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 '지금' 행복해지고 싶다 (권미경)
"또 나중이야!! 당장 내일 일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판국에"
결국,한 마디 쏘아붙이고 말았다.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이고, 동료이고, 가족인 남편에게 외친 한 마디. '나중에'라는 말 좀 그만 해.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남편이 변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순간을 모면하려는 의도를 갖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섭섭함을 가득 담은 한 마디가 결국 입 밖으로 나오고야 말았다.
평소에 '공부를 더 하고 싶다' '집에서 육아와 살림만 하는 엄마이고 싶지 않다'는 등의 욕구를 표출해 왔다. 석사를 마치고 바로 결혼을 했고, 짧은 신혼 기간을 지나 곧바로 임신을 하며 후다닥 '엄마'가 되어버렸다. 공부도 더 해보고 싶었고, 배운 것들을 마음껏 적용해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후회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물론, 결혼 생활은 행복했고,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수많은 즐거움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울했다. '이런게 산후, 육아 우울증인건가' 매일 생각했다. 아이들은 항상 예쁘고 깨물어 주고 싶은 존재는 아니었다. 남편의 위로와 격려의 한마디는 그냥 교과서 같이 고리타분 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크고 나면,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배우러 다니고 싶었던 것들도 다 할 수 있을 거야'
'나중에, 우리끼리 여행도 다니고 저녁에는 여유롭게 산책도 하고 그러자'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하나도 와 닿지 않는, 나중을 담보로 한 고생의 순간들.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나중은 무슨 나중이냐며 면박을 주고서도 사실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모두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사는데 이 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마음 놓고 책 한 페이지 읽는 것도 어려워서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겨우 다른 방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읽어야만 했다. 그나마 그것도 혹여나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고 잠에서 깨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읽느라 집중도 잘 안되었다. 배가 고파도 아이들을 먼저 챙겨야 했고, 꼭 안아달라고 하는 쪼꼬미를 한 쪽 팔에 매달고 있느라 나머지 한 손으로 밥을 먹는 것조차 어려웠다. 몸이 온통 피곤하다 외치며 몸이 녹아 내리듯 졸음을 헤매고 있어도 맘 편히 눕지도 못했다. 다들 잘 먹고, 잘 자고,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나의 시간은 온통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억울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중이라니. 나는 또 유보된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행복하고 싶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고 싶다. 책도 읽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싶다. 기본권이 박탈당한 일상은 피폐하고 우울하다. '엄마'의 삶은 다 그런거라는 친정엄마와 엄마 세대의 어른들의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는 절망적이다. '그래서 그렇게 참고 살은 것이냐'며 '그렇게 참은 결과가 고생과 희생의 되물림이지 않냐'며 따져 묻고 싶다. 그래봐야 소용 없는 걸 알면서도 마음 속으로 여러번 질문한 뒤에는 아무런 복지도 되어있지 않은 육아와 살림의 현장으로 다시 내던져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탈출구가 없는 미로 속을 무한 반복으로 헤매는 중인가 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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