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아동학대 피해자 얼굴공개 SBS 그알, 고발당한 까닭

프로젝트

정치하는엄마들, 피해자 인적사항·사진 공개 ‘아동학대처벌법’ 위반…형사고발에 인권위 진정까지

‘아동학대 사건보도 권고기준’서도 ‘피해자 등 신원공개 금지’, “아동학대보도도 전문 취재영역”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세상을 떠난 ‘정인이’의 인적사항과 사진 등을 방송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제작진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을 보면 피해 아동에 대한 인적사항이나 사진을 공개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인이 사건’으로 불린 양천구에 거주하던 양부모의 아동학대 사건(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지난해 10월 사건 발생 후 언론에선 피해자 얼굴과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SBS 그알 제작진이 여러 장의 피해자 사진과 이름을 공개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촉발했다. 정인이의 경우 사망했고, 가해자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의 존재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알 제작진의 판단으로 이를 공개한 것이다. 

보도 직후부터 논란이 됐다. 사건의 본질은 세번에 걸친 신고에도 학대를 막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아동학대치사 혐의만으로 기소해 수사가 미흡했다는 지적 등이다. 그러나 그알 제작진이 ‘정인이 사건’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피해자가 부각되고 사안이 감정적으로 흐르게 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법 위반임을 주장하는 내용의 고발이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1월2일 ‘정인이는 왜 죽었나? -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편과 같은달 23일 ‘정인아 미안해, 그리고 우리의 분노가 가야할 길’편을 제작한 SBS ‘그알’의 편집책임자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7일 고발했다. 또한 정치하는엄마들은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대아협)와 대아협 대표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대아협 홈페이지에 피해아동들의 사진을 게시했다는 이유다. 

 

▲ 지난 1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갈무리

▲ 지난 1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갈무리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고발장을 보면 정치하는엄마들은 SBS 그알 측이 아동학대처처벌법 35조 등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아동학대처벌법 35조를 보면 신문의 편집인·발행인·종사자, 방송사의 편집책임자·종사자 등은 아동보호사건 관련 학대행위자, 피해아동, 고소인, 고발인, 신고인의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신문 등에 싣거나 방송할 수 없다. 이를 어길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고발장에서 “피고발인(그알, 대아협)들이 피해아동에 대한 피해사실을 알리고 이에 관한 법률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은 필요하고 지지해야 할 것이나 피고발인들은 피해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법령상 금지되는 피해아동의 인적사항과 사진을 공개했고 이에 관한 정보가 다른 네이버카페, SNS 등 정보통신망에 공유돼 법이 금지하는 피해아동의 인적사항과 사진의 공개가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의도에 상관없이 피고발인들의 행위로 여러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누군가는 피해아동의 피해사실을 통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활동을 하기 보다는 피해아동의 인적사항, 사진을 두고 불필요한 자극적 상황을 만들기도 해 피해아동과 유족의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후에도 아동대상 성범죄와 학대범죄 발생시에도 비슷한 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대아협에 대해 “자신들 게시물에 대해 피해자 사진 등을 공유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별다른 제재나 공유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피해아동의 사진을 모자이크 등 별다른 편집도 않고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아협은 게시물에서 자신들이 제보자에게 피해아동 사진 공개를 허락받았다는 취지로 명시하고 있으나 제보자가 피해아동과 무슨관계인지, 실제 그 허락이 있었는지 여부 등은 불분명할 뿐 아니라 관련 법령상 피해아동과 관련 있는자의 허락이 있었다고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자유로이 공개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1월23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예고편 갈무리

▲ 1월23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예고편 갈무리

 

한편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날 대아협, 염동열 전 새누리당 의원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보건복지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현 아동권리보장원)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대아협은 아동대상 학대범죄·성범죄 피해아동을 특정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해 유포했고, 이 단체와 두 의원실·보건복지부·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난 2014년 3월 국회의원회관에서 피해자들 학대사진을 전시한 사진전을 열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인권위 진정서에서 “범죄피해자는 일반적으로 보호돼야 하며 피해자 신상공개는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아동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동학대범죄특별법상 비밀유지 의무자를 한정하고 있어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한 신상공개가 퍼져 그 피해가 크다”며 “피진정인들의 피해자 신상공개가 인권침해가 맞는지 인권위의 판단을 구한다”고 했다. 

