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 오늘을 생각한다] 각자도생? 공존이 생존이다
2023.01.02 00:00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피려면, 결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2014년 봄에 깨달았다. 그때 뱃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게 내 일 같았다. 나의 어린이와 이별한다는 건 단 1초도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고통이었다. 감정을 좀 묶어둬야 겨우 활동할 수 있었다.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세상을 등진 어린이와 젊은이에 대한 혐오, 자식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조롱 또한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죄 없는 이들을 지켜내려면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나도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닌데, 어떨 땐 너무 암울하고 길은 보이지 않고 무력감에 빠지는데…. 어린이를 보면 거짓말처럼 ‘힘내자’ 버튼에 불이 들어온다. 나 자신을 포기할 순 있어도, 어린이를 포기할 권리 같은 건 애초에 없는 것처럼 느낀다.
‘함께 슬퍼하겠습니다. 함께 분노하겠습니다.’ 녹사평역에 현수막을 걸었다. 정치하는엄마들, 우리는 누구인가?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다들 나처럼 생존에 민감하다. 경쟁이 아닌 공존이 합리적인 생존전략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공존하기 위한 규칙을 정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가 주권자가 되기로 합의한 사회에 살고 있다. 소수가 독점한 주권을 나눠 갖고 헌법에 한 자 한 자 새기기까지 인류는 많은 피를 흘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피 흘리는 사람들이 지구 곳곳에 있다. 가진 건 주권밖에 없는 사람들마저 왜 ‘약육강식’ 하기를 선택하는가? 그것이 능력주의이고 공정한 경쟁이라서? 공정해봤자 ‘오징어 게임’이거늘, 과반수가 동의하면 게임을 중단시킬 수 있거늘.
안전재난, 산업재해, 아동학대, 기후위기. 잇단 죽음과 예견된 죽음들을 보라. 이제라도 각자도생이라는 환상에서 깨야 하지 않을까? 태어나자마자 대진표에 이름을 올려야만 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지 마라. 자기 발로 링에 올라선 사람이 어디 있나? 걸음마도 떼기 전에 경쟁을 시작한 사람들에게서 잘못을 찾으려 들지 말고 경쟁시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자. 9.24 기후정의행진 즈음에 <지구온난화 1.5℃> 같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를 처음 읽었다. 세상 보는 눈이 좋아지고 선명한 목표가 생겼다. 나의 딸을 경쟁에 참여시키지 않는 정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을 각성했다. 기껏해야 좋은 유년기의 추억을 가진 기후난민이 되겠지. 어떤 나라도, 어떤 개인도 지구온난화 앞에서 각자도생할 수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연대와 공존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생존전략이다. 경쟁을 말로만 비판하는 사람들 말고, 어린이들과 함께 진짜로 경쟁을 보이콧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치세력화하자. 과반수의 동의로 경쟁체제를 종식하자. 공존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공존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 우리의 영혼이 먼저 구원될 것이다.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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