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일회용컵 ‘25억개’ 쓰는 한국, 오늘도 반납하고 싶었지만…
일회용컵 ‘25억개’ 쓰는 한국, 오늘도 반납하고 싶었지만…
미뤄진 ‘일회용컵 보증금제’
이달 도입 접고 6개월 유예
법 개정 뒤 2년…환경부 준비 부실
컵 반납 절차 아직도 마련 안 돼
보증금 돌려받는 앱만 시범운영
무인회수기는 여전히 개발 중
게티이미지뱅크
“반환처리가 완료됐습니다.”
스마트폰에 설치한 ‘자원순환보증금’ 앱에 있는 바코드와 일회용컵에 붙은 바코드를 일회용컵 무인반납 기기에 인식시키자, 기기 모니터에 이런 메시지가 떴다. 자원순환보증금 200원이 앱을 통해 반환됐다.
그러나 실제로 ‘컵이 반납됐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없었다. 매장 직원은 “시범사업 중이어서 컵 회수 절차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달 6일 서울 중구 이디야커피 IBK본점에서 열린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 공개 시연회에서 환경부 직원이 소비자가 컵을 반납하고 자원순환보증금을 반환받는 과정을 홍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일회용컵 보증금제(컵보증금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었던 세종의 한 커피 전문 매장 풍경은 지난 2년 동안 이 제도를 마련해온 환경부의 준비 부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컵보증금제는 일회용컵 ‘회수’를 위해 보증금을 주고받는 제도임에도 시범사업은 ‘보증금을 소비자가 앱으로 반환받는 절차’만 있고, ‘컵 반납·회수 절차’는 빠진 ‘본말전도’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컵보증금제는 소비자가 음료를 주문할 때 일회용컵 1개당 보증금 300원을 내고, 빈 컵을 반납하면 이 돈을 돌려받는 제도다. 시범사업 매장에서는 보증금을 200원으로 낮춰서 운영했다. 앞서 2002년 환경부와 식음료업체는 협약을 맺어 이 제도를 운용한 바 있다. 그러나 6년 만에 폐지됐다. 법적 근거 없이 소비자에게 50~100원의 보증금을 부과하고 반납 등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과 함께 보증금을 관리하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보증금을 자사 홍보에 이용하는 등의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수거된 컵 보관과 그에 따른 악취 발생 문제도 있었다. 이후 일회용컵 사용량은 2007년 4억2천만개에서 2018년 25억개로 6배가량 급증했다. 반면, 일회용컵 회수율은 2009년 37%에서 2018년 5%로 대폭 감소했다. 회수되지 않은 95%가량의 재활용 가능한 컵은 길거리에 쓰레기로 방치돼 소각되거나 매립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이 개정돼 컵보증금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병·캔 등 빈 용기 보증금제는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을 법으로 규정해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정부는 지난 10일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었다. 대상은 가맹점 수가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 모두 105개 브랜드, 전국 3만8천여곳이다. 그러나 정부의 준비 부족과 소상공인들의 거센 반발, 여당의 유예 요구가 이어지면서 지난달 20일 시행이 6개월 전격 유예됐다.
