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EBS여서 믿었는데”…7살 관람가 ‘포텐독’의 배신

<EBS>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 <포텐독> 30화에 등장한 장면이다. 여기서 말하는 동영상은 악당 기네스가 강아지 푸푸와 뿔테가 포텐독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몰래 찍은 촬영물이다. 악당은 주인이 이 모습을 보면 버림을 받을 거라며 둘을 협박한다. 결국 푸푸와 뿔테는 불안감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악당이 요구하는 또 다른 불법촬영 범죄에 가담한다. <포텐독> 30화에서는 “동영상 보낸다”는 협박이 5회 등장하고, 31화에서는 ‘노예’란 표현이 5회 나온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불법 촬영물 유포 범죄 형식을 아무런 경각심 없이 재현한 것이다. <포텐독> 관람등급은 7살 이상이다.

최근 삽입곡 ‘똥밟았네’로 화제를 모은 <포텐독>의 다수 에피소드가 혐오와 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29일 경기도 일산 <이비에스>(EBS) 본사 정문 앞에서 ‘<포텐독> 몰아보기 편성 중지·다시보기 중단 및 이비에스 제작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구하는 1인 시위와 기자회견에 나섰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기자회견에서 “이비에스는 공익은커녕 돈벌이와 흥행에 목매어 유·아동 시청자에게 폭력·혐오·차별로 점철된 콘텐츠를 공공연히 제공했다.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다면 내부 비판적 자정능력의 상실이다.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채 인권·성인지감수성이 결여된 유·아동 콘텐츠를 유통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타인의 배변활동 관람’이라는 정도를 넘어선 폭력적 발상 △불법촬영물 유포 및 협박 △모든 여성 등장인물에 내재된 차별·혐오 정서 △유희화된 집단 따돌림 △양육강식의 세계관과 동물학대 등이 방송심의규정 제30조(양성평등), 제36조(폭력묘사)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실제 6월18일 방영된 <포텐독> 24화을 보면, 악당 무리가 인간 세상에 개똥테러를 하기 위해 한 사람에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이고 변을 생산하게 한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대사다. 공개된 장소에서 다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람으로 나오는 한 캐릭터가 계속해서 먹고 아래로는 배변하는 행위를 동시에 한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이 장면과 관련해 “폭력적인 발상이며 심각한 인권 유린이다. 행위자를 극단적으로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관음을 넘어 가학적이다. 프로그램은 아동 시청자들에게 심각한 범죄를 미화시켜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EBS> 홈페이지 갈무리

 

5살·9살 아이를 키우는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강미정(39)씨는 “해당 장면을 아이들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특히 성과금을 준다는 말에 ‘푸짐하게 싸겠다’ ‘노예니까 시키는 대로 해라’는 대사 등은 아이들에게 돈만 받으면 배변 활동 등 그 어떤 일도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겠다는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1인시위 및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이외에도 16화에선 집단 따돌림을 희화화하는 모습이, 17화에선 포텐독들을 포박해 공중에 매달아놓는 동물 학대의 장면이 등장한다.

연출이나 대사뿐 아니라 캐릭터 문제도 제기된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포텐독>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에 차별·혐오적 정서가 내재돼 있다고 지적한다. 악당 무리의 기네스는 수시로 거울을 보고 화장품을 꺼낸다. 젊은 여성은 외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 국회의원 설미도는 성공한 여성으로 그려지지만 말을 할 때면 침을 튀기고 혀를 날름거리는 등 혐오스러운 ‘아줌마상’을 하고 있다. 반장 석지는 주인공 원석을 따돌리는 학교 폭력 가해자다. 그는 “혈통 좋은 개를 키워야지 똥개를 왜 키우냐”는 등 주로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사용한다. 반면 주인공 원석을 비롯해 주요한 역할을 하는 포텐독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13마리의 포텐독 가운데 9마리가 수컷, 4마리가 암컷이다.

강 활동가는 “코로나19와 온라인 수업 장기화로 교육방송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장시간 아이들과 집에 있다 보면 미디어 노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들은 교육방송 콘텐츠이니까 안심하고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비에스는 유해적·폭력적인 콘텐츠로 그 신뢰를 저버렸다. 이비에스가 교육방송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려면 <포텐독> 방영 중지뿐 아니라 모든 프로그램 제작에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인 제작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비에스> 관계자는 “지적사항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문제제기에 대해 내부적으로 분석중”이라고 밝혔다.

박고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