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 삼성반도체 산업재해가 대를 잇고 있다 -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서평

프로젝트

삼성반도체 산업재해가 대를 잇고 있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서평

 

혜주(가명): 1977년생. 1995년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입사. 현장직 디퓨전 공정에서 근무. 2000년 퇴사. 2003년 재입사. 2011년 퇴사.

김지윤(가명): 이혜주의 아들. 2008년생. 선천성 식도폐쇄증, 콩팥무발생증 등 증상.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간략한 이력 소개만으로도 맥락이 그려진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무수한 설명으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다.

 

삼성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이혜주, 김수정, 정미선, 김희연, 박지숙, 이은경(이상 가명), 그리고 최선애의 이야기는 둘 다 해당한다. 간단한 이력 소개만으로도 병의 근원이 어디서 왔을지 짐작할 수 있게 되지만, 반면에 어떻게 이야기하더라도 모든 사실을 오롯이 설명해 낼 수 없었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하나였지만 결과는 모두 달랐다. 그래서 더 어렵고 복잡하게만 보였다. 낯선 단어들이 특수한 사건으로 보이게 만들었지만, 모든 다난한 결과의 과거를 돌아보면 결국에는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된다. 삼성반도체 클린룸에서 근무했다는 사실.

 

▲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희정 글, 정택용 사진, 반올림 기획, 오월의봄, 2022

 


백혈병 걸려 사망하는 근무 환경이라니, 삼성에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의 이야기는 내가 취업준비생일 때 처음 들었다. 삼성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이름은 故 황유미. 클린룸에서 2년간 근무했고 백혈병 발병 후 1년 만에 아버지가 운전하던 택시 뒷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지금은 삼성, 백혈병, 반도체, 뇌종양이라는 조합이 낯설지 않지만, 처음에는 이어지지 않는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모두가 선망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내세우는 기업이었기에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전태일이 분신하던 1960~1970년대도 아니고 사람이 병드는 근무 환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일하다 보면 피곤할 수 있고 그래서 연차도 주고, 휴가를 받아 쉬고 다시 일터에 복귀하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돈 주는 것만큼 부려 먹나 보다, 삼성이 연봉이 어마어마하다던데 그래서 일을 많이 시키나보다고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로 이 사건은 점점 기억 속에 흐려질 것만 같았는데, 매번 다른 얼굴을 하고 계속 나타났다. 명동에서 새하얀 방진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활동가들. 지인의 삼성 취업. 삼성에서 근무한 변호사 김용철이 쓴 책 『삼성을 생각한다』(2010). 영화 〈또 하나의 약속〉(김태윤 감독, 2013) 상영. 이건희 회장 성매수 파문. 그 영상 속 여성에게 건넨 500만 원과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에게 건넨 500만 원. 해외에 나가면 저렴하고 품질이 좋다는 이유로 삼성 제품을 선택하는 이들을 보게 되는데 그게 자랑스럽기는커녕 추잡스러운 감정이 든다는 것, 삼성이 한국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기업이라는 사실에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은 지금껏 삼성이 노동자를 대했던 방식을 성실하게 추적하면서, 삼성의 곪아버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또한 앞으로의 나침반이 되어줄 책이다.

 

지금껏 문제가 되지 못했던 문제들.

그리고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그 자리에 삼성이 있다.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부품쯤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있다.

 


생식독성, 대를 이어가는 직업병

 

10년도 넘게 싸웠던 반도체 직업병 피해 당사자들과, 그들과 언제나 함께했던 반올림의 이야기일 거로 생각하고 책장을 열었으나 지금껏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를 이어가는 직업병이라니.

 

▲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희정 글, 정택용 사진, 반올림 기획, 오월의 봄, 2022) 중에서.

 

노동을 자본주의 부품쯤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는 일하다 아프고 병드는 일이 크게 대단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로서는 노동의 건강한 가치를 인정하고 노동으로 번 돈으로 개인의 삶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을 원한다. 신체적 건강을 자본과 맞바꾸는 사회는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

 

톨루엔, 일산화탄소, 노말-핵산, 니트로벤젠, 이황화탄소, 황산, 불산 등. 기억하기도 어려운 생식독성물질 혹은 생식독성물질로 의심되는 물질을 공정 중에 사용하면서, 영업비밀이라는 말로 어떤 물질을 사용했는지 감춘다.

 

뭐가 두려워 자꾸만 감추는 걸까.

 

그렇게 꼭꼭 숨기는데도, 노동자들은 몸으로 그 결과를 증명한다. 어려운 화학약품 이름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병명으로.

 

솔벤트 세정제를 사용한 LG전자와, 임신부 간호사에게까지 무방비 상태에서 항암제를 빻게 한 제주의료원까지, 생식독성물질로 인한 생리불순, 월경 중단, 난임, 유산, 불임, 태아 질환으로 이어지는 생식독성 직업병 문제는 재생산권과 태아 산재로 이어졌다. 분명히 문제였지만 문제가 되지 못했던 문제들이 희정 작가의 손끝으로 기록되었다. 마치 점묘화를 그리듯 하나하나 개별 사안을 다 파악해서 전체 그림을 완성해냈다.

 

임신을 준비하는 중에도 마찬가지지만 임신확인증을 받아들고 나서는 커피 한 잔, 감기약 하나도 태어날 아기를 생각해서 편히 먹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산재 피해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쉬운 길은 아니지만, 본인도 직업병의 피해자면서 자식에게 아픔을 대물림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떠오르자, 참아왔던 감정이 기어이 눈물로 쏟아져 내리고 말았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을 읽으며 자꾸 무너졌다. 나는 아파도 아이만큼은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마음을 알기에.

 


노동, 인권, 건강, 여성이라는 씨실과 날실

 

언젠가 반올림 활동가가 ‘노동’, ‘인권’, ‘건강’, ‘여성’ 키워드로 작은 서점을 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기에 아주 미세한 거미줄 같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을 읽고 나서야 이 연결고리들이 분명히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문제의 씨앗이 심어진 순간, 줄기에서 가지로 뻗어가는 것처럼 문제는 자꾸 퍼져간다. 문제의 근원을 찾고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을 차근히 보아야 흐름이 잡힌다.

 

앞서 삼성에 취업한 지인과 결혼한 친구는 오랜 난임 치료와 한 번의 유산, 세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아이를 가졌다.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친구는 펑펑 울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직업병 피해 당사자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노무사,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 보건학 연구자까지 합세해서 오랜 분투 끝에 올해 1월에 태아 산재법이 마련되었다. 법이 있다고 해도, 산재 신청하고 산재로 인정받고 보상받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가 지쳐간다.

 

내년 1월 13일부터 태아 산재법이 시행된다고 한다. 그러나 태아 산재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고용노동부는 이 법을 무력화할 시도를 하고 있다. 무수한 독성물질 중에 단 17개 종만 태아 산재에 해당하는 물질로 인정하겠다고 한다. 유령뿐인 무력한 법을 또 하나 만들겠다는 거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사기를 쳤던 그들처럼.

 

[필자 오은선 님은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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