해 하고 애통해 하는 대통령님을 봤습니다. 동시에, 어린이 생명안전법안에 중요성을 느끼고, 그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대통령님의 강한 의지도 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스쿨존에서 만큼은 아이들의 생명을 더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며 자랍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아동의 이익 최우선의 원칙으로 아동들의 권리를 지켜주면, 그 아이들은 자라서 다른 이의 권리를 지키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그 어떤 편의보다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행동함으로써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 학교통학로 위의 아동이 보행권을 외치는 모습을 형상화 한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 활동가의 작품 | |
ⓒ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활동가 |
▼기사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5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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