SBS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SBS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현재로서는 입장이 없다”며 “각계 다양한 의견을 듣고 추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제작진과 상의해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공혜정 대아협 대표는 한겨레에 “피해아동을 공개하고 (학대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 사회는 변화하질 않았다. 실체가 나타나는 순간 사람들이 ‘아, 진짜네’라며 피해자에게 공감하기 시작했다. 이는 아동학대를 막지 못한 시스템을 깨뜨리는 일”이라며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피해아동 가족의 동의를 받고 사진을 공개했다. 가족들이 먼저 피해아동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며 사진을 공유해 줬는데 왜 피해자를 숨겨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아동학대 사건 보도는 어떻게 해야하나?

 

정치하는엄마들은 미디어오늘에 고발장·진정서와 함께 SBS 그알 방송에서 아동학대 피해자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한 부분과 대아협이 피해자를 공개한 자료를 제공했다. 

해당 단체의 장하나 활동가는 미디어오늘에 “익명화하지 않은 자료를 첨부했지만 첨부된 사진 자료 등을 보도에 활용하지 말고 (미디어오늘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참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고발과 진정 취지를 십분 이해해 보도는 보건복지부 권고기준에 맞춰달라”고 했다. 

아동학대 사건을 직접 다루는 보도가 아니라도 모든 관련 보도시 해당 권고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당시 그알 방송을 통해 아동학대 사건이 그렇게 주목을 받은 적이 없기에 사회적으로 SBS의 범죄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이 선례로 남아 앞으로 아동에 대한 범죄사건에서 또 피해자 신상이 공개될지 모른다는 문제의식이다. 

보건복지부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만든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 기준’을 보면 5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아동의 인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둘째 취재시 언론이 준수할 윤리를 지켜야 한다, 셋째 보도 시 언론이 지켜야 할 준칙을 지켜야 한다, 넷째 아동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 다섯째 아동학대 예방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등이다. 이는 아동학대처벌법, 신문윤리실천요강 등을 근거로 만든 기준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아동의 인권 고려’는 피해자·가해자에 대한 신원공개를 금지하고 사건과 관련 없는 아동의 사진이나 편지, 소지품 등의 정보를 노출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학대행위가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노출하거나 자극적인 재연도 금지했다. 

취재 시에는 피해아동에 대한 직접 인터뷰를 피하고 필요한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나 변호사 등 제3자를 통해 취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피해아동과 친구들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피해아동의 친구나 교사 등 주변인에 대한 인터뷰도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 주변인에게 피해사실을 알리는 등의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아동학대 신고자의 인적사항을 노출시키거나 신변을 위협하는 취재를 금지하도록 했다. 

보도 시에는 학대방법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제한하도록 했다. 범죄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라도 구체적 장면 노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했다. 또한 ‘계모의 아동학대 살인’과 같이 ‘계모’를 부각하면서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을 금지했다. 가족유형에 대한 편견이 담긴 용어를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건을 지칭할 때 피해자나 가해자 위주로 사건을 부르지 말도록 했다. ‘인천아동학대사건’, ‘평택에서 발생한 사건’ 등을 권고했다. 이에 미디어오늘은 ‘정인이 사건’ 대신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으로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 아동학대 신고앱. 자료=보건복지부

▲ 아동학대 신고앱. 자료=보건복지부

 

[관련기사 : 아동학대 사건 공론화 언론 순기능 정말 다했나]

 

신중하게 보도하기 위해선 피해자나 관계 기관이 사태수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정시간이라도 취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아동학대 수사정보 노출이 위법임을 인지해야 한다. 피해자 측이 보도 삭제나 수정을 요청할 때 신속하게 대응하고 무분별한 보도를 지양해 2차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피해자에게도 원인이 있다는 방식의 기술을 금지해야 하며 아동학대보도영역 역시 전문 취재영역임을 인지해 아동에 대한 지식, 심리학·상담학에 대한 지식, 철저한 인권의식과 윤리의식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편견을 소개하고 정확한 이해를 돕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아동학대의 징후가 무엇이고, 이러한 징후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개인적·사회적 노력 필요성을 환기해야 하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는 기관 정보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 자료=보건복지부

▲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 자료=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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