지난 8일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범사업을 시행 중인 세종의 한 카페에서 ‘자원순환보증금’ 스마트폰 앱 바코드와 빈 일회용컵에 붙은 보증금 라벨 바코드를 무인반납용 기기에 인식시킨 뒤에 뜬 메시지. 김규남 기자
‘반납·회수 편리성’이 관건…여전히 ‘개발 중’인 무인회수기
컵보증금제는 카페 점주 등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는 제도다.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편리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인 이유다. 지난 3월11~14일 한국리서치가 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컵보증금제 관련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원활한 제도 이용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50%가 ‘반납처를 늘려 어디서나 회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보증금의 환급 방법이 빠르고 쉬워야 한다’는 응답(24%)에 견줘, 갑절 높은 수치다. 시민들이 컵 반납·회수가 쉬워야 한다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일회용컵 무인회수기 완성품은 아직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자원순환보증금 반환과 관리 등을 위해 지난해 6월 설립된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코스모)가 국내 업체들이 개발 중인 무인회수기를 놓고 다음달에 성능평가를 할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회용컵에 음료나 내용물 등이 남아 있을 경우, 무인회수기가 고장 날 수 있는 등 무인회수기 확대를 위한 상황을 매우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며 “우선 다음달 무인회수기 성능평가가 마무리되면, 8월부터 50대의 무인회수기를 공공장소에 시범 설치·운영하고 차차 회수기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2일 제도 시행과 동시에 무인회수기가 도심 곳곳에 다수 보급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관계자는 “제도 시행과 동시에 무인회수기가 다수 설치되는 것은 (지금으로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컵보증금제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의 모임인 ‘컵가디언즈’의 고금숙 운영자는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애초 예정대로 제도가 지난 10일에 시행됐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인회수기 등을 포함해 지난 2년 동안 환경부의 준비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맹점주의 과도한 부담 해소돼야
컵보증금제 시행이 유예된 기폭제는 가맹점주들의 불만이었다. 보증금 라벨 구입비(개당 6.99원)는 물론, 컵 회수 처리 비용(투명한 표준 일회용컵 4원, 상표 등이 인쇄된 비표준컵 10원)과 보증금(300원) 반환에 따른 카드 수수료도 고스란히 가맹점주의 몫이었다. 가맹점주의 부담이 커진 원인으로는 환경부의 ‘소통 부족’이 꼽힌다. 환경부는 지난 2년 동안 프랜차이즈 본사와는 200여차례의 간담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가맹점주들과는 한번도 직접 소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환경부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한 소상공인은 “환경부에 왜 우리한테 한번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본사가 가맹점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가맹점주 연락처를 달라는 거듭된 요구에 응한 본사가 한곳도 없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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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시행 유예 이후 환경부는 가맹점주들과 잇따라 간담회를 열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개당 6.99원 하는 라벨 비용은 미반환 보증금을 활용해 전액 지원할 계획이다. 또 본사에서 라벨을 일괄 주문하고, 주문한 라벨을 컵에 붙여서 발주한 가맹점주들에게 보내주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보증금 카드 수수료를 두고서는 “여신금융협회와 협의해 수수료를 최대한 낮출 방침이다. 부족한 부분은 미반환 보증금으로 전액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컵보증금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일반 카페 등과의 형평성 문제, 수거된 컵 보관과 위생·세척 문제 등은 가맹점주들에게 여전히 해결돼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도 책임 분담해야
프랜차이즈 본사는 컵보증금제의 핵심 당사자다. 가맹점에 일회용품을 팔아 수익을 올리고, 그 일회용컵에 담긴 음료 판매로 가맹점과 수익을 나누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사는 컵보증금제를 놓고 뒷짐만 지고 있다. 라벨 구입이나 부착, 컵 회수·보관, 카드 수수료 등의 업무와 비용 부담은 모두 가맹점주에게 전가되는 상황이다. 고장수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이사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음료 판매 수익과 보증금이 분리되도록 판매정보관리시스템(POS)을 정비하고, 본사가 보증금 라벨 스티커를 일괄 사들여 컵에 부착해서 가맹점주들에게 배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프랜차이즈 본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본사 역할에 대해)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컵보증금제는 지금 업계의 가장 민감한 사안이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과 컵가디언즈는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장 이익을 보는 본사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며 “9월부터 석달 동안 프랜차이즈 본사 직영점에서 컵보증금제를 시범실시하고, 소상공인 피해 없는 제도 시행을 위해 환경부, 본사, 점주, 활동가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예 기간에 가맹점주 등과 소통하며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규남 김윤주 기자 [email protected]
🟣[한겨레/기자 김규남] 기사 전문 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470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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