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내 아이의 이름으로 '아기 기후 소송'에 나서다❞

프로젝트

보통의 기후위기(7)

내 아이의 이름으로 '아기 기후 소송'에 나서다

‘아기 기후 소송단’에 참여하는 이은유양의 법정대리인 권영은씨(왼쪽부터), 앨리스 크레스웰양의 법정대리인 오은선씨, 이서유양의 대리인 이한나씨가 지난 11일 서울 용산에 있는 이한나씨의 직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아기 기후 소송단’에 참여하는 이은유양의 법정대리인 권영은씨(왼쪽부터), 앨리스 크레스웰양의 법정대리인 오은선씨, 이서유양의 대리인 이한나씨가 지난 11일 서울 용산에 있는 이한나씨의 직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권영은씨는 퇴근 후 승용차를 몰고 딸 은유(5)를 데리러 간다. 권씨는 은유로부터 “엄마, 자동차 말고 킥보드 끌고 왔으면 좋겠어요”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탄소를 덜 배출하라는 딸 앞에서 “걷기 피곤하다”는 변명은 소용없다. 집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없는 집에 불이 켜져 있기라도 하면 잔소리 2절 시작이다. 은유는 다니던 유치원이 탄소중립중점학교가 된 이후 “감시자”가 됐다. 오은선씨의 딸 앨리스 크레스웰(4)은 코로나19 이후 캐나다에 있는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지난해 여름 캐나다에 갈 계획을 세웠지만, 산불로 할아버지 집이 모두 타버렸다. 2020년 여름에는 선풍기가 필요하지 않던 캐나다에 이례적인 폭염이 닥쳤다.

은유, 앨리스와 같이 만 5세를 넘지 않은 ‘아기’들이 청구인이 된 기후 소송이 제기된다.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줄이는 것으로 정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 기본법) 시행령 제3조 1항’에 대한 헌법 소원이다. 이 감축 목표가 ‘아기’들의 생명권·행복추구권을 충분히 보장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양육자들이 법정대리인이다. 변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소속 변호사들이 맡는다. ‘아기 기후 소송단’ 모집 마감을 20일 앞둔 지난 11일 아기들의 법정대리인 권영은·오은선·이한나씨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청구인과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오=“4세 여아 앨리스를 키우고 있는 오은선입니다. 앨리스는 자연에서 풀 뜯고 노는 거 좋아하고, 지난 주말에도 인왕산 정상까지 등반할 정도로 산 타는 걸 정말 좋아하는 아이예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채식을 해서 그런지 야채도 정말 잘 먹고 좋아한답니다.”

이=“워킹맘 이한나고, 3살 여아 청구인 이서유를 키우고 있어요. 저희 아이는 오빠를 닮아서 좀 거칠게 노는 것을 좋아하고, 개미 한 마리만 봐도 그 자리에서 30분을 앉아 있을 수 있는 아이예요.”

권=“저는 반올림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권영은이고, 5살 여자아이 청구인 이은유를 키우고 있어요. 저희 아이는 유치원에서 ‘보석 지구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가방에 ‘보석 지구 지킴이’ 뱃지를 달고 유치원에 가요. 주변 공원에 쓰레기도 줍고, 캠페인도 하고 있어요.”

 

‘아기 기후 소송단’에 참여하는 이은유양의 법정대리인 권영은씨(왼쪽부터), 앨리스 크레스웰양의 법정대리인 오은선씨, 이서유양의 대리인 이한나씨가 지난 11일 서울 용산에 있는 이한나씨의 직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아기 기후 소송단’에 참여하는 이은유양의 법정대리인 권영은씨(왼쪽부터), 앨리스 크레스웰양의 법정대리인 오은선씨, 이서유양의 대리인 이한나씨가 지난 11일 서울 용산에 있는 이한나씨의 직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어떻게 ‘아기 기후 소송단’에 참여하게 됐나요.

오=“시댁에 산불이 났던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들은 이주를 해야 했어요. 같이 산불 뉴스를 본 아이는 ‘불이 났대’ 하면서 놀랐죠. 이후 가족들을 만날 수 없어서 영상통화만 해야 한다고 설명해줬어요. 그 직전해 여름 캐나다는 무척 더웠어요. 기후위기가 아니면 설명을 하기 힘든 이상 기상 현상이었죠. 캐나다는 에어컨이 필요 없는 나라인데 다들 부랴부랴 선풍기를 사고, 엔지니어인 아이 고모는 스스로 간이 에어컨을 만들어 지낼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저희에게 기후위기는 정말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에요.”

