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삼성 무노조 흑역사가 무너진 공터
삼성 무노조 흑역사가 무너진 공터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
삼성은 무노조 정책을 ‘신화’로 불렀다. 신화가 아니라 흑역사다.
이 흑역사의 주인공인 삼성그룹 임직원들에 대한 실형판결이 지난 2월과 3월 연이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지난달 17일 대법원은 삼성그룹이 삼성에버랜드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조직차원에서 움직였다고 판단했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징역 1년4개월 등 노조파괴 주범인 임직원 12명에 대해 징역형 및 벌금의 유죄선고를 내렸다. 경찰 출신인 강 전 부사장은 2011년 6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하며 어용노조를 설립하는 등 방식으로 에버랜드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방해해 왔다. 2월4일에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행위에 대해 임직원 30여명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마찬가지로 법원은 삼성그룹의 조직적 범죄로 봤다. 이로써 삼성 노조파괴에 대한 형사재판은 모두 끝났다. 고소·고발부터 판결 확정까지 10년의 시간이다.
한편 이달 14일에는 삼성에버랜드의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사용자인 삼성물산과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2011년 설립된 삼성지회가 11년 만에 얻은 성과다. 참고로 지금까지 에버랜드에는 삼성그룹이 ‘방탄용’으로 설립한 어용노조가 계속 ‘엉터리’ 단협을 체결해왔다. 법원은 이 어용노조가 삼성과 공범이라며 어용노조 위원장 2명에게 부당노동행위 유죄 판결을 했다. 어용노조가 회사와 함께 노조파괴 범죄로 처벌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끝내 ‘진짜 노조’인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교섭대표노조가 됐고 ‘진짜 단협’을 정식으로 맺었다. 삼성지회 임원들은 지난 10년 동안 전원이 징계받거나 해고됐다. 그 징계와 해고는 삼성의 노조파괴 범죄의 일환이므로 무효고 삼성이 손해배상책임까지 진다는 판결은 애초에 나왔다. 네댓 명의 노동자가 삼성그룹 전체와 맞서는 그 싸움이 어땠을까. 가시덤불을 뚫고 가는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대중의 지지와 시민사회의 연대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 2013년 5월 불법파견 및 근로기준법 위반 문제를 제기하며 노조를 결성해 투쟁 끝에 2019년 1월 정규직 전환을 쟁취했다. 그리고 2013년에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에서는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았으나 올해 1월26일 항소심에서 1심이 뒤집혀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9년 만의 일이다. 기적적이지만 법리적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0년 5월 무노조 경영에 대해 사과하고 무노조 정책 폐기선언을 했다. 이러한 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투쟁 승리의 기세로 이후에 삼성웰스토리·에스원·삼성디스플레이·삼성화재, 그리고 삼성전자에까지 노조가 만들어졌다. 삼성그룹 노조는 현재 13개로서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를 결성해 활동 중이다. 70년 삼성 무노조 역사가 무너졌다. 실로 노골적인 삼성의 반헌법·불법·인권유린 정책이 87년 민주화 이후 40여년이나 지나서 바로 잡혔다. 21세기에 홀로 전근대에 머물 수 있었던 삼성의 힘은 대체 얼마나 대단했던가.
삼성에 노조 세우기, 최초 단체협약 체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경영진 형사처벌과 같은 성과가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상대가 삼성이거나 최초 타이틀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낸 결과여서 그렇다. 삼성 사건에서 법원의 판결은 늘 노동자의 성취보다 몇 년 늦다. 그래서 이미 우리 국민은 법률 이전에 헌법에 노동 3권을 명시해 일상에서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을 확실히 보장해 놓았다. 법률에 의한 판결문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정의를 당장 실현하는 게 우선이다. 노조를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인류 역사의 지혜, 헌법의 명령이다.
삼성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 각 현장의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 주기 바란다. 우리나라 노조조직률은 아직 14% 정도에 불과하다. 권리 앞에 잠자는 자를 누구도 대신 지켜 주지 않는다. 떠들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는다. 삼성 노동자의 투쟁에는 시민사회와 각계 전문가, 언론이 적극 연대한 힘도 컸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기를 또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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