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젠더 이코노미⑦] 핑크는 여성의 색이 아니었다…어린이 제품에 녹아든 성차별
[젠더 이코노미⑦] 핑크는 여성의 색이 아니었다…어린이 제품에 녹아든 성차별
파란색 아니면 분홍색…성별 따른 색깔 ‘고정관념’
남녀 취향은 생물학적 요인보다 ‘학습효과’ 영향
“잘 팔리니까”…성 편향된 어린이용품 판매 여전
남녀 구분보다는 다양성 부여로 선택권 확장해야
우리 사회에는 남성과 여성, 즉 성별에 따라붙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젠더 감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마케팅에 나섰다가 기업의 평판과 이미지가 무너지는 사례가 잦아 젠더 이슈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된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산업 전반에서는 성별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그로 인한 피해 사례가 산적해 있다. 이처럼 남녀 간 전반적인 불평등과 격차 등은 현대사회의 숙제처럼 남아있다. 이제 소비자‧기업‧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젠더와 관련된 문제의식을 갖고,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산업 전반에 깔려있는 젠더 차별에 대해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조명함으로써 근본적인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길은 무엇인지 탐색해봤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김효인 조유빈 기자】 “왕자와 결혼한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옛날 옛적’으로 시작하는 동화책 속 결말은 항상 어린이들을 위안하듯 ‘오래오래 행복하게’라는 주문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가정에서 흔히 아들은 왕자, 딸은 공주로 취급된다. 그만큼 더없이 귀한 존재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이런 관행 속에는 성 역할 고정관념이 학습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해 시장조사기관 닐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영국 그림책 베스트셀러 100위에서 영웅이나 악당, 강한 동물이 등장하는 책의 비중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책보다 2배 많았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은 주로 악당과 싸우고 곤경에 처한 이를 돕는 용감한 영웅으로 그려지는 반면, 여자 주인공은 구조를 기다리는 공주로 아름다움, 모성애, 보살핌, 사랑 등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등 성 역할이 고정적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같은 남녀 성 역할에 대한 선호도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일까. 수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는 대부분 양육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성향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즉 특정 성별로 태어나 주어지는 물건과 콘텐츠 등으로 평생의 취향과 사고방식이 결정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흔히 장난감 코너에 가면 남아를 위해서는 로봇과 공룡처럼 도전적인 장난감이, 여아에게는 공주나 엄마놀이처럼 예쁘고 다정한 장난감이 마련돼 있다.
이토록 보수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이 유년기의 유연한 사고에 파고드는 원인으로는 자본주의가 지목된다. 예측 가능하고 당연한 취향은 고정 판매층을 만들고, 이는 결국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가져오기 때문에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렇게 유년기부터 사회로부터 주입되는 성 역할 고정관념의 폐해 중 하나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스스로 한계를 두게 한다는 점이다.
실제 가부장적인 콘텐츠는 남아에게는 강하고 용감해야 한다는 기대를 강요하고 여아에게는 아름다움과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갖게 만들어 사고의 범위를 위축시킬 수 있다.
결국 어린 아이들에게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다양성과 주체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균형 잡힌 교육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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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색·여자색?…성 정체성 가지기 전 ‘양성평등’ 정립돼야
분홍색(핑크)은 흔히 여성의 색으로 대변된다. 포털사이트에 핑크 공주를 검색하면 어린이 화장품이나 장난감 종류들이 쏟아진다. 비단 장난감을 넘어 유방암 예방 캠페인 리본색도, 여성 전용 주차장과 임산부 마크 또한 핑크빛이다. 생애 주기와는 무관하게 여성의 색깔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핑크색이 처음부터 여성의 색은 아니었다. 고대부터 핑크는 지복(至福), 즉 행복을 뜻하는 색이었다. 실제 핑크색은 달콤한 맛이나 행복감과 연결되기도 한다.
