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하마 소식] 입으로만 ‘기후위기’ 외친 어른대신… 거리로 나간 아이들

프로젝트

입으로만 ‘기후위기’ 외친 어른대신… 거리로 나간 아이들

태아 1명 포함 62명 헌법소원 제기
여섯 살 서우, 봉투·집게 들고 줍깅
부모들, 직접 목소리 낼 기회 줘

아기기후소송단은 현 세대가 미래세대에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목표치로는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없으며, 미래 아이들을 위해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쓰레기를 줍는 임새봄(5)군, 직접 만든 환경보호 피켓을 들고 있는 한제아(10)·정윤솔(8)·박서우(6)양, 부모와 함께 환경보호 관련 시위에 참여한 정두리(7)양 모습. 부모 제공

 

여섯 살 서우는 길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이 익숙하다. ‘줍깅’ ‘플로깅’이라고 말하는 환경운동이 서우에게는 일상이다. 외출하는 서우 가족의 가방에는 늘 봉투와 집게가 들어있다. 그런 서우에게 지구온난화는 “지구가 뜨거워져서 동물들이 많이 죽는” 일이다. 서우는 동물들을 지킬 수 있도록 “쓰레기를 아무데나 안 버리고 담배도 플라스틱 통도 안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일 계획이다. 이 약속은 지난 3월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 서우를 포함한 영·유아, 어린이 62명은 이 약속만으론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없다며 지난 달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 그 피해를 아이들이 떠안고, 결국 미래 세대의 생명권·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보장할 수 없어 해당 법령이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헌법소원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 1명도 청구인으로 포함됐다. 2030년이 되어도 고작 여덟 살이다. 아이들은 지금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까. 국민일보가 지난 5일 ‘아기기후소송단’에 참여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우리가 살 곳이 없어질 것 같아요”

“어른들은 우리 미래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미래에 어른들은 없고, 바로 우리가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제아(10)양은 지난달 13일 헌법소원 관련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쥐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한양은 직접 쓴 글을 엄마와 함께 다듬어 발언문을 완성했다. 한양은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상상하던 미래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미래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지구온난화 때문에 그런 걸 만들 수도 없고 지구가 뜨거워져서 살 곳이 없어질 것 같아요.”

환경보호를 ‘앞구르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한양은 “환경 보호가 어렵다고 하는 건 앞구르기 하기 전에 무섭거나 두려워서 안 하는 그런 거”라며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단(9)군은 어른이 되면 “꿀벌들은 사라지고, 먹을 게 없어서 번데기만 먹고, 방독면 같은 것을 쓸 것 같다”고 걱정했다. 빙하가 녹아 집이 잠기고, 수영해서 회사에 가는 상상도 한다. 박서율(8)군도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면 폭발할까봐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터전이 줄어들 거라는 두려움도 섞여있었다. 정윤솔(8)양은 “환경이 오염되면 강아지 같은 동물들이 살기 어려워진다”며 “(환경 보호를 위해) 사람들이 물건을 적게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그리는 미래는 이처럼 아이다운 상상력이 더해지며 한층 더 잿빛에 가까웠다. 과장된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그들 눈에 비친 세상은 그만큼 위태로웠다. 제주에 살고 있는 임새봄(5)군은 “길에 쓰레기가 많아서 (가족들과 함께) 주웠는데 비닐, 맥주 같은 깡통 이런 게 많았다”며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정두리(7)양도 어른들이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양은 “바다에 쓰레기가 많이 보인다”며 “길을 지나가다 쓰레기를 보면 자기가 한 거 아니라도 줍고, 분리수거를 잘하면 (환경에) 좋아요”라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목소리 낼 기회 주고 싶었다”

아기기후소송단은 5세 이하 39명, 6~10세 22명, 뱃속 태아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기후 위기 피해를 가장 크게 겪을, 가장 어린 헌법소원 청구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를 청구인으로 내세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로서 책임감이 커질 수록 아이의 삶에 대한 책임감도 커졌다. 한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살아갈 나이만큼 더 먼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이가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임군 어머니도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줍고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아이에게 직접 세상에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정두리양과 박군 어머니도 ‘어려서 환경 문제를 잘 모른다’는 인식에 대해 “아이들은 단지 보호 대상이 아니다”며 “아이들은 주위 환경을 더 자세히 보고 깊이 느낀다”고 강조했다. 박서우양 어머니는 아이 역시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결국 아이들이 부딪혀야 하는 본인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관점에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의 기후변화법이 일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독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미래세대를 보호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부모들은 환경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이번 헌법소원이 기후 위기를 알리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길 바랐다.

정윤솔양 어머니는 기후 위기가 먹거리 문제로 연결되고, 사람의 건강과 직결된다며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은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일보/ 기자 박상은] 기사 전문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53769&code=11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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