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나는 정치를 포기할 수가 없다

프로젝트

나는 정치를 포기할 수가 없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2.01.25 03:00

 

신문사 칼럼 연재를 덜컥 수락했지만, 글쓰기는 언제나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다. 나는 글이나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출하고자 했다. 번지르르한 글과 말이 필자·화자의 삶과 괴리된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 경험상 인간은 대체로 그렇고 나는 그런 인간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글과 말은 아껴야 한다. 글말과 삶이 상반된 것도 싫고, 글말만 뱉어 놓고 행동하지 않는 것도 싫다. 글말이 앞섰다가 실천하지 못한다면 나도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미 실행한 일에 관해 쓰고 말하거나, 내가 꼭 해야 할 일에 대해 나를 다그치기 위해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글말을 앞서 남긴다. 이런 규칙을 세워 놓아도 가끔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뱉기도 한다. 예컨대 기자회견에 초청받아 연대 발언을 할 때 종종 그렇다.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지만 약속한 만큼 실천하지 못하면 내내 찜찜하다. 조심해도 그렇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3년이 다 되도록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다. ‘행동에 옮길 수 있나? 없나?’를 기준으로 쓰고 말하던 나에게, 무슨 행동을 할지 몰라서 말문이 막힌 이 상황은 너무 낯설다. 내가 이도 저도 못 하는 동안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순식간에 눈사태가 되어 나를 덮쳤고, 엄청난 중압감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 내 능력이 미치지 않는 일에 집착하면 내 삶만 망가질 텐데 내가 왜 이러나 싶다가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의 얼굴을 보면 포기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미칠 것 같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도 뒤로 말려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만 같은 혓바닥을 억지로 잡아 빼는 기분이다. 별 기대는 없지만 만에 하나 누군가 결정적인 힌트를 준다면 내 밑천을 드러낸 값어치가 있으리라.

 

여야의 건진 법사 공방이 일주일째 정치 뉴스를 잠식하고 있다. 한국 정치는 왜 이렇게 저급해졌나? 감춰왔던 본색이 드러난 것뿐인가? 낯뜨거운 민낯을 계속 감출 것이지 왜 이제 와서 당당해졌는가? (내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아무리 자발적 왕따라 한들, 전직 국회의원으로서 당내 문제로 싸우지 않았다. 무계파, 무력한 존재로서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필요할 때 여러 의원실의 협조를 구해야 하므로 함부로 당과 척질 수도 없었다. 부끄럽지만 오늘 나는 고백한다.) 지난 8~10일 실시한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가 지지율 3.2%로 심상정 정의당 후보(2.2%)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이런 정치 현상에 대한 해석들은 이미 있다. 예컨대 김호기 교수는 칼럼에서 포퓰리즘, 탈진실, 정치 팬덤, 무능한 기성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 등으로 설명했다.

 

밑바탕에는 불평등과 양극화에서 비롯된 혐오와 차별의 정서가 깔려 있을 것이다. 나는 ‘경쟁’을 전면에 내세운 요즘 국민의힘이 무섭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대거나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던 과거의 보수당보다 지금이 더 무섭다. <공정한 경쟁>이란 책을 쓴 정치평론가이자 방송인인 이준석씨가 보수당의 대표로 선출되는 걸 보면서, 나는 비로소 다수 대중이 각자도생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기도 했지만, 내심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거다. 정정하자면 내가 두려운 건 국민의힘이 아니라, 약육강식이 상식이 된 한국 사회다. 내 직업은 사람들이 경쟁 대신 공존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일이기에, 나는 위축됐고 자신감을 잃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경쟁의 판을 짠 사람은 경쟁의 장 밖에서 사람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 일이다. 물려줄 수 없는 사회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같은 게임의 승패로 생사를 가르는 경쟁이라면 공정한지 따질 게 아니라 경쟁을 거부해야 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0세 사교육’을 받아야 하고 놀 권리와 꿈꿀 권리를 빼앗겨야 하는 경쟁은 정당한가? 과반수가 동의하면 경쟁을 중단할 수 있다는 <오징어 게임>의 룰은 정치에 대한 은유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포기할 수가 없다. 스포츠 중계와 다를 바 없는 종편채널의 정치쇼에 환멸을 느끼다가도, 출퇴근길 낯선 사람의 가방에 매달린 노란 리본을 볼 때 찰나의 위안을 얻는다. 흡사 패싸움으로 전락한 대선판, 경쟁을 넘어 공존을 꿈꾸는 사람들조차 하나둘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 포퓰리즘의 이면에 염세주의가 창궐한다. 내가 뭘 해야 할지 조언해 달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다면 만나고 싶다. 진심으로 절실하게 쓴다.

 


🟣기사 전문보기: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1250300095#c2b

 

날짜
종료 날짜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