유명 작가인 피카소는 ‘장미 시대(1904~1906)’의 작품들에서 핑크색을 즐겨 썼는데, 이는 주로 연애나 연인과의 행복한 나날의 의미로 쓰였다. 또 핑크색은 남녀 무관하게 상류층이 권력을 표시하기 위해 입은 색이기도 했다. 1920년대를 무대로 한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 개츠비는 야망을 드러내기 위해 밝은 핑크색 정장을 입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핑크색이 콕 집어 여성을 상징하게 됐을까. 유아복을 예로 들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남녀 성별에 따른 별다른 색과 디자인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 메릴랜드대 역사학자 파올레티 교수의 책 ‘Pink and Blue: Telling the Girls From the Boys in America’를 보면 수 세기 동안 아이들은 7세 이전까지 남녀 모두 하얀색 치마를 입었다. 흰 옷감은 때가 타고 더러운 것이 묻어도 다시 표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의류업체들은 남녀로 나뉜 유아용품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색과 디자인에서 성별 차이가 극대화됐다. 즉 핑크는 여아, 블루는 남아라는 공식이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제품에 대한 선택권이 줄어든 부모들은 자의든 타의든 남녀로 나뉜 유아용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맥락은 더욱 공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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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성별에 따른 선호 색이 학습된 결과라는 다양한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버지니아대 주디 델로아체 교수는 지난 2011년 2월 국제학술지 ‘British Journal of Developmental Psychology’에 어린이 연령에 따른 선호색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생후 7개월부터 5년 사이의 어린이들에게 차례로 8쌍의 물건을 보여준 뒤 한 쌍에서 물건을 한 개씩 고르는 실험을 했는데 모든 쌍의 물건에는 분홍색 물건이 1개씩 포함됐다. 만 1세 정도의 어린이들은 색깔에 대한 선호를 보이지 않았지만 2세부터는 여아가 남아보다 분홍색을 고르는 횟수가 많아졌고, 남자아이들은 분홍색 물건을 고르지 않는 현상이 뚜렷했다. 이는 사회에서 주입받은 여성스러운 색, 남성스러운 색에 대한 선호 경향을 보여준다.
또 2017년 국제 학술지 ‘성역할저널’은 여아들에게 장난감 ‘레고’의 파란색 블록과 분홍색 블록을 가지고 놀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아이들은 분홍색 블록을 가지고 놀 때 인형이나 메이크업 등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스러운’ 장난감을 만들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밖에도 홍콩대학교 수이핑 영 교수 연구팀이 2018년 9월 국제학술지 ‘Sex Role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5~7세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성별에 따라 기대되는 색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한 그룹에는 초록색과 노란색이 남자색과 여자색이라는 설명을 하고 다른 그룹에는 하지 않았다. 이에 설명을 듣지 않은 실험 참가자들은 특정 색깔의 장난감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설명을 들은 실험 참가자들은 남아는 초록색을, 여아는 노란색을 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어린이용 제품을 판매하는 매대에 가보면 유독 레이스 치마와 핑크, 리본들이 즐비한 이른바 ‘공주’ 코너가 여지없이 눈에 띈다. 다른 취향은 끼어들 틈 없는 공고한 시장으로 볼 수 있다.
여아들의 문화를 연구해 온 작가 호리코시 히데미는 저서 <여자아이는 정말 핑크를 좋아할까>에서 핑크는 모성과 헌신 등의 이미지가 겹쳐 있지만 결국 ‘객체로 있으라는 요구’라고 말한다.
갖가지 공주 옷을 진열해 둔 여아용 소품과 의류 매대 ⓒ투데이신문
이렇게 수동성을 띤 여성성에 대한 기대는 외모에 대한 잣대로 이어질 수 있다. ‘여아=핑크’ 공식은 아름다움에 대한 세부적 기준을 부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어린 시절 단순한 취향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유아기부터 스스로를 끝없이 검열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아에게 파란색과 공룡, 씩씩한 정체성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바람직하지 않다. 성 불평등 사고나 남녀차이에 따른 이분법적 역할 규정은 사회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남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들자면, 여성은 힘든 일에서 배제되기에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남성만의 일로 규정한다면 여성은 나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수적인 존재로 인식된 여성의 지위는 사회에서 또 다른 차별적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특히 만 3세에서 7세는 아이들이 성 정체성을 갖게 되는 시기다. 3세부터는 자신의 성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정확한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특히 선호하는 놀잇감과 머리모양, 옷차림 등으로 성별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는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이 고정되기 전인 유아기 시기부터 가정과 교육기관에서 올바른 지도를 통해 양성평등 개념을 심어줄 수 있는 지도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여아를 대상으로 한정된 핑크색이나 드레스 등의 콘텐츠가 반복해서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며 “성 역할 고정관념이 학습되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어린아이 때부터 여성은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문화를 자리 잡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파란색 일색인 남아용 장난감 코너와 분홍색으로 가득한 여아용 장난감 코너 [사진제공=뉴시스]
장난감, 유튜브 콘텐츠에도 파고든 성 고정관념…배경엔 ‘상술’
“저는 핑크색보다는 다양한 색을, 드레스보다 바지를 입히고 싶은데 딸이 정작 공주 취향 물건을 원한다면요?”
