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불법촬영 협박·배변 강요... '똥 밟았네' 열풍이 괴롭다
불법촬영 협박·배변 강요... '똥 밟았네' 열풍이 괴롭다
[주장] EBS 애니메이션 <포텐독>, 피와 살이 터져야만 폭력은 아니다
▲ <포텐독> 24화, ‘개똥 테러 사건’ 편의 한 장면. 노예가 된 뽀그리는 기네스가 성과금을 주겠다는 말에 푸짐하게 싸겠다고 화답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먹고 배변한다. ⓒ EBS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지나가던 아이들이 '똥 밟았네'를 부른다. 요즘 각종 미디어에서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똥 밟았네'는 EBS 애니메이션 <포텐독> 24화, '개똥 테러 사건' 에피소드의 삽입곡으로 아침시간 남녀노소 모두가 집을 나서다 동네 곳곳에 흩뿌려진 개똥을 밟고 불쾌해하며 추는 춤과 노래다. 한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일명 '수능금지곡', 흘러간 케이팝의 패러디 안무로 '케이팝 고인물' 등의 키워드와 함께 이슈가 되었다.
EBS 역시 7월 한 달 동안 홈페이지에 '똥 밟았네 댄스 챌린지'를 내걸고 펭수의 커버댄스, <생방송 듄듄> 출연진들의 커버 댄스 등 자사 프로그램을 통해 '똥 밟았네' 띄우기에 매진했다.
매주 목·금요일 오후 7시 5분 방송되는 <포텐독>을 필자는 저녁을 준비하며 자주 아이들과 시청한다. 공영 교육방송에 대한 신뢰가 있기도 하지만 특히 지금은 장기화된 코로나19의 여파로 가정 보육 시간이 늘어나고 영상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난 상황.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EBS의 위상과 프로그램이 갖는 중요성은 더욱 확대되었다. EBS는 어느덧 아이들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6월 18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EBS를 틀자 <포텐독>이 방영 중이었다. "와~ <포텐독>이다." 9세와 5세 아이들이 좋아한다. 개와 인간의 우정을 다뤘다고 하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 하겠지 하며 함께 보다가 그만 아연실색 하고 말았다.
극 중에서 악당에 해당하는 개 무리 골드팽은 인간 세상에 개똥테러를 하기 위해 똥을 대량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골드팽의 멤버 기네스는 노예로 지목된 여성(극 중 '뽀그리')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다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입으로 먹고 끊임없이 아래로 배변하는 행위를 지시한다. 뽀그리는 긍정적이고 즐겁게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다. 경쾌한 배경음악과 함께 노예로 지칭된 사람이 먹고 싸고 먹고 싸고. 그렇게 생산된 똥은 동네에 흩뿌려져 동네 사람들이 '똥 밟았네'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을 살폈다. 아이들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화면에 몰두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동안 아이들은 시각적 이미지 외에도 음악, 목소리 등 통합적인 작용 가운데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아동 심리학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사물 또는 사건을 요약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지만, 인지 능력의 한계로 여전히 현실세계와 애니메이션 속의 가상세계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당시 아이들에게 그 장면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차근히 물어보지 못하고 아이들의 원성을 뒤로 한 채 티비를 끄는 데 급급했다. 그리고 EBS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회차를 다시 확인했다.
뽀그리: 밤에 일하는데 야근 수당은 없나요?
기네스: 없어! 야근수당 대신 성과금 줄 테니까 열심히 싸기나 해.
뽀그리: 푸짐~하게 싸겠습니다.
성과금을 주겠다는 말에 노예 뽀그리는 푸짐하게 싸겠다고 화답하고 임무를 수행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다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특정 캐릭터가 입으로 먹고 끊임없이 아래로 배변하는 행위가 동시적으로 이뤄진다는 설정은 정도를 넘어선 폭력적인 발상이며 그가 노예라 할지라도 명백한 인권 유린이다. 행위자를 극단적으로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관음을 넘어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라라스쿨의 노하연 공동대표에 따르면 유아 성교육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경계라는 감각을 인지하게끔 하는 것이다. 화장실 사례가 가장 대표적으로 '다른 사람이 화장실에 있을 때 안을 쳐다보지 않아야 한다'는 예절을 함께 배운다. 지극히 개인적인 배변활동이 이뤄져야 할 화장실은 타인의 시선이 차단되어야 할,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포텐독>의 제작사 레트로봇은 아동 시청자들에게 화장실 불법 촬영을 연상시키는 범죄를 희화화시켜 표현했고 EBS는 방영을 통해 이를 유포했다.
