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아동과 성인은 동등한 당사자…노키즈존은 엄연한 차별이다❞_아동인권 전문 변호사 김희진 인터뷰
“아동과 성인은 동등한 당사자…노키즈존은 엄연한 차별이다”
아동인권 전문 변호사 김희진
김희진 변호사가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아동인권 개선은 기후위기 대응만큼이나 중요한 이슈”라면서 “정치권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아동인권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email protected]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34세 변호사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기반으로 아동인권 보호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청소년 인권증진을 위한 포럼 등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도입, 아동보호체계 및 아동사법제도 개선, 참정권 연령 하향 등 다양한 사안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21개월 아이를 키우면서 성공회대 박사과정에서 아동인권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2019년에 책 <아동인권>을 냈다.
노키즈존으로 어른이 아이들에 배타심 가르쳐…차별금지법 절실
출생 미등록 아동문제, 출생신고제를 출생통보제로 바꾸면 완화
아동 이익보다 우선했던 방역정책…열린 세상 적응에 시간 걸릴 듯
베이비박스는 주객전도…한국의 저출생 문제는 능력주의 폐해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고 넬슨 만델라는 말했다. 이 말에 비추어본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부모의 학대로 맞아죽고, 방치돼 굶어죽고,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들의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는 전년 대비 약 60% 증가했다고 경찰청은 집계한다. 아이들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키즈존’ 논란도 여전하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처한 불우한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엄벌로 낙인찍고 배제하려 한다. 900만 아동인구는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 되는 종속적 대상으로 여겨진다.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김희진 변호사를 만나 한국 아동인권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그는 “아동은 발달단계에서 일정 기간 성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성인과 아동은 동등한 당사자”라며 “아동을 환대하고 존중함으로써 미래의 사회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소재 김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 ‘노키즈존’이라며 가게에서 쫓겨난 아이들 이야기가 최근 온라인에서 종종 들립니다. 업주들은 당연한 법적 권리라고 주장하는데요.
“맞지 않아요. 법률상 직업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는 인권의 침해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인격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직업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거예요. 아이들의 출입이 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없습니다. 술에 거하게 취한 것처럼 보이는 성인의 경우 난동을 부릴 것 같은 상황이 아니고는 출입 자체를 금지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동은 외모에서부터 차단을 당하는 게 옳은가요. 모든 아동이 폐를 끼친다는 편협한 사고를 가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타심을 가르치고 있어요. 일전엔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놀러온 다른 동네 아이들을 어느 어른이 ‘주거침입’이라며 신고해 경찰이 출동한 경우도 있었어요. 그 아이들이 어떤 기억을 갖고, 공동체에 대해 어떤 감각을 갖게 될까요.”
- 아동에 대한 엄연한 차별인 거죠.
“국회 계류 중인 차별금지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합니다. 과거 차별금지법 쟁점이 이주민·성소수자·장애인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모든 연령대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포괄적인 차별금지로 쟁점이 확대됐어요. ‘노키즈존’은 아동에 대한 출입금지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나이를 이유로 노인이 출입금지될 수 있고, 향후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쏟아지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어 우려됩니다.”
- 아동학대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지난해 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 인천 8세 여아 피살사건의 경우 모두 출생 미등록 아동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출생등록이 필요한 큰 이유는 아이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첫 단추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출생신고 제도에 따르면, 부모가 직접 공공기관에 신고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 출생신고를 하고, 키우는 모든 게 가정의 일이라는 프레임이 여전히 강해요. 국가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여기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합니다. 현재 미등록 아동은 그 수조차 알 수 없습니다. 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은 심각한 사건사고가 난 뒤에야 세상에 드러나요. 이를 출생통보제로 바꾸면 문제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99.5%의 아이들이 병원에서 태어나는 만큼, 병원에서 산모와 태어난 아이의 정보를 정부에 전달하면 일단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지할 수 있어요. 국내에선 10년 가까이 논의만 돼 왔는데 의료기관 반대가 큰 이유입니다. 이미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어요.”
-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미등록 문제도 심각합니다.