이=“아이를 낳고 나서, 우리 애들한테 ‘너희까지 자식을 낳아 이런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살지 말고 행복하게 살다가 그냥 끝내도 괜찮아’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중고교 때 여름에 에어컨을 켜달라고 하면 선생님들은 ‘30도 넘으면 켜줄게’라고 했었어요. 너무 덥다는 기준이 30도였는데, 이제 여름에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하잖아요. 이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의 지구 환경에 대해 감히 상상을 못 하겠어요. (해수면 상승으로) 발을 디딜 수 있는 땅은 남아있을까, 얘는 뭘 먹고 살 수 있지라는 생각에 무섭고, 이런 환경에 낳아놓은 것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던져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권=“요즘 아이가 제 감시자가 됐어요. 유치원이 탄소중립 중점 학교로 선정되고, 아이들이 공원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이후 제가 데리러 갈 때 자동차를 타고 가면 ‘킥보드 타고 왔으면 좋겠다’고 해요. 탄소 배출하지 말고. 저보고 불 끄라고 잔소리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이 아이에게 ‘쓰레기는 분리해 버린다’ ‘남는 장난감은 나눈다’ 이런 게 자연스러워요. 옷을 얻어 입혀도 거부감이 없어요. 아이가 교육을 받고 실천 하다보니 덩달아 양육자도 교육을 받고 있는 거더라고요. 저희도 실천할 수밖에 없었어요.”

 

유치원에서 ‘보석 지구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이은유양이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려요” “안쓰는 장난감을 나눈다”라고 적힌 상자를 들고 있다. 권영은씨 제공

유치원에서 ‘보석 지구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이은유양이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려요” “안쓰는 장난감을 나눈다”라고 적힌 상자를 들고 있다. 권영은씨 제공

 

-소송까지 나서기 전 고민도 있었을텐데요.

오=“제 이름으로 소송을 거는 건 오히려 괜찮은데, 아이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아이 이름으로 소송을 하는게 괜찮은지 걱정됐어요. 하지만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어른이 돼서 ‘엄마, 아빠 그때 뭐 했어?’ 하며 원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지금의 상황을 알면 동의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 합류하게 됐어요.”

이=“내 주변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데, 소송을 같이 해도 될까라는 고민이 들었어요. 집에서 실천하기 위해 주방 세제를 플라스틱이 없는 설거지 바로 바꾸고, 고체 비누도 샀어요. 배달 음식을 시킬 때도 용기를 들고 가서 포장해오고 싶어요.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것과 싸우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설득하는 게 힘들었어요. 저희 아이를 어머니가 돌봐주고 계시거든요. 어머니가 설거지 바를 불편해하셔서 주방 세제도 다시 플라스틱 용기에 든 걸로 바꾸게 됐어요. 하지만 소송에 참여하는 건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씩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저는 유치원 학부모들에게 조심스레 권하기도 했어요. 주제도 어렵고, 실천하자고 말하는 건 부담스러워요. 괜히 피곤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그런데 유치원이 탄소중립 중점 학교다 보니, 이 부분에 대해 열려 있잖아요. 그래서 캠페인과 포스터를 올리면서 ‘뜻 있는 사람들 같이 행동해요’라고 올렸어요.”

 

앨리스 크레스웰양이 어머니 오은선씨와 함께 지난 3월 26일 ‘어스아워(Earth Hour)에 참여하며 전등을 끄고 촛불을 켜뒀다. 오씨는 “앨리스가 이날 프로그래머인 아버지도 1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오은선씨 제공

앨리스 크레스웰양이 어머니 오은선씨와 함께 지난 3월 26일 ‘어스아워(Earth Hour)에 참여하며 전등을 끄고 촛불을 켜뒀다. 오씨는 “앨리스가 이날 프로그래머인 아버지도 1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오은선씨 제공

 

-아이 미래에 가장 걱정되는 게 무엇인가요.

오=“생존 그 자체에요. 우리가 일상 생활하는 것처럼만 살 수 있을까.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지금 보는 하늘도 회색인데, 그나마 이런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지금 먹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을까. 나중에 ‘통조림만 먹고 사는 거 아니야?’ 이런 걱정이 들어요. 기후위기가 더 심해지면 식량 문제로 번질거고, 이 나라가 생존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을 텐데, ‘전쟁이 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아기 기후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길 기대하나요

이=“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크진 않아요. 우리나라가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데도 국민도, 정부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잖아요. 내가 회의적이라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정부나 기업이 너무 자유롭게 (환경 파괴를) 할 텐데. 바뀌지 않더라도 누군가 목소리를 내고, 감시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금은 덜 자유롭게 오염시키지 않을까요. 소송이 더 많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권=“한 번으로 변화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양한 활동과 실천 속에서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살아야 할 날이 훨씬 더 많은 ‘아기’들 때문에라도 앞세대와 국가의 책임을 묻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오=“(기후위기 대응을 보면서) 컴퓨터 게임을 해서 손목이 아프면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냥 진통제를 맞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부도, 기업도,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한나씨의 딸 이서유양. 이한나씨 제공

이한나씨의 딸 이서유양. 이한나씨 제공


🟣[경향신문/기자 강한들] 기사 전문보기
https://www.khan.co.kr/environment/environment-general/article/20220518…

 

🌏아기 기후소송 참여하기 (~5.31까지)
http://www.politicalmamas.kr/post/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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