지난 2015년 JTBC 예능 ‘비정상회담’ 59회에 출연한 방송인 홍진경이 제기한 의문이다. 이와 함께 그녀는 자연스런 성 역할을 왜 무너뜨려야 하나라는 궁금증을 드러냈다.
이에 또 다른 패널 타일러는 “그런 것들이 정말 자연스러운 건지 의심해봐야 하지 않느냐”며 “여성이기 때문에 분홍색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자아이들이 모두 분홍색을 선택하기에 하는 선택일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여성으로 살면서 체득한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안에서 강요된 취향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에 방문해 보면 남아 장난감과 여아 장난감이 각각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구획으로 진열돼 있다.
특히 여아용 제품은 인형과 스케치북, 요술봉 등 대부분의 소품들이 분홍색 계열로 디자인됐다. 또 남아들이 주로 선호하는 캐릭터의 경우 파란색만 존재하고, 여아가 선호하는 아기 인형 캐릭터는 분홍색 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 캐릭터에 대해서는 색상 선택권이 전혀 없는 것이다.
제품을 광고하는 이미지에서도 인형 돌보기 놀이와 싱크대 세트 등에서는 여아가 등장했고, 공룡이나 자동차 장난감 광고에서는 남아가 등장해 성 역할을 한정하는 사례가 발견됐다. 특히 가사와 육아 놀이를 ‘엄마 놀이’로 명명해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도 포착됐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대형마트 측에 이에 대해 묻자 당사는 장난감 업체를 통해 입고된 물건을 소비자가 보기 편하게 진열하고 있을 뿐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한 대형마트 업체 관계자는 “장난감의 경우 소비자 동선을 고려해 진열하고 있다”며 “마트가 직접 장난감 회사의 제품을 만들지는 않는 만큼 성 중립 장난감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도 “소비자들이 쇼핑하기 쉽게 진열하는 것이며 색이 다른 장난감들을 섞어서 진열하면 오히려 혼란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정작 직접 장난감을 만드는 완구 제조업체들은 특정 성별층에서는 특정 색상이나 스타일이 많이 팔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완구회사 A업체 관계자는 “추세에 맞춰 볼 때 성 중립을 고려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많이 판매되는 제품군과 시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며 “다만 업계에서도 틀에 박힌 색상이나 디자인을 탈피하는 등 다양한 시도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장난감 제조 업체 B사 관계자 또한 “완구 시장은 아무래도 저출산 등으로 인해 예측이 어려운 시장이고, 더구나 영세 업체에게는 성 중립 장난감 등의 개발은 맨땅의 도전이나 다름없다”며 “결국 어느 정도 판매가 보장된 물건만 근근이 믿고 생산하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유튜브와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키즈 유튜브에는 여아들의 돌봄·가사 놀이와 함께 ‘남성=능동, 여성=수동’ 공식에 따른 편향된 콘텐츠가 존재한다.
지난 2019년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토론회에서는 어린이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성 편향 문제가 제기됐다.
키즈 유튜브 구독자순 상위 11개 채널을 살펴본 결과 가장 먼저 ‘성역할 고정관념 조장’이 지목됐다. 여아들이 놀이를 중심으로 돌봄노동을 배우는 모습이 등장했는데 이는 ‘돌봄노동 = 엄마의 일’로 인식할 우려가 있다.
색깔도 문제가 됐다. 여아나 여성들이 주로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의 경우 전반적으로 핑크색이, 아빠와 남아가 출연한 유튜브 채널은 푸른색 계통의 채널 톤이 확인됐다.
또 다른 성차별 유형로는 ‘외모지상주의 조장’이 꼽혔다. 콘텐츠 다수에서 여아인 주인공이 화장을 하는 모습이 등장했는데 이는 탈(脫)코르셋의 전형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美)의 기준이 ‘나’가 아닌 타인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다.