“한국은 국제인권규범인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국으로서 만 19세 미만 아동에 대해 차별 없이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어요. 그런데 국적, 인종, 민족 때문에 차별한다는 것은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한 겁니다. 아이에게 국적을 부여하자는 게 아니라 존재를 확인하자는 거예요. 태어나는 순간 아이가 확인조차 되지 않는다면 사망 또는 학대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고, 최소한 앞으로 살아나가기 위한 필수적인 보건의료교육 등 출발점에서부터 권리보장이 어려워집니다. 지난해 리투아니아 미등록 이주여성이 아이를 출산한 뒤 사망한 경우가 있었는데, 한국에는 리투아니아 대사관이 없어서 중국 베이징 대사관에다 서류등록을 가까스로 한 적이 있어요.”
- 코로나19 이후 아동학대가 증가추세라고 합니다.
“아동학대에는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학대, 유기·방임 등도 포함되죠. 양극화 심화도 원인이겠지만 코로나19 이후 방역조치에 따라 학교라는 공공의 장소가 문을 닫으면서 가정에 더 많은 역할이 부여된 영향도 크다고 봅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양육자들이 약한 존재인 아동에게 함부로 대하려는 성향이 강해질 수 있었을 테고요.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면서 아이들이 부모가 아닌 어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닫혔고 아이들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러지 못하게 됐어요.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그런 대사가 있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닫힌 세상에서 아이들이 다시 열린 세상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걱정됩니다.”
- 방역정책이 아동의 이익보다 우선한 데 따른 부작용이겠죠.
“지난해 국공립 학교들이 모두 문을 닫은 와중에 일부 사립학교는 소그룹 정상수업을 했어요. 아이들 중심으로 정책을 검토했다면 달리 판단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감염병 확산 방지라는 목적하에 아이들의 이익은 고려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아동총회를 비롯해서 아동·청소년의 의견을 듣는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참가자들의 스펙 쌓기를 넘어 정책에 반영시키는 경험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어요.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죠.”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회원들이 2019년 7월 청와대 앞에서 참정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아이들이 어른들과 동등한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 자체가 약하다보니 그런 게 아닐까요.
“초보라는 의미의 ‘○린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라고 봐요. 주식초보는 주린이, 골프초보는 골린이라고 하잖아요. 어린이는 미숙하고 부족한 존재로 보는 거예요. 하지만 어린이는 그냥 어린이일 뿐이죠. 존재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해요. 어른이 되기까지 18년은 긴 시간이에요. 그동안 아동의 능력이 항상 같진 않죠. 성인은 처음엔 절대적으로 아이를 지원하고 이후 점차 역할을 축소시키면서 아동이 자율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그게 어른의 일이죠.”
-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부모가 두고 가는 ‘베이비박스’도 여전히 논란입니다.
“저는 주객이 전도됐다고 봅니다. 유럽 일부 국가에도 베이비박스는 있지만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공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가피한 경우에 찾아가는 곳이에요. 반면 국내의 경우에는 양육을 위한 사회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쉽게 버리도록 결정하는 계기가 되고 있어요.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을 데려온다는데 미신고시설이고 아동복지법상 불법이라 공공의 관리범위에 들어 있지 않아요. 부모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관계된 출생기록 등도 공공에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 아이들이 부모를 찾는 일이 더 어려워집니다. 마치 뿌리가 잘린 채 가지와 잎을 뻗어야 하는 나무 같은 심정이라는 얘기를 한 입양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어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체코, 독일, 네덜란드 등지의 베이비박스에 대해 즉시 중단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 결국 아동보호예산을 늘려야 할 텐데 현행 아동보호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이죠.
“교육예산과 보육예산을 제외한다면 아동에 대한 직접지원 규모가 크지 않아요. 보호대상 아동에 대한 재원 등도 많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 윤석열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는데, 아동·청소년 정책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될까요.