또한 성과금의 대가로 가학적인 행위를 명령하는 기네스와 돈만 준다면 치욕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뽀그리. 임금을 지급하는 자는 우월하고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위치에 있는 자를 노예라고 지칭하는 위계관계 설정을 통해 아동 시청자는 돈만 주면 어떤 행위도 허락된다고 학습하지 않을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진재연 활동가는 "'야근수당 대신 성과금 줄 테니까 열심히 싸기나 하라'며 배변을 강요하는 장면은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 돈주면 똥싸는 것도 보여준다고? EBS 정신차려! 정치하는엄마들이 지난 1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 'EBS 포텐독 방심위 심의촉구 기자회견'에서 <포텐독>의 뽀그리의 공개적 배변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 정치하는엄마들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에 <포텐독> 전반을 살폈더니 이 장면만이 문제가 아니였다. <포텐독> 시즌2에서 기네스가 푸푸와 뿔테의 포텐독 변신 장면을 동의 없이 촬영해 유포 협박을 하는 에피소드는 무려 7화에 거쳐서 진행된다. 협박을 당하는 피해생존자 푸푸와 뿔테는 7화의 대부분을 유포 걱정을 하느라 매우 고통스러운 일상을 보낸다. 기네스는 끊임없이 불법촬영물을 도구로 협박을 하고 결국 피해생존자 푸푸와 뿔테로 하여금 또 다른 범죄에 가담하게끔 연출한다.
"자꾸 그러면 이거(동영상) 진짜 보낸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주인들한테 동영상 보내지 않을게."
30화, '괴물'에 나오는 대사이다.
위 대사는 텔레그램에서 활개치는 성 착취 가해자들의 대화와 유사하다. 불법촬영 피해생존자가 느꼈을 심리적 압박을 인용해 대사를 작성하고, 약점을 잡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며 범죄에 끌어들이는 악랄함까지 닮았다. 7세 이상 관람가 애니메이션 <포텐독>에서 펼쳐지는 내용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27화, '귀걸이를 들고 온 손님' 편에서 기네스는 "방금 변신하고 말하는 모습 여기에 다 찍혔어. 지금 당장 너의 주인님에게 보내면 어떨까? 너의 견생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라고 말한다. 추적단불꽃은 "<포텐독> 속 골드팽 무리가 석동관 대표의 안면인식 암호를 풀기 위해 불법촬영물로 피해생존자 푸푸와 뿔테를 협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똥 밟았네'로 화제를 모은 애니메이션 <포텐독>은 분명 다양한 음악적 장르로 선보인 등장인물들의 주제가가 에피소드 곳곳에 포진해 있어, 춤과 노래로서 전달되는 형식적인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이를 투자·방영한 EBS는 <포텐독>의 애니메이션 속 뮤지컬이라는 형식미에 중점을 두기 전에 내용과 표현의 적절성을 더 살폈어야 했다.
기본적으로 유·아동 시청자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방영하는 방송사로서 <포텐독>의 시청등급인 7세 이상 아동이 미디어 정보에 대한 변별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걸 고려했어야 했다. 아침에 길을 나서다 밟힐 만큼 많은 똥이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인지했어야 했다. 아니, 불법 촬영물 유포·협박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포텐독> 시즌2의 서사 전반을 검토했어야 했다. 최고의 공익방송, 최상의 교육방송이라 자부하는 EBS 내부의 그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일까.
창작물은 사회의 반영이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불법촬영물 소재를 다룰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방향이 아니라, 성인화된 언어와 폭력적 요소에 그친다면 문제가 있다.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의 이가현 활동가에 따르면, 불법촬영은 중범죄로서 대처 방안이나 피해자 조력 방법, 신고 방법들을 상세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오히려 친구 사이에 칠 수 있는 가벼운 장난 정도로 여겨질 위험이 크다. 최근 불법촬영 가해자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폭력을 장난처럼 여기는 아동, 청소년이 늘어나는 이유가 단순히 요즘 애들이 철이 없어서 일까? 교육방송 EBS에서 불법촬영을 가볍게 다루고 유포 협박에 대한 경각심 없이 재현하고 있는 것 역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미국 미디어학계에 권위 있는 연구로 손꼽히는 미국 국가TV폭력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TV 애니메이션 속 폭력 화면은 3~6세 아동에게 고위험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고위험을 동반하는 애니메이션 속 폭력 표현의 특징으로 ▲폭력 가해자의 영웅화 ▲폭력 형식의 정당화 ▲폭력 가해자의 처벌 부재 ▲피해자의 피해에 대한 생략 ▲폭력성의 리얼리티를 들고 있다.
▲ EBS는 아동 시청자들에게 공식 사과하라 정치하는엄마들이 지난 7월 29일 EBS본관 앞에서 'EBS <포텐독> 몰아보기 편성 중지와 다시보기 중단 및 EBS 제작 가이드라인 제작 요구 ’거리두기 피켓팅 및 1인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정치하는엄마들
<포텐독>은 공개적 배변 행위를 강요받는 피해자가 고통받기는커녕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불법촬영 피해생존자의 고통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설정이라는 점, 현실에 만연한 불법촬영 범죄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버림받은 개들이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어 나쁜 인간들은 노예로 만들어도 정당하다는 설정 역시 폭력을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공영 교육방송에 부적합해 보인다. 피가 튀고 살이 터지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EBS는 어린이를 위한 우수 애니메이션을 제작·지원하는 데 앞장서야 할 책임이 있다. 시청자들의 신뢰를 짊어진 공영방송으로서 인권·성 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유·아동 콘텐츠를 유통한 점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되기 힘들다.
현재 EBS 홈페이지상의 <포텐독> 다시보기는 기존의 7세 이상의 시청등급을 '12세 미만의 어린이가 보기에 부적합'으로 조정해놓은 상태다. 관람등급은 당연히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EBS가 아동 시청자들에게 공식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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