남아와 여아용으로 나뉜 킨더조이 초콜릿 광고. 파란색 제품에는 자동차와 레고 등이, 분홍색 제품에는 공주와 유니콘 등이 그려져 있다 ⓒ투데이신문
이밖에도 식품업계 성별 구분의 대표적 사례로는 이탈리아 초콜릿 업체 페레로의 브랜드 킨더조이 제품이 있다. 초콜릿과 장난감이 들어 있는 알 모양의 플라스틱 모형을 각각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포장해 판매한다. 남아용과 여아용을 명시한 광고로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제품으로 지난 2016년 해태 꼬마볼이 출시됐는데 해당 제품 또한 파란색에는 남아용을, 분홍색에는 여아용을 표기해 판매한 바 있다.
결국 각종 업계가 만들어 낸 천편일률적인 콘텐츠와 제품들이 유행 아닌 유행, 잘못된 상식으로 자리 잡으며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는 성평등을 추구하는 최근 추세에 따라 기존 업계들도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숙명여대 경영학부 서용구 교수는 “최근 성평등 추세로 인해 젠더리스, 즉 성별을 구분 짓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판매업체의 경우 이른바 ‘잘 팔리는’ 제품을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만큼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녀 역할, 당연한 것은 없어…다양성 넓히는 젠더리스 교육 ‘주목’
외국에서는 어린이들의 성 역할 고정관념 해소에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이 포착된다.
스웨덴의 경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육아용품 등을 성별에 따라 구분하는 일 자체를 차별로 여기며, 바르셀로나 한 유아도서관은 지난 2019년 ‘잠자는 숲속의 공주’ ‘빨간모자’ ‘신데렐라’ 등의 동화를 퇴출했다. 이들 동화가 성 고정관념을 담고 있어 6세 이하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내년부터 대형마트마다 ‘성 중립’ 장난감 진열대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유년기에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세계 최대 장난감 제조사인 레고 또한 최근 모든 제품에 남아용이나 여아용 등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어린이들의 성 인지에 대한 중요성을 체감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등 다양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나쁜 미디어를 시민이 힘으로 퇴출시키자’는 취지의 아카이빙 프로젝트인 ‘핑크 노 모어(pink no more)’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핑크’로 제어되는 여성성 강요와 분리가 결국에는 여성과 남성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만큼, 유년기의 고정관념을 우선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지난 2020년 세계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시 성평등 어린이사전’을 냈다. 총 1053명의 시민이 참여한 해당 사전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어린이가 겪는 성차별적 말과 행동을 성평등하게 바꾸기 위해 기획됐다.
로봇을 구경하는 여아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이밖에도 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장난감 업체들에게 성 중립적인 방향으로 영유아 제품을 제조하도록 관행을 개선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인권위는 “아이들은 색깔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에 따라 여성은 연약하고 소극적으로, 남성은 강인하고 진취적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학습하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회·문화적 관행에 따른 성역할 고정관념을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사회화돼 성차별이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는 어린이 성 고정관념에는 미디어와 사회가 끼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이를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성별에 따른 인식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선천적 요인인지 후천적 학습의 효과인지 의견이 갈리는데 많은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학습의 결과라는 의견이 중론을 차지한다”며 “즉 성 고정관념은 성별에 따라 뇌가 다르게 반응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심어준 것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애니메이션, 만화 등의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남자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여자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가정에서 질문을 하고, 의문을 가지게끔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여성 캐릭터는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공주나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에서 변신을 할 때 치마가 짧아지고 구두를 신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럴 때 이 옷이 전투에 과연 적합한지 묻는 것이다”라며 “간단한 질문이지만 이런 것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으로, 이렇게 작은 의문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한다”고 부연했다.
미국 켄터키대 발달심리학과 크리스티아 스피어스 브라운 부교수는 저서 ‘핑크와 블루를 넘어서’에서 “아들과 딸 모두에게 인형, 소꿉놀이 세트, 장난감 트럭, 레고 블록을 사 주자. 모든 아이는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돌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남녀 역할에 있어서 당연한 것은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고 가사일에 참여하는 상황에서는 고정된 성 역할 관념은 오히려 사회 발전에 저해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런 악영향은 모든 것을 빠르게 흡수하고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더 쉽고 수월하게 대물림될 수 있다.
남녀의 성을 떠나 인간의 존재와 영향력을 일깨우는 세상을 위해서는 어린이들에게 강요된 틀을 깨고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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