“실수요자에 맞게 아동보호체계를 다시 점검해보면 어떨까 해요. 아동이 아동양육시설에 맡겨질 경우 전국 지자체 아동보호전담요원이 트래킹(추적)을 합니다. 그런데 아동이 장애가 있거나 성폭력 피해자라서 장애인 거주시설이나 성폭력피해자 지원시설로 갈 경우엔 전달체계가 끊기는 문제가 있어요. 일관된 정책과 전달체계가 필요합니다.”
- 한국 사회의 저출생 문제가 갈수록 심각합니다.
“능력주의의 폐해가 아닐까 싶어요. 21개월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데요. 아동인권에 대해 고민해온 저조차 남들과 동등하게 일하고 성과를 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느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아요. 내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 일을 하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가치를 폄하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건 결국 능력주의의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변화되지 않으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가 달라질 수 없고, 아이가 보고 자랄 사회가 변할 수 없습니다.”
- 우리의 아동인권 수준이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동아시아 3개국 중 가장 늦긴 했지만 체벌권도 지난해 62년 만에 없어지긴 했어요. 아동인권의 문제는 기후위기하고 똑같은 것 같아요. 정말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이긴 한데, 누군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정치권에서 좀처럼 주목하지 않아요. 아동과 청소년도 엄연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이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엄벌주의가 능사 아닌데…촉법소년 연령 12세로 낮추는 게 맞는 걸까
당선인 공약으로 여론 재점화
소년범죄 증가 여부 통계상 미미
처벌 강화 땐 수용할 곳 마땅찮아
‘사회 내 처우가 더 효과적’ 지적도
형사미성년자를 뜻하는 ‘촉법소년’ 연령을 ‘만 14세’에서 ‘만 12세’로 낮추겠다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공약했다. 현재는 범행 당시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인 경우 형사책임을 묻지 않고 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을 하는데, 청소년범죄가 증가하고 흉포해지는 만큼 기준을 낮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범죄>에서 “만 14살 안 되면 사람 죽여도 감옥 안 간다던데, 진짜예요? 신난다”라고 말하는 13세 소년의 충격적 대사가 등장하면서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소년범죄는 정말 증가했을까. 통계에서 유의미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19일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을 보면, 2020년 소년보호사건(만 10세 이상~19세 미만)은 3만8690건으로 2011년(4만6497건)에 비해 감소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은 소년 강력범죄(폭력) 발생이 같은 기간 32.2% 감소했다고 밝혔다. 다만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흉악 강력범죄의 발생비(인구 10만명당)는 38.1건에서 38.2건으로 소폭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김희진 변호사는 “청소년 성범죄가 늘었다지만 이는 10대뿐만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라며 “소년범죄의 95%에 달하는 절대다수는 위기가정 또는 탈가정 청소년들의 생계형 범죄”라고 말했다. 가정이 무너져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범죄에 빠지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아동기에는 행동 변화 가능성이 크다. 이런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성인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 전과기록이 생기면 아이들이 오히려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게 될 수 있다”며 “40%대인 재범률이 높아지는 것은 소년보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인데, 이는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했다.
촉법소년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수용할 곳이 마땅찮다. 유일한 소년교도소인 김천교도소의 수용률은 90%에 가깝고, 소년원은 전국 10곳에 불과하다. 과밀 수용환경에서는 교정 효과를 내기 어려울뿐더러 범죄학습의 역효과만 야기할 수 있다. 엄벌주의가 능사가 아님은 이미 해외 사례에서 확인된 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독일의 연구 결과 장시간의 시설 내 구금보다는 사회 내 처우가 소년범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소년범에 대한 강력처벌로 유명한 미국 뉴욕주의 경우도 소년범을 성인 범죄자와 동일시하는 처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노력을 보이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아동청소년 범죄가 미디어에 과잉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노르웨이의 경우 소년범이 언론에 무차별 보도돼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보호하며 재사회화에 주력한다. 1994년 6세 남자아이 세 명이 5세 여자아이를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으나 형사책임연령 15세 이하여서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다.
최민영 논설위원
🟣[경향신문/최민영 논설위원] 아동인권 전문 변호사 김희진 인터뷰 기사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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