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정동칼럼] 두 청년의 ‘도전, 검정고시’
서울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장기간 지속적으로 아동학대가 자행됐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다수인 사건이다. 시설을 운영한 수녀회 소속 수녀들은 아동을 직접 폭행하기도 했고 보육사들에게 폭행을 지시하기도 했다. 수녀는 보육사의 폭행으로 한밤중 응급실에 실려 가는 아동에게 ‘장난치다 다쳤다고 말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부산에서 출생한 한 아동은 같은 수녀회가 운영하는 부산 소재 보육원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유치원 때부터 학대는 시작됐다. 보육사는 아동을 눕게 하고, 다른 아동들에게 밟으라고 지시했다. 또 자신이 퇴근하기 전에 잠들지 않으면 혼내겠다고 경고했다. 아동은 무서워서 계속 잠든 척했고, 보육사가 나간 후 펑펑 울었다. 시설은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 간다며 아동들을 버스에 태웠다. 예고도 설명도 없이 그날 이후 아동들은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학대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가족인 친구들과 함께 부산에 머무르길 간절히 원했지만 생이별이었다. 이후 시설 아동들만 다니는, 보육원 내 초등학교로 진학했다.
아동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벽 보고 무릎 꿇는 체벌을 하도 많이 받아 2학년 무렵에는 세계지도를 다 외울 지경이 되었다. 축구부에 들어가서는 감독의 폭력이 심했다. 생활관과 축구교실이 인접하여 축구부원들이 맞아서 우는 소리가 다 들렸지만, 수녀들은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보육사는 냉장고와 책상 사이 50㎝ 남짓한 공간에 아동들을 무릎 꿇리고 하루 종일 벽을 보게 했다. 하루에 한 명은 꼭 그 틈에 들어갔다. 보육사들은 아동이 토한 음식을 다시 그릇에 담아 먹게 하거나, 먹고 있는 라면에 쓰레기와 먼지를 넣기도 했다.
이 시설의 아동들은 성인이 되어 퇴소할 때까지 시설 내 유치원, 초·중·고교를 다녀야 했다. 다행히 2013년부터 외부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2015년에는 시설 내 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 위 아동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 시설은 소위 문제아반을 만들었다. 문제아반 담당 보육사 2명 가운데 보육사 A의 폭력이 극심했다. 나머지 보육사 B는 교대할 때마다 A에게 아동들의 잘잘못을 전달했고, A는 교대하자마자 아동들을 폭행했다. 중3이 되자 시설은 문제아반을 하나 더 만들었다. 두 번째 문제아반의 보육사 C는 10㎏짜리 역기봉으로 아동들을 때렸고, 맞은 아동들이 수시로 병원에 실려 갔다. 문제아반이 생긴 2년 뒤에야 A, C는 시설을 떠났고 형사처벌을 받았다. 중학교의 다른 교사에게 A의 폭력을 알렸던 아동은 즉시 다른 생활반으로 옮겨졌지만, 다른 피해아동들은 시설에서 퇴출당했다.
가출한 아동들은 경제난을 겪다가 절도범이 되기도 했다. 학대의 트라우마로 고통받은 아동은 자신이 폭행범이 되기도 했다. 서울 소재 6호 처분시설에 보내진 아동들은 이 시설에서 자원활동을 하던 박 아무개 변호사에게 절도나 폭행 등에 대한 법률지원을 받았다. 박 변호사와 신뢰가 쌓여 가면서 아동들은 보육원에서 겪은 폭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같은 보육원 출신 아동들에게 생생하고 구체적인 증언을 들은 박 변호사는 보육사 B, C 외 폭력을 방조한 수녀회와 다른 가해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 변호사는 자신의 회원으로 있던 ‘정치하는엄마들’에 이 사건을 공유했고, 단체는 이들에 대한 법률비용 지원뿐 아니라 진단·치료·상담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2021년 7월 정치하는엄마들은 수녀회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 변호사는 이들이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긋남 없이 자란 청년들만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작은공간’이라는 비영리민간단체가 이들의 일상을 두루 지원하고 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이 사건을 통해 전국의 모든 보육원을 전수조사해서 시설 내 학대를 근절하고, 나아가 ‘아동탈시설’이라는 목표를 이루고자 지원을 결정했다. 피해 당사자가 나서주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사건에 거는 기대와 의미가 크다. 단체는 목표를 지향하지만 활동가들은 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고 오순도순 기대어 살아갈 때 큰 기쁨을 얻는다.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두 청년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오는 8월11일에 검정고시를 본다는 것이다. 검정고시라니! 물론 대학 진학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도전’이라니 그 자체로 얼마나 멋진가. 진짜 보란 듯이 재미있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늘 건강했으면 좋겠다. “시험 끝나고 밥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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